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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장 몰고 온 인권위 권고 4대 쟁점사항 정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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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 없는 결론은 없다

지난해 3월 16일 열린 비정규직 입법안 청문회에 참석한 정인섭·정강자·최명애·김민흠 인권위원(왼쪽부터).

지난해 3월 16일 열린 비정규직 입법안 청문회에 참석한 정인섭·정강자·최명애·김민흠 인권위원(왼쪽부터).

인권위의 인권 NAP 권고안은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광범위한 인권 개선책을 담고 있다.
그러나 북한 인권에 대한 의견 표명은 빠졌으며 현재 인권위에 구성된 북한인권특위에서 결론 도출을 위해 조율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 북한인권, 노사관계,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 참여 확대 등 4대 핵심 쟁점의 포인트를 정밀 분석했다.

1.양심적 병역 거부-대체복무제의 방법과 시기가 관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26일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헌법과 국제규약상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 안에 있다”는 전제 하에 국회의장과 국방부장관에게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가 확정한 인권 NAP 권고안에도 양심적 병역 거부의 인정과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인권위는 “현재의 제도는 ‘양심적 병역거부 및 형사처벌’과 ’단순한 병역이행’ 간에 양자택일식의 해법뿐”이라며 “헌법 19조의 양심의 자유와 39조 국방의 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병역 이외에 대체복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올해 안으로 민·관·군이 참여하는 ‘정책공동체’를 만들어 연구한 뒤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대체복무제도의 시행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찬반 논란은 그러나 매우 거세다. 인권위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한다면 군대에 간 내 아들은 비양심범이냐”는 식의 항의전화가 쇄도해 직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각 종교단체의 주장도 다양하다. 조계종을 비롯해 불교 종단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공식 의견을 내놓지 않은 가운데 태고종이 유일하게 의견을 표명한 적이 있다. 태고종 제17세 종정 혜초 스님의 2004년 6월 취임 기자회견에서다. 혜초 스님은 “승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당당하게 부처님을 모실 수 있다”고 밝혔다.

천주교는 교리상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1965년 반포한 ‘사목헌장’이 그 근거다. 이 사목헌장은 “양심상의 이유로 무기 사용을 거부하며 다른 방법으로 인간 공동체에 봉사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국가가 공정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최기산 주교)는 지난해 12월 가진 정기총회에서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징병제도가 실시되고 있는 안보현실을 감안할 때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의견을 모았다. 사목헌장의 권고와 한국적 현실의 괴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개신교 양대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KNCC는 대체복무 실시를 주장하고 보수교단 연합회인 한기총은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유석춘 공동대표(연세대 교수)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찬성해 이목을 끌고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강하게 부정하는 기존 우익의 주장과는 사뭇 다르다. “병역 거부 문제의 해법은 대체복무의 강화”라는 것이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뉴라이트의 새로운 의견이다.

2. 북한인권-고민하는 인권위, 독립적 입장 표명할까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입장 발표는 계속 늦춰지고 있다. 사안의 민감성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한 비난 여론은 거세지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 1월23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인권위는 이날 3시간에 걸친 전원위 의사 일정 중 비공개로 진행된 마지막 1시간 동안 3명의 비상임위원으로 구성된 북한인권 특위가 작성한 문건을 놓고 격론을 벌인 뒤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인권위가 북한 정권을 상대로 직접적인 권고나 의견을 표명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2월 2일 ‘뉴스메이커’ 인터뷰에 응한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은 남북간의 특수관계를 감안하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과연 북한 주민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느냐에 대해 부정적임을 내비쳤다.

사형제폐지 의견 표명을 결정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제8차 전원위원회.

사형제폐지 의견 표명을 결정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제8차 전원위원회.

우리 정부를 향한 권고안 내지 입장 표명 가능성은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조 위원장 역시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조 위원장은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입장 표명”이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현재로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검토 중에 있다는 말이다. 이르면 한 달, 늦어도 두 달 후면 인권위의 견해가 정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북한인권문제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국가인권위원회법 해설집’도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한민국이 북한에 대해 현실적인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의 헌법체계나 남북한의 특수관계상 북한을 반드시 외국으로만 볼 수도 없다”는 것이 이 해설집의 해석이다. “적어도 대한민국 정부(또는 국회)의 북한 인권 정책 및 법률과 관련하여 권고나 의견표명의 형식으로 위원회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란 점을 인권위가 스스로 만든 해설집에서 지적한 것이다.

