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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4억 달러를 배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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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납북자 4명 북한 상대 고소장 제출… 통일부, 연락관 통해 전달할 예정

대법원에 있다는 분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고소장을 좀 보내달라고 하네요. 제가 북한에 고소한 것이 좋은 사례가 되나 봐요.”

서울 잠실에 위치한 납북자가족모임 사무실에서 최성용 대표는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최 대표는 납북됐다가 탈출한 이재근씨 등 4명의 공동명의로 북한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1월 9일 국가인권위에 제출했다. 북한이 송환장기수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1월 6일 보내온 데 대한 맞고소였다. 남북 양쪽 정부에 민사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맞고소가 분단 60년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것. 대법원 직원과의 전화내용은 ‘처음 있는 사례인 만큼 연구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장기수 피해보상 요구에 맞대응

맞고소가 이뤄졌지만 법률적 절차가 진행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중앙대 법대 제성호 교수는 “소송대리 변호사를 통해 법원에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국가인권위와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보낸 것이기 때문에 법적인 고소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제 교수는 “납북자의 경우 남북 정부의 주장이 다르고 증거 확보를 위해 북한에 가서 사실 조사를 해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민변 통일위원회 위원인 김승교 변호사(법무법인 정평)는 “송달·사실확인·판결 집행·피고적격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북간에 송달에 관한 법이 없기 때문에 적법적인 절차에 따라 송달할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재판 진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사실 확인과 판결 집행이 이뤄질 수 없다. 김 변호사는 “헌법상 북한의 법적 실체를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어 피고가 적격한지에 대한 여부도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통일부에서는 북측의 고소장을 국가인권위와 과거사 정리위에 전달하지 않을 방침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측에 대해) 대응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납북자가족모임의 고소장은 북한과의 연락관 접촉을 통해 북한에 전달할 예정. 이 관계자는 “관련절차에 따라 검토하고 적절한 시기에 전달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양쪽의 맞고소에 대해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추진해온 시민단체에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노진민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 집행위원장은 “고소장을 발송한 북쪽의 의도를 모르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노 위원장은 납북자가족모임의 맞고소에 대해서도 “서로 맞고소를 하는 것이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남북간에 장기수 송환이나 납북자 송환 문제를 더 얽히게 만들고 감정적인 싸움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
2000년 9월,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으로 송환됐다. 현재 2차송환을 희망하고 있는 장기수는 30여 명. 대부분 전향했으나 공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전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2일 장기수 정순택씨의 시신이 북으로 송환되면서 2차송환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하지만 북측의 피해보상 요구로 2차송환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 여론이 만만찮게 제기될 조짐을 보인다.
권오헌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 상임대표는 “2차송환은 아무 조건 없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2차송환에 나쁜 영향을 끼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신송환으로 2차송환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에도 납북자 관련 단체에서는 추가송환 전에 납북자의 생사 확인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세종로 청사에서 시위를 벌였다. 납북자가족모임에서 파악하고 있는 전체 납북자 수는 486명. 현재 이재근·진정팔·김병도·고명섭씨 4명이 북한을 탈출했다. 이들 4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를 피고소인으로 해 20여 년 동안 당한 피해의 대가로 1명당 각각 1억 달러씩 총 4억 달러를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최성용 대표는 “금액은 상징적인 의미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납북자 생사 확인없이 송환만?

북한이 송환 장기수의 피해보상 대가로 요구한 금액은 10억 달러(약 1조 원). 김승교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징벌적 배상이 아닌 등가적 배상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직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망한 경우에도 3억 원이 넘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1인당 150억 원을 넘어선 양측 제시금액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 김 변호사는 “피해보상이라고 하지만 국가의 위법적인 행위로 인해 초래된 피해액 청구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피해배상’이라는 용어가 정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맞고소 상황을 지켜보면서 남북관계의 진전에 발맞춰 남북한 법제 역시 순차적으로 정비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법적인 검토는 아직 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민사·형사재판과 범죄인 인도 등의 문제를 북한과 합의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성호 교수는 “향후 통일이 되면 통일대한민국 정부에서 국가가 위로금을 제공하고 보상금을 지불하는 등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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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측에 고소를 한 이유는.

“진작부터 남북 양쪽 정부에 피해보상을 요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침 북측에서 송환 장기수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해 서둘러 냈다. 정부가 그런 고소장을 받아온 것도 문제다. 일이 이렇게 된 만큼 양쪽 정부가 공동으로 심의해야 한다.”

-법률적인 자문을 거쳤나.

“변호사 없이 직접 고소장을 작성했다. 하루라도 빨리 해야지, 안 그러면 장기수와 관련해 다른 문제가 불거질 수 있겠다 싶어 서둘렀다. 지난해에 서울지방변호사회와 공동으로 납북자 관련 행사를 갖기도 했다. 앞으로 그쪽의 도움을 얻어 법률적 자문을 받을 계획이다. 또 납북자 487명을 대상으로 해서 국제재판소에 제소하겠다.”

-고소장을 낸 후 여론의 반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맞고소를 한 후 저쪽의 이야기가 쑥 들어갔다. 북한이 얼토당토한 주장을 한다면 우리로서는 납북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장기수에 대해 이해는 할 수 있으나, 장기수들이 국가 전복을 꾀하려 남파된 사람이라면 납북자들은 아무 이유 없이 끌려간 민간인이다.”

-맞고소가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2000년 장기수 63명 보냈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까지 납북자에 대해 생사 확인도 해주지 않고 있다. 납북자의 생사 확인이 이뤄지고 장기수를 추가송환하는 것을 나도 바란다. 그런데 아무런 소식 없이 일방적으로 추가송환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일단 고소를 통한 맞대응으로 여론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으로 본다. 이번을 계기로 납북자 문제가 발전적으로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사항은.

“정치권과 정부측에 수차례 납북자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2004년 4월 국가인권위에서 납북자 관련 특별법을 만들도록 정책 권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정치권에 실망했다. 법이 없어 귀환 납북자들은 탈북자 수준의 대우밖에 받지 못한다.”

-정부 당국에서 테러위협에 대해 신변안전을 당부했다고 하는데.

“예전의 황우석 박사처럼 경찰에서 경호를 해주고 있다. 미안할 뿐이다. 협박전화가 많이 온다. 내가 경호를 받는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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