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총리지명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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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 총리가 탄생할 것 같습니다. 3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이 한명숙 의원을 총리후보로 지명하면서 여성계에서는 당연히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의 뜻을 전했고 평소 한 총리후보의 인품이나 이념에 공감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안정과 화합’을 기대하는 국민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명숙 총리지명자가 80년대 말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로 가족법 개정에 기여한 일, 최초의 여성부 장관을 맡아서 활동한 모습 등을 지켜보면서 ‘절대 공을 내세우지 않고 합리적인 성품의 소유자’라고 생각했기에 개인적으로도 반갑더군요.

그러면서도 왠지 입맛이 씁쓸합니다. 며칠에 걸쳐 ‘한명숙 의원 유력’ ‘김병준 실장으로 유턴’ 등 오락가락하며 지루할 만큼 시간을 끈 총리후보 선정 과정에서 대통령, 청와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이 보여준 태도 때문입니다. 이해찬 전 총리가 사퇴한 후 ‘이번엔 야당 의원 중 고른다’ ‘정치인이 아닌 명망가를 선택할 것이다’ 등 시나리오도 다양했습니다. 만인지상이란 총리자리는 아무나 앉는 자리는 아니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각 정당들이 정말 대한민국의 장래와 국민들의 염원을 고려해서 총리후보들을 추천받고 고민하고 선정했는지 의문입니다.

청와대는 항상 ‘코드’를 강조하고 열린우리당은 자신들의 대변인을 바라며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쉽게 헐뜯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도 덜 부끄러울 인물을 원하더군요. 그래서 김병준·한명숙 두 사람의 선호도가 하루에도 몇 번씩 뒤바뀌는데 고뇌의 흔적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잔머리 회전 속도’만 눈부셨습니다.

“김병준 실장을 지명하면 야당이 당장 지방선거를 겨냥해 ‘코드’ 운운하며 참여정부 심판론을 이슈화하고 나설 것”(청와대) “한명숙 의원을 밀어서 당정일치가 되도록 하고 요즘 리더십 부족으로 비난받는 박근혜 대표와 맞겨루게 하자. 정동영 의장이 적극 추천했다는 점을 널리 알릴 것”(열린우리당) “한 의원이 총리가 되면 여기자 추행사건 등으로 가뜩이나 비난받고 있는데 더 비교될 것 같고, 김 실장이 되면 청와대 파워가 더 커질 것”(한나라당)

언론에 탄로(?)난 말들만 이렇습니다. 어디에도 진심으로 국민들이 원하고 바라는 총리의 이미지나 능력, 과제 등은 잘 드러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생색내기만 보입니다. 이해관계가 강조되면 진실은 보이지 않게 마련이지요. 자기들의 이해만 따지면서 애국애족만 강조하는 정치인들, 봄철 황사보다 더 무섭습니다.

<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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