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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민심 쓰나미’에 무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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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향후 20년을 집권할 정당’임을 자부하며 출범한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 국면에서 불과 3년 만에 국민들로부터 처절하게 배척을 당했다. 당내 세력간 소모적 대결 때문인가. 과격한 정치스타일 때문인가. 열린우리당은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지금 처한 위기의 원인을 진단해본다.

5월 25일 열린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주요당직자 비상회의 참석자들이 ‘싹쓸이를 막아주십시오’ 라고 적힌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5월 25일 열린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주요당직자 비상회의 참석자들이 ‘싹쓸이를 막아주십시오’ 라고 적힌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5·31지방선거는 내년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참여정부 집권 3년에 대한 중간평가 의미를 갖는다. 그 결과는 소용돌이 치게 될 대선정국의 지형과 흐름을 결정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여야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였다. 하지만 승부는 이미 진작에 갈라져 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당의장에 당선된 뒤 하루도 쉬지 않고 뛰었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낙담하더니 급기야 “열린우리당이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2+α만 얻으면 완패가 아니다”라고 완패의 기준을 하향조정했다.

하지만 ‘+α’라는 덤조차 기대하기 어려워진 형편이다. 정 의장이 당의장으로 당선된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절반의 성공’(8개 광역단체장)을 호언하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

선거국면 존재 찾기 어려운 노무현

민심을 얻지 못하는 정당은 미래가 없는 법이다. 선거에서 집권여당의 당당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 결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5·31지방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존재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노무현 대통령은 거의 선거이슈조차 되지 못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쟁점은 고작해야 ‘지충호 테러사건’과 관련 제기된 ‘노무현 정권 무능론’이다. 노무현 정권이 제1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무능하다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여론조사기관인 메트릭스 코퍼레이션 이경태 정치담당본부장은 “집권여당이 일을 잘한 대로, 또 못한 대로 선거에서 평가받기 마련인데 이번 선거는 그렇지 않았다”면서 “이는 물론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배척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대통령중심제 아래 책임정치라는 기본적 틀이 깨진 선거”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여러 후보는 당 상징색인 노란색을 거부했다.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는 보라색을, 진대제 경기지사 후보는 파란색을 선택했다. 또 강 후보는 “2월 전당대회 이후 당지도부가 한 일이 무엇이냐”며 당과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진 후보는 16개 단체장후보 공동광고에도 출연을 거부했다. 당과 후보의 분리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사실 ‘여당 없는 선거’가 진행된 셈이다. ‘여당 없는 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다. 대통령은 여당의 힘이고, 여당은 대통령의 지렛대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여당은 대통령을 보호하고 대통령은 여당을 지키는 상호보완적 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당·청 사이의 일체감 부재가 낳은 결과라는 게 정가의 일치된 견해다. 열린우리당은 ‘새로운 정치’ ‘잘 사는 나라’ 그리고 ‘따뜻한 사회’를 창당이념으로 2003년 1월 출범했다. ‘100년은 갈 정당’을 자임하고 ‘앞으로 20년을 집권할 정당’임을 자부했다. 불과 창당 3년 만에 열린우리당의 현재의 모습은 그런 포부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정책집행 과정 합리성 못 갖춰”

당내 일각에서 “존망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깊은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커가고 있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은 지난 5월 25일 비상의원총회였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이날 국회의원과 당직자들은 지원유세를 중단했다. 대신 “한나라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는 노란색 리본을 가슴에 달고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런 상황에 하루 선거운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당직자는 “백약이 무효”라면서 “정당은 민심과 동행해야 한다는 걸 절감할 뿐”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단지 지방선거 패배에 그치지 않는다. 권력과 민심 사이의 복잡한 함수관계에서 얻어진 결론은 ‘절망’이다. 속내를 드러내는 의원들의 상황인식을 거의 공황(패닉)상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황이 어렵다. 국민이 실망했고, 질책이 너무 무섭다.”(김근태 최고위원)
“두려워 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절망’이다.”(김한길 원내대표)
“기초단체장에서 승리가 확실한 것은 전북에서 2곳 뿐이다. 당에서
20여 곳이라고 말한 것은 접전지역까지 포함해서다.”(염동연 사무총장)
“쓰나미 같은 위기감이죠.”(김부겸 의원)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은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열린우리당이 지금 처한 위기의 원인에 대한 통일된 진단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 원인이 워낙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국민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와 이미지가 그것이다. 메시지는 집권여당이 추진하는 정책의 다른 표현이다. 정책은 반드시 정치 효용성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된다. 그것은 곧 국민지지도와 연관되는 게 보통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10%대의 정당지지도가 열린우리당의 정책에 대한 평가”라면서 “집권여당의 정책적 능력을 ‘무능’으로 판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열린우리당이 도덕성과 미래지향적 정치를 통한 차별화를 꾀했는데 정책집행 과정에서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게 그런 평가의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도 “신자유주의 개혁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국민의 불신이 확산되고 누적됐다”면서 “참여정부의 지지기반인 중산층과 서민의 생활이 더 어려워지고 사회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등을 추진한 게 그 이유”이라고 말했다.

