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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시계 팔뚝으로 다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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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직장인 사이 명품시계 유행… 문화적 포만감 향유·투자 가치도

[세태]손목시계 팔뚝으로 다시 돌아오다

최근 연예인의 짝퉁명품이 논란이 됐다. 연예인이나 명품족이 수천만 원짜리 명품에 사족을 못쓰다 결국 20만 원짜리 짝퉁시계에 속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보면 요즘 명품시계를 찾는 남자가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0~40대 CEO, 전문직은 물론 평범한 직장인 사이에서도 묵직한 시계를 차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여자의 얘기가 아니라 남자의 얘기다. 명품족만의 얘기가 아니라 보통남자, 좀 잘 나간다는 남자의 일반적인 유행이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손목시계가 새삼 남자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어떤 손목시계가 얼마나 대단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또 명품족이 아닌 젊은이는 어떤 명품시계를 찾고 있는가.

사실 지금 40대 이상의 남자라면 어린시절 퇴근하신 아버지가 화장대 위에 풀어놓은 손목시계를 팔목에 끼고 폼을 잡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때 시계 숫자판 중앙 위쪽을 장식하던 이름은 오리엔트(ORIENT), 시티즌(CITIZEN), 세이코(SEICO), 라도(RADO) 등이다. 이런 시계는 결혼예물의 필수품으로 통했다.

줄줄 흘러내리는 시계를 차고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폼을 잡다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얼른 풀어 제자리에 놓으면서 ‘아부지, 나도 시계 사주세요!’ 하면 아버지는 ‘그게 임마 얼마짜린데’ 하시며 허허 웃곤 하셨다.

그때도 세계에서 제일 비싼 시계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롤렉스’ ‘브로바’ 등의 이름이 나왔다. 1970년 무렵, 실버메탈 소재, 흔들어주기만 해도 태엽이 자동으로 감기는 오리엔탈 손목시계 값이 2만 원 정도 하던 시절, 롤렉스 시계 하나 값이 100만 원 가까이 한다는 근거없는 아버지의 말씀에 ‘억!’ 하고 놀란 기억도 있을 것이다.

손목시계나 마루의 괘종시계 말고 길거리에서 시계를 보기 어려웠던 시절에 아버지 팔목에서 번쩍거렸던 손목시계는 상당한 고가 제품이어서 아무나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시계 찬 사람에게 굽신거리면서 시간 물어보는 일이 예사였으며 일가친족이 모여 단체사진을 찍을 때, 시계를 찬 사람은 꼭 양복 소매를 은근히 올려 자신의 빛나는 팔둑을 과시하곤 했다.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더블이글(왼쪽),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더블이글 스틸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더블이글(왼쪽),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더블이글 스틸

제대로 복고, 시계의 유행 하지만 값싼 전자 손목시계가 등장하면서 비싼 고급시계는 사라졌다. 마치 남자의 자존심으로 상징되던 고급 라이터가 일회용 라이터가 등장하면서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로 1만 원짜리 전자 손목시계가 등장하면서, 게다가 중국제 5000원짜리 전자시계가 등장하면서 시계는 예물이 아니라 기념품 정도로 전락했다.

게다가 휴대전화가 세상을 점령한 뒤 남아 있던 시계마저 우리 팔뚝을 떠났다.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세상 천지에 시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라이프 사이클의 모든 동선에 시계가 노출돼 있다. 그러니 팔목에 찬 시계는 성가신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국내 손목시계 시장도 위축돼 내수보다 수출에 주력했다. 2000년 손목시계 수출 규모가 1억4000만 달러를 웃돌았으며 같은 해 손목시계 수입은 6000만 달러 정도에 그쳤다. 한국시계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수출보다 수입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2003년에는 수입과 수출이 1 대 1 규모, 그리고 2004년에는 수출이 1억 달러, 수입이 1억2000만 달러를 넘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시계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중국산 저가 시계의 다량 유입이 주된 원인이겠지만 사실은 고급 시계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IMF 이후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강남 부유층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명품 손목시계 구입붐은 30, 40대 CEO와 20, 30대 전문직 종사자로 확산되더니 이제는 평범한 직장인 사이에서도 명품시계 구입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크로노스위스 오푸스로즈골드

