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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과 정부는 서로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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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등돌린 주민들 ‘역차별 불만’ 부글부글… 당국은 “아파트값 잡겠다” 요지부동

강남 대치동 타워팰리스를 포함한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위용.

강남 대치동 타워팰리스를 포함한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위용.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서 보석상을 운영하는 이정우씨(46)는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결국 실패할 것으로 확신했다. 그는 “정부 부동산정책은 강남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결과”라고 말했다. 자신의 가게를 찾는 강남의 고소득 주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라고도 했다.

부동산에 관한 한 노무현 정부와 ‘강남특별구’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는 강남의 집값을 잡기 위해 부동산정책을 ‘헌법만큼이나 고치기 어렵게’ 만들겠다고 하지만 강남 아파트값은 요지부동이다.

“강남 집값은 교육문제가 핵심인데 정부가 그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 20년째 강남에 거주하고 있는 보석상 이씨의 진단이다. 이씨의 진단은 확실히 일리가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의하면, 강남구와 서초구의 세대 중 35.9%가 강남에 거주하는 가장 큰 이유로 교육 여건을 들고 있다. 이는 수도권의 5.6%, 그리고 전국의 3.8%가 교육 여건 때문에 현 거주지에 살고 있다고 응답한 것과 엄청난 차이다. 생활편의시설이나 공원·문화시설 등과 같은 주거환경 때문에 강남에 거주한다는 응답이 31.6%로 그 뒤를 이었다.

거주 이유는 투자가 아닌 교육 때문

흥미로운 것은 강남 세대의 1.7%만이 주택가격 상승이라는 투자목적으로 강남에 거주한다고 답을 한 반면, 수도권의 16.4%, 전국의 22.4%가 투자목적으로 현 거주지에 살고 있다고 응답한 점이다. 강남에 거주하는 주민의 대다수가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전세를 살고 있다는 사실은 강남의 주택 수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교육 여건이라는 것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강남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데는 그만큼 수요가 존재하고 그 수요의 밑바탕에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가 있는 것이다.

강남구 도곡동에서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는 김영권씨(37)는 “정부 정책이 강남 주민의 대부분을 투기세력으로 가정하고 있다면 정책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강남에 버금가는 주거 및 교육시설을 갖춘 주거지역을 개발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보원 KAIST 경영대학원 교수는 강남지역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중·고등학교의 평준화 폐지를 주장한다. “평준화를 점차 폐지하고 각 학교에 학생선발 재량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강남에 위치한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반드시 강남으로 이주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강남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것이란 논리다.

강남 학원가의 모습. 교육 여건은 강남을 최고 거주지로 인식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강남 학원가의 모습. 교육 여건은 강남을 최고 거주지로 인식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집 팔고 싶어도 세금 무서워 못 팔어

대치동에서 만난 주용우씨(65)는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3년 전 정년퇴직한 주씨는 이곳의 41평짜리 아파트가 전 재산이다. 현재 이 아파트의 매매가는 15억 원 정도다. 그는 30년 이상 직장생활을 통해 이 집을 마련했고 25년째 강남을 떠나지 않고 있는 토박이다.

그는 집값이 올라도 반갑지 않다. 재산세가 지난 2년 사이에 무려 3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매달 받는 100여만 원의 국민연금이 그의 유일한 소득이며, 그나마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두 부부가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비다.

그는 올해부터 재산세 224만 원에 종합부동산세 215만 원을 합쳐 무려 439만 원의 부동산 관련 세금을 내야 한다. 1년 소득 1200만 원 중 439만 원을 떼고 나면 생활이 불가능하다. 집을 처분해서 강남을 뜨고 싶지만 엄청난 세금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없다.

개포동의 재건축 대상 13평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해진씨(44)는 들쭉날쭉한 집값 때문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6월 김씨의 아파트는 5억5000만 원으로 최고점을 기록했다. 작년 11월에 4억5000만 원까지 떨어졌다가 최근에는 다시 5억 원 선을 회복했다.

그는 재허가인허권을 중앙정부가 행사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재산권·행복추구권을 동시에 침해하는 것으로 “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정권이 아니다”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김태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까지 나서 수도권 재건축 인허가권을 중앙정부가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초구 서초동의 부동산중개인 이민현씨(33)는 “재건축시장은 이제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시민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에 이제 환멸을 느낀다”는 것이 이씨의 분노다.

서울 강남의 핵심지역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주민들의 반(反) 노무현 정서는 심각한 수준이다. 열린우리당은 이 지역 구청장 선거를 포기한 지 오래다. “아무리 힘을 기울여도 10%대의 지지율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 한 당직자의 고백이다. 세 곳 모두 한나라당 유력 예비후보들이 여당 후보보다 3배 정도 많은 표를 얻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당 지지율로 봐도 한나라당 지지율이 50%를 상회하고 있는 반면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20%를 훨씬 밑돌고 있다.