이경태 본부장은 “포퓰리즘을 잘 이용해서 집권한 참여정부가 신자유정책을 펴니 지지기반이 이탈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면서 “대표적인 예는 참여정부가 주도하는 미국과 FTA협상 추진”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기반과 참여정부의 정책수혜 대상이 다름을 지적하는 얘기다.

이런 괴리는 곧 집권세력의 분열로 이어졌다. 열린우리당 내 세력간의 상호비판과 견제가 건전한 경쟁관계로 이어지지 못한 것도 열린우리당의 선거참패 원인이라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은 실용주의적 진보세력과 개혁중심의 이념적 진보세력이 끝없는 갈등을 빚으면서 서로의 성장을 저해한 측면이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3년 동안 당 의장이 몇 명이나 바뀌었느냐”고 반문하면서 “용서될 수 있는 문제도 책임을 따져 묻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특히 “선거전략과 당 자존심의 충돌”이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당지도부에 대한 비판과 이 비판에 대한 당직자의 역공”이라고 적시했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노무현 정권은 부산정권’이라는 발언을 한 것을 한 예로 꼽았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지역적 기반은 호남”이라고 전제하면서 “그런 정당이 선거에서 표를 얻으려고 부산정권으로 탈바꿈함으로써 호남정서의 이탈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국토균형발전과 지역주의 타파는 참여정부 국정운영의 제1과제였다.

여기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정기조는 두 세력 사이에서 줄타기는 물론 열린우리당을 부정하는 행보도 튀어나왔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와 관련한 갈등과 한나라당과의 대연정론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당내 세력과 당·청 사이의 끊임없는 불협화음은 유력한 대권주자가 부상하지 못하도록 작용하는 원인이 됐고 결국은 이게 부메랑이 되어 정당지지도의 추락을 자초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강용진 국민대 겸임교수는 “우리나라는 정당 지지도와 정당지도자의 인기도가 일치하는 현상을 보인다”면서 “미래 권력에 대한 기대수준이 낮은 게 정당지지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열린우리당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일컬어지는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최고위원의 지지도를 더한 게 10%를 약간 상회할 정도다. 이는 선두권을 달리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고건 전 총리의 지지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도 이에 수긍하면서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하는 법”이라고 거들었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 대해 국민의 집단적인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는 무능함, 가벼움 거기다가 사회적 양극화 속에서 어려운 서민생활 등이 집권여당에 화살이 되어 돌아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무현 정부 위기는 진보 위기”

열린우리당의 이미지 역시 ‘독선’ ‘아집’ ‘냉소’로 점차 굳어져 역시 지지도의 반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홍형식 소장은 “처음엔 소신과 신념으로 여겨지던 정책이 토론진행 과정에서 독선이나 아집으로 비치는 일이 허다했다”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도 “정책내용을 보면 결코 자극적이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 “노무현 정권은 ‘스타일 급진주의’로 인해 불필요하게 손해를 많이 봤다”고 지적했다. ‘지충호 테러사건’도 그 예라는 게 손 교수의 얘기다.

이런 현상에 대해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열린우리당은 이념의 덫에 걸렸다”고 말했다. 과격한 정치스타일이 반복되면서 국민으로 하여금 열린우리당을 무조건 거부하게 됐다는 얘기다.

이런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의 위기는 진보세력의 위기로 확대해석되고 있다. 당 내부에서도 진보세력의 위기에 대한 경고가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전략기획통인 민병두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민주평화세력이 집권 8년 만에 이렇게 무너지고 마는가 하는 참담한 심정이다”면서 “때로는 무기력해지고, 때로는 대안의 부재에 스스로 목말라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민 의원의 안타까움은 통일로 가는 이정표 설정, 부패 없는 사회와 정치개혁의 기반 구축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 실현에 일조했다는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평화민주세력이 외면당하는 데 대한 자조인 셈이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선거지원유세 때마다 “우리가 이룩한 것은 총과 칼을 앞세운 독재정권의 테러와 폭력에 피와 눈물로 맞서 쟁취한 것”이라면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독식을 견제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진보세력의 위기’를 ‘보수세력의 승리’ 규정할 수 없다는 게 정치분석가의 일치된 견해다. 진보세력의 현재의 위기는 보수세력이 잘해서라기보다, 스스로 잘못해서 외면받은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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