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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일 등 인공위성 강국의 현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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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사람 보내고, 달에 유인기지 만든다

각국의 인공위성. <오상도 기자>

각국의 인공위성. <오상도 기자>

세계가 ‘우주 로켓’에 앞다퉈 몸을 싣고 있다. 우주개발과 우주시장 개척이 국가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가 된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우주개발 시대의 중심에서 한국도 뒤늦었지만 이런 시대적 흐름에 소외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8월 무궁화위성 5호와 아리랑 2호를 잇따라 발사에 성공한 것을 계기로 인공위성 강국의 우주개발 현주소를 비교해본다.

미국 미국은 2003년 콜롬비아호가 귀환 도중 폭발사고로 주춤했던 우주개발 사업을 최근 재추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2020년까지 우주개발비로 약 1000억 달러(100조 원)을 투자하는 우주개발 로드맵을 채택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월 “인간의 삶을 증진시키며 미국의 기상을 높이기 위해 우주탐사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목표는 ‘거창’하다. 2020년까지 달에 영구기지를 세우고, 화성에 인간을 보내는 계획을 수립했다. 로드맵에는 ▲2008년 무인 우주선에 의한 달탐사 시도 ▲2010년 디스커버리호 등 노후한 우주왕복선 퇴역 ▲2014년 최신 탐사선 CEV(Crew Exploration Vehicule) 개발·운행 ▲2015~2020년 달 영구기지 건설 ▲2030년 화성 유인탐사 등이다. 미국은 달 영구기지 건립을 위해 다른 지역에 비해 수분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남극섀틀러 클레이터에 산소추출 실험을 해왔다.

한편 부시 행정부가 적의 군사·첩보 인공위성을 파괴하기 위해 강력한 지대공(地對空) 레이저 무기를 비밀리에 개발 중이다. ‘스타파이어 프로젝트’로 명명되는 이 작업은 지난 2월 의회에 제출된 공군의 예산문서에서 실체가 드러났다.

중국 중국은 우주를 향한 야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유인우주선 선저우 6호 발사성공에서 우주 개발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중국의 두 번째 유인우주선인 선저우 6호 발사 성공은 중국의 우주개발 사업이 본격 궤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성과로 평가된다. 중국의 유인우주선 계획은 1992년 시작돼 11년 동안 180억 위안(약2조7000억 원)을 투입한 결과였다. 이와 별개로 중국은 지난해에만 10개의 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2003년 10월 중국이 유인 우주지행으로 달 표면에 대한 탐사 공정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창어(女+常 女+我) 프로젝트’로 불리는 달나라 탐사 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2010년 달에 무인우주선을 착륙시키며 2017년에는 달에 사람을 보내고 궁극적으로는 자체 우주정거장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인공위성. <경향신문>

다양한 인공위성. <경향신문>

중국은 특히 미래형 전쟁인 스타워즈 부대 격인 이른바 ‘톈쥔(天軍)군대’로 명명된 우주군 창설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우주개발이 곧 ‘전략적 국경’이란 개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발사체 기술도 세계 최고라는 러시아의 프론이나 프랑스의 아리안에 버금간다. 우리의 아리랑 2호 위성 발사체 제공에 중국도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중국에 자존심 상한 일본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2025년까지 달에 유인지기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올해 초 발표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본떠 시행하다 1990년대 중반에 포기한 “HOPE 프로젝트’를 재가동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5년 내에 달 표면 탐사로봇을 개발하고, 이후 10년간 인간이 달에 장기 체류하는데 필요한 물과 에너지를 확보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2025년에는 유인우주선을 발사하며 이 과정에서 태양 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시설 개발도 함께 하게 된다.

얼마전 일본 과학기술심의회는 ‘2006~ 2010 과학기술 기본계획’이라는 이름으로 ‘10대 꿈의 기술’을 발표했다. 놀랍게도 이중 3개가 우주 관련 기술이다.

1990년대 중반 H2A 로켓을 개발하고 2003년 이 로켓 6호기를 이용해 무인우주탐사선을 발사했으나 실패해 한동안 침체에 빠졌던 일본은 올해 2월 26일 H2A 7호기를 이용한 무인우주탐사선의 발사성공으로 다시 우주개발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민간분야에선 쓰쿠바 우주센터가 단연 앞서간다. 쓰쿠바 우주센터는 국제우주정거장 일부를 제작하며, 이미 8명의 우주인을 배출했다. 물론 일본의 달 탐사 등에도 이 회사가 깊이 관여되어 있다.

유럽연합 유럽 우주산업의 시작과 끝은 발사체업체인 ‘아리안 스페이스’와 통신위성 개발업체 ‘알카텔 알레니아 스페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리안 스페이스는 40억 달러 규모인 세계 발사체 시장의 55%를 장악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유럽 몇몇 국가가 힘을 합쳐 유인우주선 발사를 목표로 아리안 로켓을 개발했다. 이 아리안 로켓은 현재 5호까지 개발됐으며 그동안 수십차례 인공위성 발사에 사용됐다.

세계적인 통신위성 개발업체 알카텔 알레니아 스페이스를 통해 미국 록히드 마틴을 바짝 추격하는 그들의 비전과 위성제작업체 1위 찬탈을 위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무궁화 5호도 이곳에서 발사됐다.

유럽의 본격적인 우주개발계획은 2001년 영국, 프랑스 등 유럽 17개국이 공동으로 유럽우주개발기구(ESA)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ESA는 달 탐사, 나아가 2025년까지 화성에 유인우주선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오로라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에 따라 2003년 9월에 약 1억 유로(약 1300억 원)를 들인 유럽 최초의 무인 달 탐사선인 ‘스마트 1호’가 발사됐다.

유럽은 달 탐사는 미국이나 중국에 뒤졌지만 화성 탐사에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한다. 2003년 유럽이 쏘아올린 무인 화성탐사선 ‘마르스 익스프레스’호는 화성에 물이 있다는 사실 등을 발견하는 등 값진 활약을 하고 있다.

인공위성의 변천사를 아시나요

인공위성의 태동기인 1960년대 인공위성은 대부분 군사목적으로 개발됐다. 이미 개발된 대륙간 탄도탄을 개량하여 사용했던 것. 특히 이 과정에 쿠바 미사일 사태는 인공위성 개발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 이후 40여 년이 지난 현재 군사·상용·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유·무인 인공위성이 지구를 돌고 있다. 1965년 4월 6일 최초로 국제상용통신 위성인 인텔세트 1호인 ‘얼리버드’가 탄생, 북미와 유럽간의 통신수요를 충족시켰다. 통신능력은 전화 240회선과 TV 1개 채널을 중계하는 게 고작이었다.

최초의 상용실험위성은 기상위성·항법위성 등 정지궤도를 이용하는 것이나 1970년대 중반에 인공위성 중계에 의한 통신기술 접목되면서 인공위성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여기에서 주목을 끈 것은 극초단파를 이용한 TV직접 중계다. 인도에서 ATS-6호 위성을 통해 2500개의 마을의 소형지구국을 통해 교육방송을 시험적으로 중계했다. 미국은 1975년 케이블 TV방송, 전화·고속데이터전송을 목적으로 웨스타에 이어 새트컴을 발사했고 다음에는 전신전화회사의 전용으로서 콤사트위성을 발사했다. 사실상 인공위성 상용화를 주도하는 계기가 됐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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