크로노스위스 오푸스로즈골드

아레나코리아, 지큐, 에스콰이어 등 남성 라이프스타일 잡지의 적지 않은 페이지가 명품 시계 광고로 메워지고 있으며 갤러리아매거진, 스타일 H, 에버뉴엘 등 백화점 VIP멤버십 잡지에서도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시계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팔뚝을 떠났던 시계가 브랜드를 번쩍이며 되돌아온 것이다.

롤렉스, 오메가, 브로바 등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익히 알고 있던 브랜드 외에도 까르띠에, 브라이틀링, 크리스찬디오르, 뤼비통, 피아제, 에르메스, 태크호이어 등 1000만 원에서 1억 원을 넘겨버리는 명품 손목시계가 모두 한국인의 팔뚝에 ‘떡하니’ 앉아 있는 것이다. 최근 연예인 가짜 명품시계 사건도 실제 연예인만의 얘기가 아니다.

왜 요즘 남자들이 무겁고 비싼 시계를 다시 차는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복고적 ‘무게감’이라는 분석이다. 신분의 무게감, 재산의 무게감, 스타일의 무게감, 남성 권위의 무게감, 과시의 무게감, 그리고 특화의 무게감 등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무게감은 남성 권위의 복고적 무게감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사실상 인류는 여성 강세로 돌아가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위축된 남성에게는 실추된 권위를 되찾기 위한 모티프가 필요했는데, 그때 나타난 존재가 바로 문화적 전통을 지닌 명품시계라는 게 트렌드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크로노스위스 토라스틸

크로노스위스 토라스틸

최근 시계를 구입한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때 몽블랑, 워터맨 등 만년필이 남자의 권위를 지켜주는 문화 콘텐츠였지요. 그러나 만년필은 브랜드별 스타일은 많아도 많은 브랜드가 알려지지 않아 남자의 호기심을 끄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시계는 워낙 다양하고 마케팅도 세게 하다보니남자의 부러움의 대상이 됐습니다. 제품의 히스토리와 컨셉트를 살핀 뒤에 구입하니까 제 어깨가 더 든든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얼마 전 만년필 명품 브랜드인 몽블랑에서는 상해 필름파크에서 만년필 생산 100주년 프로모션을 열었다. 이런 행사는 수집가에게 매우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이런 큰 행사에서 곡 판매되는 한정판 제품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콜렉션의 기쁨도 있지만 그것은 훗날 자손에게 매우 가치있는 유산이 될 수도 있으며 금전의 가치로 되돌아올 수도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행사에서는 ‘몽블랑 100주년 솔리테어 마운틴 마시프 스켈레톤’이라는 이름의 한정판이 단 세 개 출시됐는데, 1277개의 화이트 다이아몬드과 123개의 블루 다이아몬드가 43방향으로 빛나고 있으며 가격은 1억4000만 원 정도였다.

