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 건국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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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아, 그랬지!” 그 시대의 풍경들

서울 중구 광교 부근, 1970

서울 중구 광교 부근, 1970

“사진 자체는 하나의 흔적이다. 찍고 나면 그 대상은 이미 사라진 뒤이다. 사진에 찍힌 것은 사진에만 있지, 현실공간에서는 이미 사라진 뒤이다.”

한정식 백제예술대 명예교수는 단편사진집 ‘흔적’을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지난 일기를 들춰보는 것, 옛 기억이 담긴 장소를 거닐며 회상하는 것, 수납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앨범을 꺼내 빛바랜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는 것…. 이 가운데 사진을 보는 것이 제일 선명할 것이다. 옛 시절을 담은 사진은 일기를 들춰보거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큼 추억을 나름대로 재구성해가며 더듬어보는 맛은 덜하지만 기억을 또렷하게 불러낸다는 강점이 있다.

‘흔적’은 모두 5편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1970년 서울 광교 부근을 담은 것으로 ‘개발, 철거’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단층 상점과 흙벽 집들이 늘어서 있고 한쪽에선 건물을 허무는 작업이, 다른 한쪽에서는 고층 빌딩을 올리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단층 상점에서는 이제 곧 건물이 철거되기 때문에 ‘폐업’이라는 말과 함께 ‘총정리’라는 문구를 달고 호객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는 일본과 관련된 것이다. ‘망령의 그림자’에는 1965년 한·일 국교수립 이후 관광 목적이든 사업 목적이든 우리나라를 방문한 일본인들이 주로 담겨 있다. 기모노 차림으로 우리나라의 고궁을 둘러보는 일본 여인들, 길거리 담벼락에 붙어 있는 일본어 교습 전단, 수입된 일본 잡지와 만화책들. 그때를 겪지 못한 사람들도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까지 애잔한 분위기 속에서 세상살이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이 사진집은 그러나 세 번째 이야기 ‘야스쿠니 신사’부터는 불만스럽다.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의 이런저런 풍경을 보여주는 것은 좋으나 “야스쿠니에 대해서 그만 신경을 끄면 좋겠다”며 “우리가 우리 조상을 아끼는 것이나 그들이 그들의 조상에게 경배하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은 우리 귀에 거슬릴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놓고 그들이 그들 조상을 섬긴다고 탓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정식 글·사진, 눈빛, 2만원

한정식 글·사진, 눈빛, 2만원

또한 10·26사건이 있던 1979년부터 전두환 정권이 탄생한 1981년까지의 광화문 네거리를 담은 네 번째 이야기 ‘폭풍의 계절’에서는 소제목만 보고 기대했던 당시의 뜨거운 기운은 찾아볼 수 없다. ‘경축’ ‘환영’ ‘기념’ 등을 하기 위해 광화문 네거리에 세워진 선전탑들만 보인다. 물론 선전탑과 거기에 쓰인 문구들도 시대상을 가늠하는 데 무리는 없다. 하지만 마치 자신의 앨범처럼 책장을 넘길 사진집에서 사람이 아닌 선전탑만 보고 싶어할 독자, 혹은 감상자가 많을지는 의문이다. 다섯 번째 이야기인 ‘분단의 그늘’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로 점철된 표어들만 가득하다.

아쉬움은 있지만 이 사진집은 노작가의 또 하나의 결실이자 우리에게 지난 시절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건국의 정치

고려말~조선초 ‘격동의 세월’ 40년

김영수 지음, 이학사, 3만 원

김영수 지음, 이학사, 3만 원

한 나라가 망하면 그 자리에는 또 다른 나라가 들어서게 마련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런 예를 몇 가지 볼 수 있다. 나라가 바뀔 때, 정권이 바뀔 때, ‘격동’ 아닌 시간은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위화도 회군’(1388)으로 500년 고려가 망하고 다시 500년 조선이 새롭게 시작되던 그 당시가 가장 극적이지 않았을까.

한 나라가 망할 때는 일찌감치 그 낌새가 보이는 법이다. 왕으로 상징되는 지도자가 극도로 방탕하고 부패하거나 아니면 기득권층의 안이함과 부정, 비리가 만연해 민심을 잃어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꽤 두꺼운 책인 ‘건국의 정치’는 후자의 경우를 보여준다. 이 책은 흔히 ‘여말선초’라고 하는 40여 년의 시기를 총체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특히 공민왕 때의 정황을 설명하는 데 많은 양을 할애한다. 원나라의 영향권에 있던 고려 말 22세에 왕위에 오른 공민왕은 민생과 정치운영 방식을 개선해 고려 초기의 건전하고 탄탄한 정치로 복귀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공민왕은 권문세족을 비롯한 세력의 끊임없는 저항에 부딪혔다. 왕과 신하 사이의 신뢰는 무너졌고 백성들도 더 이상 집권층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정치권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신돈을 발탁해 정치개혁을 단행했지만 이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정권은 이성계를 필두로 한 신흥 무장세력과 신진 성리학자들에게 돌아갔고 조선이 건국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말선초 40여 년을 ‘문명전환의 시대’로 규정한다. 원이 명으로 교체되는 대외적인 면도 그렇지만 대내적으로도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었고 나라의 이념 또한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우리 역사에서 여말선초에 굵은 밑줄을 그은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 시기를 역사와 정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일어난 시기라고 본다. 그러므로 그 시기를 탐독하고 연구함으로써 오늘날 일어나는 여러 갈등 문제들의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논문투여서 읽기가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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