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학교에 맡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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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등급화하는 등 내신 중심으로 입학전형이 이뤄져야 한다, 국립대는 의무적으로 실업고생의 대학입학 특별전형비율을 정원외 5%로 확대하라, 서울의 학군을 허물어 강남 집값을 잡겠다….

최근에 정부가 줄줄이 쏟아부은 교육 관련 정책이나 주장들입니다.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학교 내신이 강조되어야 하다거나, 실업고생들에게 대학 진학의 폭을 더욱 넓혀주겠다거나, 학군 조정으로 강남 집값도 잡고 강북 사는 학생들에게도 강남 학교에 다니는 기회를 주겠다는 ‘아이디어’는 언뜻 솔깃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현장에 나가서 학생·학부형·교사들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귀기울여 들어본 이들이라면 이런 ‘대책없는 정책’은 낯 뜨겁고 입 부끄러워 내놓지 못했을 겁니다. 자녀교육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학교보다는 기업형 학원의 쪽집게 학습법이 목적이란 건 누구나 아는 일이고 강북 사는 학부모들은 학군폐지가 되면 집 팔아도 강남에 전세로도 못갈 텐데 전셋값만 오르거나 같은 서울에서 하숙을 시켜야 하는건 아닌지 걱정이더군요.

자신들도 부끄러운지 학군제의 경우 하루만에 없던 일로 꼬리를 내렸고 열린우리당·정부·청와대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습니다.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마저 “정부측이 장난이 있었던 것 아니냐”며 비아냥거렸답니다.

실업고의 목적은 산업현장의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것이고, 외국어나 과학고 등 특목고 역시 전문인재를 키우는 것이지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에 많이 합격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상고 출신의 대통령, 한국은행 총재 등 자랑스런 선배가 많은데도 정부가 나서서 실업고를 아예 대학입시학원으로 변질시킬 계획을 세우고 청와대는 수시로 ‘서울대생들은 강남 출신 학생들이 대부분’ 등의 발언으로 양극화만 자극합니다. 땅에 떨어진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해 지자체선거를 앞두고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방안이라 할지라도 너무 졸렬하고 주먹구구식이고 무성의해서 화를 낼 에너지조차 아깝습니다. 그래서 교육을 이유로 이민가겠다는 이들이 그토록 늘어나나 봅니다.

제발 더 이상 학생·학부모를 볼모삼는 단세포성 교육정책은 만들지 말고 교육은 학교에 맡겨주시길 바랍니다. 그게 대한민국의 교육을 살리고 인재를 키우는 방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그리고 삼성이 기부한 돈 8000억 원도 교육부에서 집행한다는데 설마 이렇게 한심한 정책연구비에 탕진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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