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 이야기 & 노동하는 섹슈얼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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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남 이야기

중남미 남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BOOK]유부남 이야기 & 노동하는 섹슈얼리티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라틴아메리카는 거의 모든 면에서 신비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인도나 티베트처럼 라틴아메리카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기도 한다. 그곳의 고대 문명, 정치, 축구·야구와 같은 스포츠, 심지어 ‘야동’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는 흥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콜롬비아)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로 대표되는 라틴아메리카의 소설은 이른바 ‘마술적 리얼리즘’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갈래짓기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비롯한 여러 작품과 보르헤스의 ‘픽션’ 등이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찬사를 받으며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뒤이어 일반인들에게 낯설었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와 마누엘 푸익(아르헨티나)의 작품들이 속속 번역, 출간된 것도 라틴아메리카 소설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한다.

‘마술적’ ‘환상적’이지는 않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시도 나름의 특성을 보여주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옥타비오 파스(멕시코), 파블로 네루다(칠레) 등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정치를 대변하는 시들은 치열하고 뜨거웠던 민주화운동 시기를 거친 우리에게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들 작가와 작품은 이제 우리 눈과 귀에 익숙하다. 라틴아메리카의 신선함을 맛보게 해줄 작가와 작품이 아쉬운 때, 신성이 나타났다. ‘라틴아메리카 문학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전도유망한 젊은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마르셀로 비르마헤르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그의 작품집 ‘유부남 이야기’는 라틴아메리카 소설의 또 다른 맛을 선사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유부남 이야기’는 그의 유명한 유부남 시리즈(‘유부남 이야기’ ‘새로 쓰는 유부남 이야기’ ‘마지막 유부남 이야기’) 중에서 7편의 중·단편을 묶은 것이다.

‘유부남 이야기’는 라틴아메리카 하면 떠오르는 ‘마술적’ ‘환성적’인 이야기와는 구별된다. 그렇다고 마누엘 푸익의 ‘거미’처럼 실험적이지도 않다.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이며 재치가 넘치고 극적반전도 짜릿하다.

이 작품집에 등장하는 유부남은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평범한 중년 유대인 남성이다. 돈이 많은 자본가도, 그렇다고 육체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도 아닌, 그야말로 소시민에 속하는 인물이다.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를 감안할 때 이 작품집에 일상적인 이야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나라의 소시민 중년 남성은 보통 어떤 일상을 보내고 어떤 일을 겪는지 생각해보자. 현재 그 위치에 있다면 본인의 삶을 떠올려보자. 직장을 다니고, 동료들과 재테크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섹시한 여인을 보면 본능에 사로잡히지만 처자식이 있어 애써 억누른다. 때론 옛연인을 떠올리며 야릇한 상상에 젖기도 하고 혹은 정말 옛연인을 만나 핑크빛 연애시절 얘기를 나누며 ‘위험한 관계’로 가기도 한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 앞다퉈 추억을 끄집어내면서 거나하게 회포를 풀기도 하고, 내 앞길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기도 한다. 그리고 항상 중요한 길목에서는 처자식이 내 행복임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비르마헤르의 ‘유부남 이야기’ 또한 방금 열거한 생활에서 결코 먼 거리에 있지 않다. 재테크에 관한 논의가 없고 ‘바람’과 ‘섹스’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만 다르다.

옛사랑을 우연히 만나 회상에 젖는 첫 작품 ‘마차’와 어린시절 친구에게 그의 숨은 가족사를 듣는 ‘굳게 닫힌 관에 부쳐’,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서 알게 된 여인과 한순간 바람을 피우는 ‘세르비뇨 거리에서’는 전형적인 소시민 유부남 이야기다. 그 외의 작품들은 굳이 유부남이 아니어도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 외의 작품들이 유부남 이야기로 묶일 수 있는 까닭은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에서 어쩔 수 없이 그가 ‘유부남’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꽤 쉽게 읽히면서도 예술적인 맛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게 해주는 ‘유부남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 라틴아메리카 소설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듯하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노동하는 섹슈얼리티

성매매 여성도 근로자다

[BOOK]유부남 이야기 & 노동하는 섹슈얼리티

2004년 9월 23일, 말 많았던 새로운 법이 발효됐다. 윤락행위와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제정된 ‘성매매특별법’이다. 궁극적으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이 법은 발효 후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고 ‘생계 위협’이라는 성매매 여성들의 집단적인 반발과 시위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활과 생계가 어려워졌다는 성매매 여성자들의 목소리는 일방적으로 거부당했다. 포주들의 기획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노동하는 섹슈얼리티’를 공동 집필한 저자들에 따르면 이런 문제가 파생된 까닭은 성노동에 대한 논의와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매매가 아닌 ‘성노동’으로의 인식전환을 주장한다. 인권침해가 극심한 성매매는 강제적이고 강간이나 마찬가지다.

성노동으로 전환되면 얘기는 사뭇 달라진다. 성매매 여성들을 노동자로 인식함으로써 그들에게 성매매를 그만둘 수 있는 자유를 준다면 극심한 인권침해도 생계의 위협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성매매를 신성한 노동으로 인정해야만 ‘쾌락을 담당하는 여성’과 ‘생식을 담당하는 여성’이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동등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할 일은 강제적이고 무조건적인 단속이 아니라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자유를 주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보호막이 될 수 있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또한 성상품화를 문제 삼기보다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낸 상품·소비사회를 먼저 질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노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창론자’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들의 주장이 ‘성매매 합법화’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성매매는 노동의 한 형태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성노동이라는 것도 사회가 건전해지면 약화되고 심지어 소멸된다고 말한다. 성매매 여성들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를 주자는 이들의 주장은 본인과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성매매에 나서는 여성들의 육성을 귀담아듣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함을 의미한다.

성노동론을 정리했다고 볼 수 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 아직 부족하고 낯선 성노동에 대한 논의의 불씨를 던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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