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총리 시대, 변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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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를 가지게 됐습니다.”
한명숙 신임총리는 다소 감격어린 목소리로 취임사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여성사에 기록될 첫 여성총리가 됐다는 기쁨보다는 막중한 책임과 두려움에 가슴이 무거울 겁니다. 적어도 제가 곁에서 지켜본 한명숙이란 분의 인품은 그렇습니다.

1980년대 후반, 가족법 개정운동이 한창일 때부터 여성민우회 대표로 ‘우두머리’(?) 역할을 했고, 국회의원과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내면서 한 총리는 ‘외유내강’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전형을 보여줬습니다. 감격시대란 별명처럼 항상 감동스러운 표정을 짓지만 업무능력이 떨어진다는 비난은 듣지 않았으니까요.

국회의장을 비롯, 많은 이들이 그에게 ‘어머니 같은 리더십을 보여달라’고 주문하면서도 공무원들에게 휘둘리지 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카리스마가 넘치다 못해 ‘독장 리더십’이란 말까지 들은 이해찬 전 총리에 비해 장악력이나 국정 추진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저는 한 총리와 함께 일할 남성들이 걱정입니다. 일단 총리실에서는 의전이나 비서진 구성, 총리 사모님이 아닌 사부님의 예우 등 전에는 경험치 못했던 일들을 처리하느라 부산하답니다. 또 ‘격식 파괴’ 취임식도 화제였지요. 과거엔 맨 앞줄에 장관, 다음줄은 차관, 그리고 1, 2급 등의 순서로 정렬해 선 채로 취임식을 가졌지만 한 총리의 취임식에서는 참석대상인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 고위 공직자 400여 명을 서열과 관계없이 자리에 앉도록 했습니다. 서열별로 줄서서 부동자세로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국장이 맨 앞에, 장관은 뒤에 자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 역시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일 겁니다. 하지만 자리를 바꿔보면 생각이나 사물을 보는 시각도 달라지지요.

여성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고위직 여성은 드뭅니다. 그동안 미스김, 박양에 익숙했던 남성들이 이제 겨우 여성을 동료로 인정해주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사장님, 장관님’ 하며 여성상사를 받들어 모시기는 정서상 힘들 겁니다. 남성상사들에겐 술마시면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하거나 목욕탕에 함께 가서 알몸 충성서약이라도 하겠지만요. 총리실에서는 치마정장을 즐겨 입는 여성총리를 배려해 회식 역시 앉아 먹는 한정식 식당이 아니라 의자에 앉는 곳으로 정하는 문제까지 고민중이라는군요. 총리만이 아니라 다른 곳의 여성들에게도 진즉 그렇게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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