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공무원 사회 정말 깨끗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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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도덕성 선진국 수준… 금품수수 유혹은 여전

지난 8월7일 권영진 서울시 정무부시장실. 서류를 정리하던 비서관이 책상 밑바닥 안쪽에 놓인 진주목걸이 세트를 발견했다. 진주목걸이와 귀고리 한쌍, 브로치 1개로 구성된 세트는 서류봉투에 넣어진 상태. 출처를 알 수 없는 ‘선물’이었다. 이날 부시장실을 다녀간 방문객과 간부 20여 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했지만 끝내 주인을 찾지 못했다.

선물세트는 이튿날 오전 서울시 감사관실 산하 클린신고센터에 ‘금품접수’로 신고됐다. 클린신고센터는 공무원이 사업자 등으로부터 본의 아니게 금품을 받았으나 돌려줄 방법이 없거나 부재시 또는 몰래 금품을 서랍 등에 놓고 간 경우 자진신고를 받는 신고센터다.

이 사건은 2000년 2월 서울시 클린신고센터가 문을 연 이래 4급 이상 고위공직자가 금품을 신고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인근 보석상에 문의한 결과, 목걸이 세트의 감정가는 65만 원 상당. 목걸이 세트는 1년간 시 금고에 보관되다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할 경우, 시 재산으로 귀속될 예정이다.

명절 앞두고 술렁이는 공무원들

지난 8월 13일 열린 전국 16개 시·도 광역자치단체 감사관 회의에서 참가자들이 반부패 청렴대책상황을 점검하고 상호 우수사례를 교환하고 있다. <국가청련위원회 제공>

지난 8월 13일 열린 전국 16개 시·도 광역자치단체 감사관 회의에서 참가자들이 반부패 청렴대책상황을 점검하고 상호 우수사례를 교환하고 있다. <국가청련위원회 제공>

추석명절을 앞둔 공무원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시민의 공복’인지라 민원인과 면대면으로 마주해야 할 기회가 많은 공무원. 자의든 타의든 ‘금품수수’라는 유혹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뜻밖의 ‘선물’이 주어질 경우 입장이 난처한 것은 물론 징계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 최근 국가청렴위원회가 이상민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이후 각급 공공기관에서 발생한 비위 면직자 수는 모두 1370명. 유형별로는 뇌물·향응수수가 919명, 직급별로 6급 이하가 950명으로 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수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난 9월 중순께 청와대 경호실 김모 씨(47·3급)가 사업가로부터 사업청탁을 빌미로 1000만 원 상당의 금품과 자동자 구입대금까지 챙긴 사건은 국민에게 충격파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이밖에 9월 중순에만 두 건의 굵직한 뇌물수수 사례가 언론에 보도됐다. 전 완주군수 최모 씨(64)와 서울 용산구청 김모 씨(56·국장급)가 수천만 원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것이다.

올 추석도 이같은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각급 기관 클린신고센터 관계자는 공감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들은 “명절이라고 특별히 신고건수가 늘진 않는다”며 “어떤 시대인데 뇌물수수가 가능한가”라고 입을 모았다. 김장건 팀장(서울시 감사관실)은 “명절분위기에 편승해 비리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며 “경각심을 일깨우려 행동강령을 강조할 뿐 이미 공무원 사회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의 경우 8월 말까지 한 해 동안 클린센터 신고건수는 모두 47건. 2000년 센터가 문을 연 뒤 누적건수는 총 512건에 1억4228만 원에 이른다. 최고액은 500만 원 상당의 현금. 2005년 1월 서울시 산하 한 공단 공무원에게 ‘채용을 부탁한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현금이 도착한 것이다. 이 돈은 곧바로 신고됐고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아주 드물게 100만 원 이상 촌지가 신고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10만~20만 원 이내 소액 금품이라는 게 서울시 관계자의 전언.

이 같은 사정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화균 팀장(수원시 감사관실)은 “2003년 센터가 문을 연 뒤 매년 신고건수는 3~4건에 불과하다. 종류도 쌀 1포대 등 소박하다”고 밝혔다. 병무청 관계자는 “올해 15건에 불과하고 미숫가루 등 친절상담에 감사하는 경우”라며 “청탁·대가성은 아니다”고 못박았다.

관세청의 한 관계자도 “올해 신고건수는 10건이며 50만 원 이상 물품은 찾아볼 수 없다”고 전했다. 관세청의 경우 50만 원 이하 물품을 신고하면 전액 포상금 형태로 되돌려주지만 난화분 같은 간단한 선물이 주류를 이룬다는 설명이다. 한 클린센터 관계자는 “요즘 50만 원 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만큼 깨끗해졌다는 얘기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받고도 입 닫으면 신고건수 ‘0’

과연 공무원 사회는 깨끗해진 것인가.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서울시의 경우 클린센터 신고건수는 매년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2000년 60건, 2001년 103건에서 2002년 57건, 2003년 102건, 2004년 85건, 2005년 58건으로 뚜렷한 특징을 찾아볼 수 없다. 일부에선 “자진신고인 데다 성격상 받고도 입을 닫을 수 있어 ‘신고건수=청렴도 반영’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고도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종윤 국가청렴위 행동강령팀장은 “행동강령은 도덕적 측면에 맞춰져 있지만 위반행위에 대해선 엄격한 처분이 요구된다”며 “공무원 스스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상민 의원실이 밝힌 공무원 비위면직자 추세에선 2004년 317명에서 396명으로 한차례 큰 폭으로 증가했을 뿐 이후 감소했다. 한 건설업자도 “지방 토목관련 하위직 공무원 중 극히 일부가 아직도 뇌물을 ‘밝히는’ 등 먹칠을 할 뿐 전체 분위기는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클린센터에 접수된 ‘건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한 일선 공무원은 “명절 때 생선세트와 배, 곶감과 같은 전통적 선물에서부터 양주 등 주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평소에는 순금 휴대전화 줄, 디지털 카메라와 상품권까지 다양하다”고 전했다. 이를 놓고 한 감사관실 관계자는 “업무 관련 사례, 감사표시, 업무와 관련없는 선물 등 3가지로 나뉜다”고 분류했다. 법인설립 등 정관 자료를 검토해달라며 100만 원 촌지를 넣거나 단속에 노출된 노점상이 강제로 봉투를 찔러넣는 경우가 업무와 관련된 사례다. 반면 사망신고·등초본 발급 등 민원서비스에 감사한다며 ‘순수하게’ 상품권 등을 놓고 가는 경우가 감사표시. 이익단체 간부가 인사치레를 하는 경우는 관련성 없는 선물로 분류된다.

방법도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돈 봉투나 상품권을 서류·책 사이에 슬쩍 끼어넣거나 한우세트를 집으로 부친다거나, 사무실에 돈 봉투를 `휙’ 던져놓고 가는 경우 등 각양각색이다. 2004년 추석을 앞두고 안상수 인천시장의 여동생 집에 전달된 굴비상자 속 2억 원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용의주도함’ ‘익명성’ ‘시의성’ 3박자가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다. 정치인의 경우 전달용기로 사과상자는 이미 명성을 잃고 여행용 가방, 골프가방, 복사용지 박스, 케이크 박스, 양주상자 등 다양한 ‘그릇’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실정.

김덕만 국가청렴위원회 공보관은 “추석을 앞두고 일선 교육청에선 민원인과 구내식당에서 식사할 것을 권하고 동문회 참석 자제를 요청하는 등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이미 한국 공무원의 도덕성은 미국 등 OECD 국가에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오상도 기자 sdo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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