명품시계를 구입하는 것은 일종의 예술작품을 구입해 문화적 포만감과 투자행위로서의 가치를 누리는 것과 동일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특히 브랜드의 영속성이 중요한데, 시계를 고를 때 제품의 역사과 컨셉트를 눈여겨 보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 NTT의 마케팅 대행 활동을 하고 있는 마케터 조진용씨(35)는 “제품의 컨셉트를 알아야 그 권위의 귀환을 즐길 수 있다”며 돈으로 사들인 어설픈 권위의 경계를 강조했다. 제품의 컨셉트를 잘 모른 채 부유함 하나로만 구입할 경우 큰 돈을 지불한 효과가 제대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고가 명품이 있나 실제 매장에서 팔리고 있는 명품시계의 가격을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명품시계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최근 짝퉁 명품시계 파동에서 보듯이 해당 매장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메가는 1848년 스위스 비엘에서 시작한 시계의 살아 있는 역사다. ‘과학과 예술의 완벽한 조화’라고 불리는 시계미학의 개척자로 인정받고 있다. 오메가 씨마스터 아쿠아테라 옐로 골드는 18캐럿의 골드에 베젤(테두리)을 다이아몬드로 마무리했다. 크리스탈 유리에 150m 방수 기능을 가진 이 시계의 가격은 1100만 원이다.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더블 이글 가격은 335만~500만 원대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투명시계’라고 부르는 ‘오픈워크’ 스타일의 효시이다. 1889년부터 손목시계를 만들기 시작해 1912년 최초로 토너 형태의 시계를 개발한 이래, 1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클래식한 시계를 제작했다. 말테 스켈레톤은 77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예술작품이다. 다이아몬드가 세팅되지 않은 시계의 가격이 4751만 원이며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제품의 가격은 무려 5586만 원이다.

▲IWC는 파일럿을 위한 전문 시계라는 컨셉트로 1868년 스위스에서 문을 연 브랜드이다. IWC는 International Watch Co의 약자로 풀네임은 IWC Schaffhausen. 샤프하우젠은 창업자의 이름이다. 뉴 클래식 컬렉션 오브 파일럿 워치는 350만~380만 원대. 빅파일럿 워치는 1400만 원 선이다.

▲크로노스위스는 독일 태생의 게르트 랑(Gerd R. Lang)이 1981년 설립했다. 고집스럽게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 업체다. 제품에 늘 ‘Fazination der mekanic’(Fascination with the Mechanical Movement-기계식 시계의 매력에 빠짐)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정도다. 오퓨스로즈골드는 사파이어 글라스를 통해 시계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제품으로 일종의 예술품이다. 오퓨스의 사전적 의미는 ‘일’ 또는 ‘예술작품’이란 뜻으로 시계 속에 그 의미를 고스란히 담았다. 1770만 원이다.

이밖에 롤렉스(스위스), 피아제(스위스), 브라이틀링(스위스), 에르메스(스위스), 크리스찬디오르(프랑스), 테그호이어(스위스), 쇼메(프랑스), 예거 르꿀뜨르(스위스), 브레게(스위스), 티파니앤코(미국), 까르띠에(스위스), 반클리프 아펠(프랑스), 프랭크뮐러(스위스), 불가리(스위스) 등이 있다.

일반인이 많이 사는 시계

- 베르사체 V-SPORTS(12C99D001-S001)

베르사체에서 만든 스포츠 명품 스타일의 손목시계다. 교체가 가능한 TOP-RING이 특징이며 3가지 디자인의 TOP-RING 전용 보관상자가 있다. 98만 원.

- 보스 허브라인(BOSS Hub LINE)

휴고 보스 시계에서 CEO를 겨냥, 2006년 테이크 오프(take off)라는 컨셉트로 내놓은 시계다. 뛰어난 디자인과 50m 방수 기능을 가지고 있다. 49만5000원.

- 보스 벨로시티 라인(BOSS VELOCITY LINE)

자동차경주 F1팀인 맥라린(McLaren)의 자동차 핸들 부분을 모티브로 한 스포츠 스타일 제품이다.
남성 전용으로 크로노그래프 기능, 50m 방수 기능.

- VICTORINOX SWISS ARMY Mach Series

빅토리 녹스 스위스 아미사는 맥가이버칼로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이다. 고가 오토매틱 시계에만 적용되는 3, 6, 9에 크로노 기능이 있다. 159만 원.

- 디젤 워치(DIESEL WATCH) 밀리터리 스타일

1978년 ‘캐주얼 웨어의 오뜨 꾸뛰르’라는 모토 아래 탄생된 캐주얼의 명품 브랜드다. 밀리터리 스타일의 밴드 버전으로 크로노 무브먼트와 투박하고 기계스러운 느낌이 독특하다. 가격 26만6000원.



이영근〈객원기자·나비콘텐츠플래닝〉 Ichek007@navi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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