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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외교로는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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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달라진 일본 대응… 독도 발언 수위 높이자 일본 ‘당황’

4월 2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38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4월 2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38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어제 밤에 한숨도 못잤다. 조용한 외교를 계속할지 결정할 때가 온 것 같다.”→ “과거에 부당한 침략전쟁으로 확보한 점령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 단지 그저 선의만으로는 해결이 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다”→ “‘때로 필요하다면 간교하기까지’라는 말을 쓰려고 했는데 좀 지나친 것 같아서 그 얘기는 안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의 독도 인근 배타적 경제수역(EEZ) 탐사와 관련해 쏟아낸 말들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외교란 가장 멋진 방법으로 가장 불쾌한 것을 행하는 것’이라는 외교가의 금언은 ‘무시’되고 있다. 일본의 행동은 불법 점령지에 대한 억지권리를 주장하는 것이기에, “화해의 말만으론 해결될 수 없다”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인 것이다.

한국의 강경대응 유도한 일본

일단 노 대통령의 강공드라이브는 효과가 있었다는 게 외교가의 일반적 평가다. 강경한 외교정책일수록 역풍이 크다는 외교가의 불문율이 다소 어긋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외교전문가는 “일본이 예상 외의 강경한 한국의 대응에 당황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흥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발언도 이같은 한국의 분위기를 고려한 언급이다. 열린우리당 김부겸 의원은 “만일 탐사선이 한국 영내로 들어온 뒤의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고 말하고 “노 대통령이 잘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번 외교 사태 초기에 “일본이 선거를 앞둔 한국의 강경대응을 유도한 전략”이라며 신중한 대응을 주문하며 한국 정부, 특히 청와대가 주도하는 강경대응에 걱정하던 목소리는 많이 줄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센터장은 “국제분쟁화하려는 게 일본의 생각인데 여기 말려들면 안된다”고 걱정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의 해저명칭 부여를 계기로 독도를 국제분쟁지역화 하려는 의도도 엿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도 비슷한 얘기를 하면서 “친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반전의 계기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외무성 사무차관의 4월 21일 방한이다. 그의 방한은 곧 치열한 외교전에서 한·일 양국의 간극이 상당한 부분 좁혀졌음을 암시한다. 공식접촉은 일본의 동해상 우리측 EEZ 수로측량 계획으로 촉발된 양국간 위기가 해결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는 단초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가 지난 4월 17일 라종일 주일대사를 통해 제시한 사태해결을 위한 조건(협상 중 탐사선 출항 중단)을 수용한 뒤 야치 사무차관의 방한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더욱 고무적이다.

그러나 EEZ의 문제는 결코 짧은 시간 안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진창수 일본센터장은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 수로측량은 결국 독도을 둘러싼 영토확정과 관련 있는 문제”라고 전제하고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한 EEZ 구획확정은 영원히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일 외무차관 협상테이블에 오른, 독도 주변 해저지형의 한국어 명칭 부여와 일본의 해저탐사는 EEZ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이 두 가지는 곧 해상 영토와 국민주권과 직결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유명환 외교차관이 4월 21일 일본 측량계획에 대해 “대한민국이 두쪽이 나도 끝까지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도영유권 문제에 영향을 주려고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이 유엔 ‘해양법협약의 강제분쟁 해결절차를 배제하기 위한 선언서’를 유엔에 제출한 것이다. 이로써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의도는 차질을 빚게 됐다. 한국 정부의 방해로 해양조사를 할 수 없다고 국제분쟁위원회에서 주장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막히게 된 때문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양국협상

상황이 이처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양국협상 현안은 두 가지로 압축이 된 상태다. 한국이 해저지명 변경 절차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밟게 될 것이냐와 일본이 ‘수로측량 시위’를 언제 그만둘 것이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는 6월 21~23일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수로기구(IHO) 해저지명소위원회에 ‘울릉분지’ 등 동해의 18개 바다밑 지명에 대한 국제공인을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일본은 ‘울릉분지’ 내에 일본이 ‘쓰시마분지’라고 표기한 지역과 겹쳐 있는 일부 분지를 문제삼고 있다. 그래서 우리측의 해저지명 추진을 철회하라는 게 일본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번 외교적 사태는 일본의 도발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면서 “해저측량과 지명변경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외교부는 조심스럽게 추진 시기를 조정할 수 있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지난 4월 19일 브리핑에서 “먼저 탐사계획을 철회하라”는 대전제 아래 “다른 문제는 그런 바탕에서 협의할 수 있다”고 말해 외교적 해결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았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도 “탐사계획을 철회한다면 우리 정부가 국제공인을 추진 중인 해저지명 제안설명을 적절한 시점으로 연기할 수 있다”고 신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우리 정부는 아직 ‘6월 추진’이라고 발표한 일은 없다”면서 “일본이 오버액션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해저탐사 방식과 시기는 야치 사무차관의 방한 성과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일본은 ‘탐사사태’ 해결을 위해 크게 3단계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이들이 분석한 시나리오는 ▲외교적 협상으로 통해 지명제안 포기와 측량작업의 동시 취소→ ▲일본측 EEZ만 해저 조사실시하면서 추가적 협상을 병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한국과 일본이 중복된 EEZ지역 조사강행→ ▲전면적이 조사 등이다.

이런 시나리오 의하면 한국이 해저지명 추진을 포기를 명시하지 않는 한 일본은 어떤 형식으로 든 해저조사를 실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일의원연맹 박종근 의원은 “일본은 결국 한국 EEZ을 계속 넘나드는 등 장기적인 전략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진창수 일본센터장은 “독도영유권과 독도주변의 EEZ 영역구획은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고 전제하고 “EEZ위원회를 같은 것을 만들어 잠정적인 ‘타협선’을 긋고 그 기준에 따라 해양조사, 어로활동 등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갈등을 줄어야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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