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리는 신앙의 대상?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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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현등사 반환요청에 삼성문화재단 거부… 조계종·국립중앙박물관도 ‘사리 충돌’

지난 5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불사리와 장엄’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사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 5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불사리와 장엄’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사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리는 문화재가 아니다’ ‘나폴레옹의 송곳니와 베토벤의 머리카락처럼 사리 유물이 거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석가모니 부처 또는 스님을 다비(화장)하고 난 뒤 생긴 사리 유골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은 조계종과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 가평 현등사와 삼성문화재단 사이에 펼쳐졌다. 사리는 문화재가 아니라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므로 돌려달라는 측과 문화재이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는 측의 팽팽한 의견이 맞섰다.

가장 먼저 불붙은 것은 가평 현등사와 삼성문화재단의 법정 공방. 지난해 현등사는 삼성 리움박물관에 소장 중인 현등사 사리구를 돌려달라고 요청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사리구에 ‘현등사’라는 명문이 명백히 적혀 있으니 사리구를 현등사로 돌려달라는 것.

사리구를 둘러싼 법정 소송은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6월 29일 마지막 변론을 남겨두고 있어 7월 중 1심 판결이 날 것으로 보인다. 원고인 현등사 측은 올해 초 문화재청에 사리에 관한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지난 3월 문화재청은 ‘사리를 넣어 안치하는 사리장엄구(사리함, 사리병, 사리기 등)는 문화재로 지정된 예가 많으나 사리 자체는 지정된 바가 없다’ ‘사리는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 의의가 있는 것이므로 문화재인 사리장엄구와 별도로 사리 단독으로만 문화재로 지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회신했다.

문화재청 ‘문화재 아니다’ 유권해석

현등사 측은 문화재청의 회신을 근거로 사리가 종교적인 신앙의 대상임을 강조하며 사리 자체가 취득할 수 없는 물건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법률적으로는 사리가 죽은 자의 신체 일부이므로 매매 또는 유통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리움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현등사 사리구. 경주 황룡사 9층목탑에서 나온 사리. 전북 남원의 석탑에서 발견된 녹색의 유리 사리병(위부터).

리움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현등사 사리구. 경주 황룡사 9층목탑에서 나온 사리. 전북 남원의 석탑에서 발견된 녹색의 유리 사리병(위부터).

삼성문화재단 측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화우는 반대 논리를 펴고 있다. 법원에 제출한 피고 측 준비서면에서 화우 측은 ‘나폴레옹의 송곳니와 머리카락, 베토벤의 머리카락 등 이미 사망한 유명인의 신체 일부가 경매를 통해 거래되고 있으므로 사리 유물이 굳이 거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문화재청의 ‘유권해석’으로 사리 공방은 또다른 국면을 맞은 셈이 됐다. 사리와 사리구를 분리해서 볼 것인가, 아니면 하나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등사 측 소송진행을 맡고 있는 봉선사 혜문스님은 “사리와 사리구는 한 몸으로 현등사 3층석탑 사리구 모두를 현등사로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리 자체가 문화재일 수 없으니만큼 사리와,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구는 현등사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준비서면에서 삼성문화재단 측 역시 사리와 사리구를 하나로 보고 있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현등사 측과 삼성문화재단 측의 주장은 어떤 것을 중심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엇갈린다. 현등사를 비롯한 불교계에서는 종교적 신앙의 대상인 사리를 중심으로 사리구를 봐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삼성문화재단을 대리한 화우 측은 문화재인 사리구에 더욱 많은 가치를 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리는 현등사 소유, 사리구는 삼성문화재단 소유’라는 흥미로운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주시하고 있다. 혜문스님은 “그렇게 된다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것처럼 피 한 방울 흘리지 말고 살을 베라는 식의 판결이 될 것”이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도굴품이냐 선의의 취득이냐’ 논쟁

이 소송에서는 사리를 둘러싼 양측의 논쟁 뿐만 아니라 ‘현등사’라는 명문이 적힌 사리구를 도굴품으로 보아야 하느냐, 선의의 취득으로 보아야 하느냐 하는 점에서도 서로 맞서고 있다. 화우의 진정길 변호사는 “소송 중이라 법적인 쟁점에 대해 한 마디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입을 닫았다.

이 소송은 현등사가 재단법인 삼성문화재단 대표인 이건희 이사장을 피고로 지정함으로써 7월중 내려질 판결 결과를 두고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혜문스님은 “삼성문화재단 측에서 피고 이름을 다른 사람으로 해달라고 요구해왔으나 거절했다”고 말했다.

삼성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불교계에서는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해 ‘월간중앙’에 불교비판 기사가 실린 후 조계종과 삼성 간 갈등이 전면으로 부각되면서 이 사건이 바깥으로 불거져 나왔다.

삼성문화재단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화우도 화제다. 법무법인 화우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당시 변호를 맡았던 것으로 유명하며 대표변호사인 양삼승 변호사가 삼성문화재단의 감사로 재직중이다.

사리를 둘러싼 현등사와 삼성문화재단 간의 논쟁은 조계종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신경전으로 불똥이 튀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지난 5월 마련한 사리 특별전이 불씨가 됐다. ‘불사리와 장엄’이라는 이름의 이 특별전에서는 경주 황룡사구층목탑·감은사동삼층석탑·광주 서오층석탑·전주 남원 절터에서 나온 사리와 사리구가 전시됐다.

조계종은 “대부분의 불자들은 아무런 의례절차 없이 일반 문화재와 같이 전시라는 형태로 (사리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으며 숭고한 예배 대상을 한낱 전시물로 폄훼한 행위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항의공문을 보냈다.

당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사리를 전시할 경우 기독교 측의 반발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반발은 불교계 측에서 일어났다. 조계종은 항의공문에서 “사리는 전시나 보관의 대상이 아닌 만큼 불교계로 즉각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조계종 문화부 문화국장 혜조스님은 “사리는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할 대상이 아니다”며 “문화재청에서 사리는 문화재가 아니라고 사실 확인을 한 만큼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리를 불교계에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시된 사리는 모두 지금은 터만 남은 폐사지에서 출토됐다는 점에서 사리와 사리구의 소유자를 조계종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국립박물관으로 볼 것인지 논쟁이 될 수 있다. 조계종은 문화재청이 폐사지인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를 인근 사찰인 도갑사로 넘겨준 2000년의 사례를 들면서 불교계로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박물관 측에서 보면 사리구 자체가 문화재이므로 각 해당 사찰이 문화재를 수장할 여건을 갖추고 있는가를 따져 볼 수 있다. 혜조스님은 “박물관 측에서 사리탑을 만들 경우 돌려줄 수도 있다는 전향적인 뜻을 표명한 바 있어 조계종에서는 이를 추진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곤혹스럽긴 하지만 법적인 소송을 통해서만 돌려줄 수 있다는 확고한 입장을 나타냈다. 성낙준 유물관리부장은 “국가 소유이므로 조계종에서 충분한 권리를 주장해 법률적으로 소유권이 인정된다면 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물관 측은 4개의 사리·사리구가 출토된 각 사찰의 조건이 다른 만큼 소유권 문제도 각각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성 부장은 “각각 4곳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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