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차세대 한류는 ‘춤꾼’이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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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비보이·비걸 화려한 비상… 열정·헝그리 정신으로 세계 겨냥

갬블러

갬블러

지난 8월 1일 저녁 9시. 홍익대 부근 한 제약회사 건물 지하에 마련된 소극장에서 뿜어내는 열기가 후끈하다. 500여 좌석도 모자라 무대 앞 바닥에는 수십 명의 젊은이가 빼곡히 앉아 환호한다. 객석에는 20~30대 여성은 물론 40대 넥타이 부대까지 눈에 띈다.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며 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비보이(B-Boy)들이 벌이는 공연이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라는 제목으로 펼쳐지는 이 공연엔 많은 비보이가 출연, 현란한 춤을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비보이 전용극장 개관과 함께 시작한 이 공연은 연일 매진사례를 보이며 흥행중이다. 이 작품을 제작한 SJ비보이즈의 최윤엽 대표는 “비보이가 10대와 20대 젊은이들만의 문화라는 인식은 잘못됐다”며 “이 공연만 해도 30대 관객이 가장 많고 외국인 관객도 20%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연장에는 비보이를 소재로 한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는 일본인 관계자 일행도 입장, 한국 비보이들의 춤솜씨를 눈여겨봤다.

2001년부터 주요 대회 잇따라 석권

거리의 춤꾼, 비보이가 한류의 차기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비보이는 브레이크 댄스를 전문적으로 추는 사람을 말한다. 여성은 비걸(B-Girl)로 부른다. 비보이의 춤은 브레이크 댄스뿐 아니라 힙합댄스, 하우스(House), 파핑(Poppin), 로킨(Rockin), 프리스타일 등 여러 가지 스트리트 댄스가 혼재되기도 한다.

비보이가 아웃사이더에서 주류문화로 두각을 나타낸 데는 우리나라 비보이들이 국제무대에서 잇따라 세계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은 것과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 비보이들은 2001년부터 독일의 ‘배틀 오브 더 이어’ 3년 연속 우승, 영국의 ‘비보이 챔피언십’ 2년 연속 우승 등 세계 주요 대회를 잇따라 석권했다. 8월 6일부터 28일까지 영국에서 열리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는 한국적 비보이를 내세운 그룹 ‘묘성’이 참가해 실력을 뽐낸다.

비보이들의 달라진 위상은 비보이를 소재로 한 드라마, 넌버벌 퍼포먼스(무언극) 제작 등 다양한 문화장르로 비보이들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아웃사이더의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선 것이다. 케이블방송 M.net이 지난 5월 비보이 1세대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브레이크’를 방영한 데 이어 지상파 방송 MBC도 7월 26일부터 수목 미니시리즈로 비보이를 소재로 한 ‘오버 더 레인보우’를 방영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는 실제 비보이 스타인 파핀현준, 2005년도 ‘베틀 오브 더 이어’ 우승자인 신영석도 출연한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를 관람하며 환호하는 관객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를 관람하며 환호하는 관객들

‘난타’ 제작사인 PMC프로덕션은 넌버벌 퍼포먼스 ‘비트 앤 비보이’(가제)를 제작, 연말 정동 도깨비 전용극장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25일 출연진을 뽑는 오디션도 개최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또 다른 넌버벌 퍼포먼스 ‘점프’를 제작한 예감도 비보이 열풍에 뛰어들었다. 예감은 최근 비보이를 주인공으로 한 차기작의 대본작업을 마치고 내년 4월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PMC프로덕션의 송승환 대표는 “‘난타’의 성공 이후 타악 위주의 넌버벌 퍼포먼스가 잇따라 제작됐지만 이제는 한계에 부딪혔고 그 대안으로 부상한 게 비보이를 소재로 한 넌버벌 퍼포먼스”라며” ‘비트 앤 비보이’는 비보이의 춤과 사물놀이가 조화되고, 드라마가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아예 세계 투어 공연을 계획하고 역량 있는 30명의 비보이들을 선발, 훈련중인 프로덕션도 있다. 한마루커뮤니케이션은 ‘굿모닝 비보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가지고 올 하반기 국내 순회 공연에 이어 내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해외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이 회사 허순길 회장은 “비보이와 일렉퓨전앙상블, 피아니스트가 한데 어우러진 작품으로 비보이 공연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한 공연이 될 것”이라며 “10년 이상 롱런할 대작으로 꾸밀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드라마’ 더하면 성공 가능성 커

한국관광공사는 비보이를 전략 문화상품으로 키우기로 했다.

그렇다면 미국 흑인문화임에도 불구, 한국의 비보이가 강한 이유는 뭘까. 2001년 ‘배틀 오브 더 이어’ 1위를 차지했고 현재 비보이그룹 에이블(Able) 리더인 한상민씨는 정신력과 재능을 꼽는다. 한씨는 “우리나라 비보이들은 리듬감이나 테크니컬한 고난이도 춤 그리고 리듬감이 뛰어나다”며 “월드컵 때 똘똘 뭉친 붉은악마처럼 한국의 비보이들은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이 강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마루커뮤니케이션 허순길 회장은 “한국의 비보이들에게는 헝그리 정신이 있다”며 “다른 모든 걸 제쳐두고 오직 춤이 좋아 뛰어든 청년들인 만큼 열정이 각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에서 활약하고 있는 비보이들 중에는 춤이 좋아 고교를 중퇴한 10대들도 있고, 요리사나 펜싱선수였다가 전직한 이 등 다양한 춤꾼들이 포진돼 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펜싱선수로 활약, 주요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비걸 윤자영씨(22)는 “힙합음악과 비보이 춤에 빠져 이 길을 택했다”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 특유의 ‘흥’이 오늘날의 비보이를 만들어낸 토양이라는 시각도 있다. 송승환 대표는 “예부터 우리 민족은 춤과 노래를 좋아했고, 이는 1990년대 댄스뮤직의 유행 그리고 댄스뮤직으로 촉발된 한류열풍과도 무관치 않다”며 “특히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춤을 출 정도로 춤문화와 친숙해 훌륭한 비보이들이 탄생할 가능성이 한층더 높다”고 설명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비보이의 수는 3000여 명에 달한다. 이 중 개런티를 받거나 스폰서 기업이 있는 A급 팀은 10개 내외다. ‘익스프레션’ ‘갬블러’ ‘라스트포원’ ‘익스트림 크루’ ‘리버스 크루’ 등을 최고의 팀으로 꼽는다. 실력을 인정받은 비보이들은 공연 외에도 CF와 영화 촬영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비보이는 한류의 차기 주역 구실을 수행해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각은 긍정적이다. 특히 댄스가요로 한류붐이 인 중국, 일본, 동남아 지역에서 한국 비보이의 성공은 꽤 가능성이 높다는 것. 문제는 드라마다. 단순히 춤만 2시간 가까이 보여주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탓에 얼마나 탄탄하고 흥미로운 드라마를 가미해 춤솜씨를 보여주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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