강남 대치동 한 부동산중개소에 나붙은 이 지역 아파트 가격. 31평 아파트가 11억 원에 나와 있다.

강남 대치동 한 부동산중개소에 나붙은 이 지역 아파트 가격. 31평 아파트가 11억 원에 나와 있다.

여당에선 구청장 선거 이미 포기

강남 법조타운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변호사 ㅇ씨는 “정부의 잇단 대책들이 강남지역민의 생활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그런 정책들이 향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의 중요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는 점”이라는 것이 이 변호사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강남을 볼모로 한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 아파트 소유자들이 종합부동산세 부과 처분에 불복, 집단소송을 준비 중인 것도 이같은 분노의 표출이다. 이 소송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큰 방희선 변호사는 “동일 재산에 대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함께 물리는 것은 이중과세이며, 기대수익에 견줘 세금을 과도하게 부담시키는 것도 위헌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 우성아파트의 주민 백인우씨(63)는 “금융자산에 대해서도 부부 합산이 위헌이란 판결이 2000년 내려졌는데도 정부가 이중과세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위헌 소송에 참여할 가능성이 큰 주민들은 지난해 12월 종부세 납부고지서를 받고도 아직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이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7만4212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7만353명은 납부했고 나머지 3859명은 내지 않았다. 종부세 위헌소송은 강남의 고가 아파트단지인 ▲선경 ▲우성 ▲타워팰리스 ▲동부센트레빌 ▲압구정 현대 ▲압구정 신현대 등의 입주자대표자모임에서 거론되고 있다.

강남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른 도곡렉슬 아파트 단지.

강남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른 도곡렉슬 아파트 단지.

종부세 불복 집단소송 움직임

정부의 자세는 그러나 요지부동이다. 종부세 소송을 해도 정부가 패소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2월 10일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는 “8·31대책을 추진할 때 이미 검토를 마친 만큼 법적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강남 주민들의 종부세 소송의 여파는 그러나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강남지역 차별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 폭발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세무사 변형오씨는 “개발부담금 강화 등 강남 재건축을 겨냥한 8·31 후속대책이 이달 말 나오면 세금과 개발이익환수제도에 대한 거부운동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소송을 준비 중인 대치동 미도아파트 등 일부 단지 주민들은 이번 소송을 통해 ‘세금의 감액’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종부세의 20%를 감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같은 아파트에 대해 재산세를 물리고 또 다시 종부세를 매기는 것은 과다하다는 게 주민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같은 소송 움직임에 대한 비강남 지역 거주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동안 거둬들인 시세차익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한데 그야말로 엄살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종부세를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
강남과 정부의 전쟁은 올 지방선거, 내년 대선의 핵심쟁점으로 변주될 가능성이 크다. ‘부의 형성과 축적, 그 배분의 문제’를 간직하고 있고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를 보여주는 척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인터뷰/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

“노블리스 오블리제 발휘해야”

“강남 주민들은 이기적이며 자신들의 계층적 이익 지키기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에 대해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강남을)은 ‘인간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편견’으로 단정했다.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본능”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이익 보호 본능이 자칫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망각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이 “강남의 수준을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1인당 GDP 5만 달러에 이르는 강남을 모델로 지방과 수도권의 다른 지역을 강남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노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강남때리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강남 주민의 비판에 대해 “동감한다”고 말했다. 최근 노 정권의 일련의 정책들은 강남 주민들의 재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있으며 재집권을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라는 것이 그의 인식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 중 강남지역 주민들이 가장 큰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재건축 규제와 세목교환’이라고 말했다. 두 가지 정책은 각각 강남 주민들의 재산권을 현저히 침해하고 지역의 자치재정을 교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강남·북 간 재정 격차 해소방안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자치구간 재정불균형 해소가 시급하다는 데는 양당이 공감하면서도 내놓은 해법은 서로 다르다. 열린우리당은 구세인 재산세와 서울시세(자동차세·주행세·담배소비세)를 맞바꾸는 ‘세목교환’을, 한나라당은 재산세의 절반을 공동세화하는 ‘공동재산세’를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공 의원은 강남지역민의 특징을 ‘엄청난 교육열과 세계화’로 규정했다.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지역민들의 국제적인 감각과 생활영역도 상당한 정도에 올랐다는 평가다. 그는 정부가 “강남의 수준에 맞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한 세금 부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의 차원에서 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종부세는 은퇴해서 별다른 소득 없이 살고 있는 강남의 노인들에게 커다란 타격”이라고 주장한다. 연간 소득 2400만 원 이하, 6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해서는 종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이 그가 준비하고 있는 개정안이다. 그는 최고 수준의 시민들을 ‘투기꾼’으로 몰아가는 정부의 대 강남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기홍<객원기자> glutton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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