인권위가 최근 북한인권특위 위원을 5명으로 늘린 것에 대해 북측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남한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북한인권특위 확대 등을 결정한 것과 관련해 “북한의 존엄과 정치체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발이고 도전이며 북남관계를 근본적으로 위태롭게 하는 용납못할 행위”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한 봉쇄, 고립, 붕괴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 진보 진영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남북관계에 치명타를 입힐까봐 참여정부는 노심초사해왔다. 인권위가 이런 분위기를 극복하고 독자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느냐가 주목의 대상이다. 그 딜레마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든 후폭풍 역시 강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3. 노사문제-재계와 인권위의 체제논쟁

인권위의 인권NAP 권고안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 옹호 제안이 포함돼 있다. 비정규직 고용 남용 방지, 차별 시정, 사회보험 적용 확대, 교육·훈련 확대 등을 권고하고 있다. 쟁의 중인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 폐지, 필수공익사업장 범위 축소,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확대, 최저임금 결정 방식 개선 및 적용 대상 확대, 작업장 감시기술 도입운영 정보공개 등도 권고안의 주요 내용이다.

재계의 거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강신호,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수영, 대한상공회의소 손경식, 한국무역협회 김재철,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김용구 회장 등 경제 5단체장은 1월17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모임을 열고 ‘NAP 권고안에 대한 경제계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인권위가 노사문제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차원을 넘어 “사회 양극화 문제는 인권신장이 아니라 경제성장이 해결한다”고 단언했다. 인권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도 쏟아졌다. “차기 인권위 구성 때에는 균형된 시각과 사회적 덕망을 쌓은 인사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위의 기본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재정립이 불가피하다며 사실상 현 인권위의 해산과 재구성을 요구한 것이다.
경제 5단체장은 성명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인권위의 권고안은 실정법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위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 문제를 떠나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인권위의 권고안마저도 부정하는 총체적인 공세를 감행한 것이다.

인권위는 노동권을 포함한 사회권이 이미 국제 인권의 핵심이 된 지 오래라고 반박했다. 2001년 UN 사회권규약위원회가 한국에서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과 심각한 차별대우를 지적한 바 있으며 교사와 공무원의 단체교섭권, 파업권 보장 등을 권고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위한 인권제한’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됐다는 것이 인권위의 주장이다.

실정법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위배했다는 주장도 인권위의 존립 근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인권위측의 설명이다. 인권위는 인권전문 기구니만큼 헌법 상의 기본권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사법기관이 국내법의 틀 안에서 인권문제를 보고 있다면 인권위는 국제인권법이라는 중요한 준거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재계는 인권위의 권고안이 시장경제 체제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지만 인권위는 사회권적 인권의 확대가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시대적 흐름으로 본다.

지난해 6월 5일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주최 북한인권 관련 주한 외국대사 초청 간담회.

지난해 6월 5일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주최 북한인권 관련 주한 외국대사 초청 간담회.

4. 공무원과 교사 정치참여-포괄적 규제는 정당한가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 확대를 권고한 인권 NAP는 공무원법에 위배되고, 교사의 정치활동 제한을 합헌으로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2004년 판결과 배치된다. 그러나 공무원 정치 참여 문제가 쟁점으로 비화된 데에는 재계와 일부 언론이 인권 NAP 권고안의 내용을 확대 해석하면서 불거졌다.

재계는 인권위가 “인권 NAP 권고안을 통해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 활동을 허용하라”고 권고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인권 NAP 권고안의 내용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과도하게 금지하는 법 조항을 개정하여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을 일정 범위 확대”로 되어 있다. 인권위는 관련법에 의해 공무원의 정치활동이 포괄적으로, 과도하게 금지돼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우리나라처럼 포괄적으로 금지한 나라는 없다. 미국의 연방공무원은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도 참여하고 지방공무원은 정당 활동도 가능하다. 프랑스 역시 공무원의 정치 활동에 원칙적인 제한이 없다. 다만 공무원이 후보자의 정견발표문과 경력 소개문 등은 배포할 수 없다. 영국은 선거관리관과 경찰 등에 한해서만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라는 권고를 두고 “이르면 2007년 대선에 공무원 50여 만 명과 교사 40여 만 명이 적극 개입할 수 있게 된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미 2001년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교원 및 공무원들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참여할 권리, 단체교섭권, 파업권이 법과 실제 모두에서 보장되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 권고는 전면 금지된 교원의 정치활동을 일부 보장하는 것일 뿐으로, 교총이 몇 해 전 정치관계법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교육기본법 등을 손질해서 만든 입법 개정안에도 이번 권고 수준의 정치참여 보장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인권위의 주장이다.

공무원노조 정용해 대변인은 “공무원의 정치참여를 국민기본권으로 본 이번 권고안을 환영한다”면서도 “법 개정이 뒤따르지 않으면 권고는 단지 정권의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권위는 대학교수의 정치활동은 허용하는 반면 초·중등 교사의 정치활동은 제한하는 것을 참정권의 제한이라고 봤다. 따라서 국민의 정치의사 형성 과정과 정책 결정에 국민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공무원과 교사에게 정치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를 개진하고 있다.

한기홍〈객원기자〉 glutton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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