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횡성 남은 겨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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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문의로드포엠]겨울, 횡성 남은 겨울을 위하여

횡성의 풍수원성당은 지은 지 100년이 된, 한국인 신부에 의해서 최초로 건립된 성당이다. 초기 박해를 피해 풍수원으로 숨어들어온 ‘천주학쟁이’들은 숯과 토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면서 정규하 신부의 지휘 아래 성전을 짓기 시작했다. 총 건립비 6000원. 이때 무슨 생각에서인지 거금 1500원을 희사한 김말구 할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공사장으로 찾아와 ‘내 돈 내놓으라’고 생떼를 썼다. 보다 못한 정신부가 ‘말구, 너 이리와! 네 돈 다 가져가라!’고 호통을 치면 ‘신부님,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하고 꽁무니를 빼고. 그러나 다시 술에 취하면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공사장으로 올라왔으니, 그 허튼 실랑이를 지켜보던 신도들은 웃음으로써 공사판의 노고를 씻어버렸다.

On road
양평 - 6번국도 - 용문 - 단월 - 풍수원성당|드라마 ‘러브레터’ 촬영지/ ‘바이블파크’ 조성중 - 횡성 - 병지방계곡|토종왕국 - 횡성온천/횡성호/횡성자연휴양림 - 고래골|참숯공장(숯불가마와 숯불삼겹살) - 정금리|회다지소리- 안흥|찐빵마을 - 태종대

겨울, 횡성

[유성문의로드포엠]겨울, 횡성 남은 겨울을 위하여

바람 끝에서 나는 몇 번이나 넘어졌던가
일으켜 세울 이 없어 마음은 시리고
빈 길에서 봄은 너무 아득하다
눈을 밟으면 낡은 풍금 소리
따라오던 새들조차 비키어 날아가고
눈물의 끝에서 나는 하늘을 본다
그대여, 빈 하늘을 본다
아직 남은 언덕이 있다면
가야 할 길이 있다면
나는 또 몇 번이나 넘어져야 하는가
시린 겨울의 끝에서 바람의 어깨를 쓰다듬는다
- 풍수원성당 -

겨울, 횡성은 맵다. 겨울, 횡성은 쓸쓸하다. 그런데도 왜 횡성으로 가는가. 바람도, 눈발도 비끼어나는 골짜기에 간간이 박힌 온기 때문이다. 에둘러서라도 꼭 들러야 할 풍수원성당이 그러하고, 병지방계곡의 토종적인 삶이 그러하고, 고래골의 참숯가마가 그러하고, 웃을지 모르겠으나 안흥의 찐빵이 그러하다. 그렇게 보면 정금리의 회다지소리조차 자못 푸근하고 편안하다.

이별은 서럽고 죽음은 애달프건만 무릇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니, 망자의 이불 회(灰)를 밟는 이의 마음은 오히려 담담하다.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신라의 박혁거세에게 쫓겨 들어왔다는 병지방계곡 들머리에는 송래준씨(83)의 농장이 있다. 이곳은 토종돼지를 비롯해 토종닭, 한봉, 흑염소, 원앙, 청둥오리와 장뇌삼, 가시오가피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토종들이 다 모여 있는, 말 그대로 ‘토종왕국’이다. 그 중에서도 송 할아버지의 삶은 가장 횡성적이고, 가장 토종적이다. 열일곱 나이에 부모를 잃고 남의 집 머슴살이로 시작해 갖은 고생 끝에 제법 넉넉한 농장을 이루었지만, 자식들은 기어이 대처로 떠나고 지금은 노부부만 토종것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농업개방이다 뭐다 하지만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것을 되살리고 지키는 길밖에 없는 거야. 당장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그저 덩치 크고 소출 좋은 놈에만 매달리면 매번 더 힘 센 놈들에게 당할 뿐이지.”
치악산 남쪽자락의 태종대는 왕이 된 이방원이 스승이던 원천석을 찾아갔으나 만나주지 않자 쓸쓸히 돌아가던 길에 잠시 머물던 곳이다. 그 아비가 고려를 멸하고 그 아들이 권력에 어두워 왕자의 난을 일으키니, 노학자는 ‘내가 그를 빗(橫) 가르쳤다’고 한탄하며 세상을 버렸던 것이다. 그때 왕에게 스승이 있는 곳을 거짓으로 아뢴 한 노파가 스스로 물에 빠져 죽으니, 그곳을 일러 ‘노고소’라 한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모진 겨울의 끝에 덧없는 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을.

글·사진/유성문<여행작가> rotac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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