크리스마스 실을 사야 하는 이유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독도사랑을 주제로 한 올해 크리스마스 실.

독도사랑을 주제로 한 올해 크리스마스 실.

연말에 편지를 보낼 때 우표 외에 크리스마스 실(seal)을 붙이던 시절이 있었다. 편지 송달이야 우표만 붙여도 그만이지만, 실을 붙이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웃 사랑이 넘쳐 흐르는 시기에 `‘나는 이렇게 매정한 사람이오’라고 고백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실은 연말이 돼도 제 앞가림 하기 바쁜 소시민들에게 불우이웃을 향해 작은 정성이라도 표시할 수 있는 통로였다. 콩나물 값도 깎는 주부들이 크리스마스 실을 판매한다는 학교의 가정통신이 오면 꼭 아이들 손에 돈을 쥐여 보내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지구상에 크리스마스 실이 등장한 것도 소박한 착상에서 비롯됐다. 1904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우체국장이던 아이날 홀벨은 어린이들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중 연말을 기해 쌓이는 우편물을 보고 번뜩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많은 우편물에 한 닢짜리 실을 붙여 보내게 할 수 있다면, 실 판매자금으로 어린 생명을 구할 수 있을 텐데”하는 생각이었다. 덴마크 국왕이 이 아이디어를 밀어주면서 운동은 탄력을 받았고,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 실이 선보인 것은 1932년, 해주에 결핵요양원을 설립한 캐나다의 선교의사 셔우드 홀에 의해서였다. 이후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본격적인 모금운동에 나서 결핵퇴치 사업을 펼쳤다. 덕분에 국민의 결핵 위험률은 1965년 5.3%에서 1975년 2.3%로, 1995년 0.5%로 낮아졌고, 2004년에는 0.25%로 떨어졌다. 결핵을 두려워하는 국민은 거의 없어졌다. 크리스마스 실이 결핵 공포를 씻어준 것이다.

그러나 결핵을 극복한 것은 전혀 아니다. 경제위기와 노숙자 증가로 결핵환자는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다. 인구 10만 명에 7명이 결핵으로 숨진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0개국 중 1위다. 일본의 3.9배, 미국의 23.3배다. 약물치료로 100% 완치가 가능한 결핵의 사망률이 이 정도라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부끄럽기 그지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크리스마스 실에 대한 관심은 엷어지고 있다. 편지봉투를 쓰지 않다보니 실을 붙일 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2003년엔 65억 원어치가 팔렸으나, 지난해엔 62억 원어치로 줄었다. 그래서 실도 이제 이미지 변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편지봉투에 붙이는 실에서 개인이 소장하는 실’로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우본은 결핵협회의 위탁을 받아 연말까지 우체국에서 크리스마스 실 판매에 나선다. 실을 구입, 소장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가 우리에게 필요한 때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종탁〉



살아 있는 신앙인 키에르케고르

[우정이야기]크리스마스 실을 사야 하는 이유

덴마크의 신앙인이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5월 5일에 태어나 11월 11일에 4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나라 4·19 세대는 이제 인생의 뒤안길에 서성이고 있지만, 이 땅에 실존주의 사상이 퍼질 때 이를 수용하면서 자양분을 삼았던 세대였다. 이를테면, ‘사상계’라는 잡지를 통해 지평을 넓혀 갔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를 만났다. 그의 성숙된 고민을 수용 또는 보듬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성장 과정에 어머니에게서 영감을 받으며 성장하지만 키에르케고르만은 아버지로부터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흔히 아기 예수의 태어남 또는 천사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전해 듣게 마련이지만 키에르케고르는 십자가의 예수, 하나님의 섭리를 바로 받아들여야 했던 월반교육과 같았다.

일찌감치 인간 삶의 신앙을 터득했던 키에르케고르였다. 그는 삶을 3단계로 나누었다. 미적, 도덕적 그리고 신앙적 단계였다. 이러한 사상이 ‘이것이냐 저것이냐’ ‘죽음에 이르는 병’에 담겨 있다. 그의 신앙적인 사상은 오늘날에도 진부하지가 않다. 키에르케고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우표는 덴마크에서 발행된 이 우표가 유일하다.

여해룡 <시인·칼럼니스트> yhur4@hanmail.net

우정이야기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