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으로 오는 사람들, 이 땅을 떠나는 사람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유성문의 로드포엠]이 땅으로 오는 사람들, 이 땅을 떠나는 사람들

아이야

등 돌릴 수 없어서 세상은 고단하단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길은 땅 위를 떠돌고
떠돌다 돌아가는 길에 문득,
여태껏 사주지 못했던 통닭 한 마리 값을 셈하며
빈 주머니 뒤적거릴 때
돌아갈 곳 있어도 세상은 너무나 아득하구나
그러나 어쩌겠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내가 아니라 세상이고
허기의 깊이로 퍼올릴수록
삶은 그렇게 비어만 가는 것을
-오이도


* 오이도가 원래부터 섬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제가 염전을 만들려고 제방을 쌓으면서 섬이 되었다고도 하고 뭍이 되었다고도 하며, 그때부터 까마귀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이 까마귀 귀를 닮았다 하며 ‘오이도(烏耳島)’라 불렀다 한다. 까마귀 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도 없지만 사실 원래 지명인 ‘오질애(吾叱哀)’는 너무 슬프기도 하다. 안말을 중심으로 살막, 신포동, 고주리, 배다리, 소래벌, 칠호, 뒷살막 등 자연부락이 있었으나 1988년부터 시작된 시화지구 개발사업으로 모두 폐동되고 섬 서쪽 해안을 매립, 이주단지가 조성되었다. 지금은 ‘죽었다 살아난’ 시화호의 들머리쯤으로 여겨지는 오이도는 소주 한잔에 취해 졸다가 하차역을 놓쳐버린 지하철 4호선(당고개-오이도) 퇴근객들에게는 여전히 가장 멀고 아득한 섬이기도 하다.

On road
영동고속도로 서안산IC - 국경 없는 마을 - 오이도|굴회덮밥 - 시화방조제 - 대부도 - 선재도|바지락 - 영흥도|십리포 서어나무 - 제부도|바닷길 - 왕모대 - 궁평리|낙조


몇 해 전 추석날 느긋하게 영흥도를 찾은 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웬일로 섬으로 들어가는 길목부터 막히는가 싶더니 호젓하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해야 마땅할 바닷가에 사람들이 득시글대는 것이었다. 한눈에 봐도 우리와는 다른 것이 분명한 이방인들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영흥도에서 연륙교를 타고 선재도, 대부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시화방조제 건너 안산이고, 그곳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세상 ‘국경 없는 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연휴는 얻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들은 비록 회색의 바다지만 거리가 가까운 그 섬들에서 시름을 달랬던 것이리라.

[유성문의 로드포엠]이 땅으로 오는 사람들, 이 땅을 떠나는 사람들

안산역 앞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은 그 속내만 제하면 이 땅에서 가장 ‘글로벌’한 곳이다. ‘국경 없는 마을’을 기록한 박채란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꼬마 티안과,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누리끼와 그의 친구 초리, 몽골 태생의 늦깎이 고등학생 따와와, 영화감독을 꿈꾸는 방글라데시인 재키와, 조선족 김복자 아주머니와, 그들을 도우며 살아가는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재호 아저씨와, 코시안을 가르치며 ‘그래도 너희들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김주연 선생과, 중국, 필리핀, 태국, 베트남, 파키스탄 등등 올림픽은 몰라도 아시안게임은 너끈히 치를 만한 사람들이 한데 섞여 산다. 그들은 ‘태어난 곳은 있지만 고향이 없는 사람들(김재영 ‘코끼리’)’이고, 고장난 프레스에 한쪽 팔을 잃은 사람들이며, 위장결혼을 했거나 이혼당한 사람들에다, ‘아메리칸 드림’을 외치던 사람들 밑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 ‘아고라파스(이산자)’들을 완강하게 묶어주는 것은 오로지 ‘꿈’이다. 그 꿈 밑에서 고통이나 가난조차도 평등하다.

무참하게도 길의 끝은 궁평리다. 1999년 화성 서신의 청소년수련원 ‘씨랜드’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궁평리 바닷가로 놀러왔던 유치원생 19명을 포함, 24명이 떼죽음을 했다. 그 사고로 아들을 잃은 전 국가대표 여자하키선수 김순덕씨는 국가에서 받았던 훈장과 표창을 반납하고 이 땅을 떠났다. 깡통 같은 컨테이너 박스를 2층, 3층으로 쌓고 그 안에 544명의 생명을 때려넣고 재웠던 나라, 근본원인은 제껴놓고 모기향이니 누전이니 화재원인을 둘러대기에 바빴던 나라, 모두들 그 끔찍한 기억마저 지워버렸지만 그때 ‘꿈’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아직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놀랍게도 그나마 씨랜드사건을 노래한 것은 젊은 래퍼들이었다.

피우지도 못한 / 아이들의 불꽃을 / 꺼버리게 / 누가 허락했는가 / 언제까지 돌이킬 수 / 없는 잘못을 / 반복하고 살텐가 - H.O.T ‘아이야’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이 땅으로 몰려오는 사람들과, 도무지 살 수 없다고 이 땅을 떠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차라리 항상 길에서 떠돌 수밖에 없는 내 운명을 안도했다.

<글·사진/유성문<여행작가> rotack@lycos.co.kr>

유성문의 로드포엠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