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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현실론과 타협한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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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차기총리 지명의 속뜻… 여권 현실적 이득도 만만찮아

차기총리로 지명된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이 3월 24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차기총리로 지명된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이 3월 24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58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리의 탄생이 임박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3월 24일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을 차기총리로 지명했다. 한명숙 총리지명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를 거쳐야 한다. 어떻든 여성 총리 지명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여성이 정부 내 최고위직에 오름으로써 정계에서 여성에 대해 배타성이 사라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 설명한 발탁 배경에 여성 총리 지명의 의미는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이 실장은 “한명숙 후보자가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로서 부드러운 리더십과 힘 있는 정책수행을 통해 주요 국정과제를 안정적으로, 전향적으로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 총리지명자에게 당면한 국정과제는 이반된 민심수습과 국민통합이다. 이해찬 전 총리의 ‘골프파문’으로 민심은 철저히 이반됐다. 또 양극화 해소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대북한 정책을 둘러싼 이념갈등 등으로 국론분열 조짐도 일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력소모에 대한 불안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 총리의 선택은 고정관념을 깬 발상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한 내정자는 30년 간 여성·환경·민주화운동 전력과 여성부·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국정운영 경험을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내유외강의 원만한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게 여성 총리 지명이라는 의미를 퇴색시키지 못한다는 게 정가의 일치된 견해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총리지명과 관련, 무엇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책임총리제 운영 틀 바꿔야

언론이 한결같이 한명숙 의원으로 ‘지면사령장’을 냈던 3월 22일 노 대통령은 “고민 중”이라는 메시지를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전달했다. 김만수 대변인은 “정책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정치적 현실을 염두에 두면 한명숙 의원이 보다 강점이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특히 김 대변인의 브리핑은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구술’받아서 전달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정책적 일관성’과 ‘정치적 현실론’ 사이에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김병준 카드’는 국정운영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당장 한나라당의 거부감 등 현실정치의 벽을 돌파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반면 ‘한명숙 카드’는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의 동의는 받기 쉽지만 ‘책임총리제’라는 국정운영의 틀을 바꿔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결국 노 대통령이 정치적 현실론과 타협한 것이라는 얘기다. ‘책임총리제’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 등 국정 핵심의제와 대외적인 일들에 자신의 역량을 집중해왔다. 소모적인 정쟁의 와중에서 한 발 비켜서 왔다.

어떻든 한명숙 총리 지명으로 인해 이런 국정운영 기조의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열린우리당 김부겸 의원은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운 카드”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다만 국정 장악력과 같은 문제는 노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곧 노무현 대통령이 내각장악 등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직접적으로 개입할 개연성을 언급한 것이다. 국정조정능력과 행정장악력은 전적으로 한명숙 총리지명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후반기의 권력누수를 차단하기 위해선 노 대통령의 국정개입 폭은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한명숙 총리지명으로 얻을 수 있는 여권의 현실적 이득도 만만치 않다. 김부겸 의원은 “여성계, 동교동계, 재야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다목적 카드”라고 말했다. 한 내정자 지명의 파급효과가 엄청나다는 얘기다.

위_집에서 가족드로가 함게. 왼쪽부터 한명숙 지명자, 남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 아들 박한길군.<br>아래_지방순회 정책간담회를 하고 있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3월 22일 여성 총리가 나올 때가 되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위_집에서 가족드로가 함게. 왼쪽부터 한명숙 지명자, 남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 아들 박한길군.
아래_지방순회 정책간담회를 하고 있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3월 22일 여성 총리가 나올 때가 되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한 내정자는 ‘여성계의 대부’로 통한다. 한국여성민우회 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초대 여성부 장관 등의 이력은 여성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하고 남게 한다. 여성계가 한 내정자 지명에 대해 “반세기에 걸친 한국 ‘여성참정사’의 일대 사건”으로 규정한 데서도 여성계의 기대감을 읽을 수 있다.

그가 여성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는 남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의 영향이 컸다. 그가 결혼 6개월 만인 1968년 7월 박성준 교수는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어 13년 동안이나 영어생활을 했다. 그러나 한 내정자는 내색을 하지 않아 주변에서조차 박성준 교수가 투옥된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남편의 투옥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한국 진보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한 내정자는 1979년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됐다. 2년 6개월 간 옥고를 치렸다. 한 내정자는 “어머니가 사다주신 평화시장의 싸구려 티셔츠와 까만 바지를 입고서 거침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누비며 헤집고 다녔다”고 회고했다. 외유내강의 면모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건은 2004년 총선 당시 환경부 장관 자리를 던지고 경기 일산 갑 지역에 출마해서 홍사덕 전 한나라당 총무와 겨뤄 당선된 것.

특히 한 내정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발탁한 비중 있는 여성계 인사다. 김부겸 의원은 “한 내정자는 이우정·박영숙 전 의원과 함께 DJ색깔을 가진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여권의 정통적인 지지기반 달래기에도 한명숙 카드는 유효적절하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표의 견제 의미도

한나라당에 주는 메시지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견제 의미도 적지 않다. 열린우리당 한 의원은 “박근혜 대표가 독점해오다시피 한 여성 정치인의 프리미엄을 나눠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일 한나라당이 한명숙 총리의 문약한 부분을 부각시킨다면 그것은 여성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기는 더 어려운 것이 되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한 총리지명자에 대해 파상적 공세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장 후보가 확실시되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의 시너지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그러나 당적 보유 문제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지명자는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과 문희상 의원 등에 비해서 정치 색채가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한명숙 의원의 열린우리당 당적 이탈을 주장하고 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당적 이탈이 없다면 총리인준 거부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도 “당적을 갖고 어떻게 공정선거관리를 할 수 있냐”면서 탈당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2002년 총리지명을 받았다가 임명동의에서 ‘서리’ 딱지를 떼지 못한 장상 전 총리서리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현실과 타협의 카드인 한명숙 지명자. 노 대통령의 ‘정치적 타협거리’는 곧 한 지명자가 풀어내야 할 숙제이다. 한 총리지명자가 첫 여성 총리로 그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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