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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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아래 눕다

[유성문의로드포엠]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바람은 저리도 눈부신 걸
바다 아래 누워도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세상은 정처 없어 외로움으로만 떠돌고
머물러야 할 어느 순간에도
나는 떠나버린 사랑만을 그리워했다
바람은 자꾸만 발밑을 적셔도
바다는 얼마나 귀 시려운가
겨울은 그렇게 빛으로 뒤척이는데
문득 섬이 부시시 몸을 일으켰다

- 안면도 바람아래해수욕장 -

천수만에는 온갖 것들이 모여 산다. 아직 남쪽으로 떠나지 않는 철새들과, 어린 굴들과, 새조개며 대하, 돌아가신 왕회장님이 남겨놓으신 나락 부스러기들과, 학의 날개깃 밑에 목숨을 부지한 어느 대사에게 깨달음을 던져주었던 달빛까지. 바다인 듯도 하고 바다가 아닌 듯도 하고, 갯들인 듯도 하고 갯들 아닌 듯도 한 이곳에 이처럼 많은 것들이 기대 산다.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 이 세상에서 떼어메고 /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세계 최대의 철새도래지라는 천수만은 어느덧 ‘철새기행전’도 끝나고 많은 무리들이 더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버린 탓도 있겠지만, 남은 새들의 날개짓조차 어쩐지 쓸쓸하고 시들하기만 하다. 근자의 조류독감 공포는 힘없이 비끼어나는 새들의 행렬마저 예사롭게 보아 넘길 수 없게 한다.

천수만의 새들이 AI 바이러스로 우는 사이, 안면도 소나무들은 재선충으로 떤다.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뭍이었다가 섬이 되고, 섬이었다가 뭍이 된 태안곶(안면도의 옛이름)의 역사처럼 안면도 소나무들의 내력 또한 기구하다. 조선시대 때 ‘황월장봉산(黃月長封山)’이라 하여 왕실의 관을 짜는 데 쓰였던 안면송(安眠松)들은 일제시대 때 이르러 수탈의 표적이 된다. 보기에도 시원하게 쭉쭉 뻗은 안면도의 소나무들에게 할복으로 송진을 뽑아내고 톱을 대 광산 갱목을 만들도록 한 장본인은 아소 다로(현 일본 외상)인가 하는 망언전문가의 할애비다. 헐값으로 안면도를 사들인 아소광업의 아소 다키치는 ‘이름 그대로 편하게 잠잘 수 있는 이상적 환경의 아소왕국 건설’을 꿈꾸었다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그나마 어렵게 살아남은 안면도의 소나무들은 이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재선충의 공포에 떨고 있다. 어느 길을 가든 항상 그윽한 우리 소나무들은 얼마나 큰 위안이었던가. 소나무 없는 강토를 상상하는 것은 죽기보다 끔찍한 일이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황사에 구제역에 재선충에 조류독감에 녹조에 적조에 길이란 길들은 온통 몸살을 앓는다. 겨울바다의 햇살은 찬란했지만 길 없이도 길을 가는 새들의 귀소조차 힘겨우니, 무참한 나는 다시 천수만을 되짚어 새조개 한 점에 소주 한잔으로 시름이나 달랠 겸 남당항의 노을 속으로 사라지련다.

글·사진/유성문<여행작가> rotac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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