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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김치맛 ‘2%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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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집 김치연구소의 열정… “우리 고유의 맛은 과학으로 풀 수 없는 미스터리”

[특집]한국김치맛 ‘2%의 비밀’

(주) 두산 김치연구소는 2000년 설립됐다. 1981년 두산식품연구소가 설립돼 김치의 대량 생산을 위한 연구를 시작한 이래 만 20년 만에 김치 유산균 분리 등 본격적인 연구를 수행할 김치연구팀이 발족한 것이다.

김치연구소가 두산 종가집 R&D 센터(소장 한경호) 내의 김치연구팀으로 통합된 것은 2002년. 연구팀에는 양시영 팀장(36) 등 모두 6명의 ‘김치 박사’가 있다. 이 팀이 업계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들이 찾아내 배양에 성공한 ‘류코노스톡 DRC0211’이라는 김치 유산균 때문이다. 지난 5월 출시된 ‘종가집 집김치’는 이 유산균을 최초로 접목한 김치 상품이다. R&D 센터 한경호 소장은 그 의미를 ‘김치혁명’으로 규정한다.

“땅에서 숙성된 겨울 김장김치의 맛은 아주 시원하고 깊은 맛을 냅니다. 문제는 이런 김치 맛을 내는 유산균이 시간이 지나면서 급격히 줄어든다는 겁니다. 김치가 신 맛을 내게 되죠. 가장 맛이 좋은 겨울 김장 김치에서 500여 종의 유산균을 분리해 낸 것이 이 연구의 핵심 기술입니다. 가장 좋은 맛을 내면서도 빨리 시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낸 거죠. 김치생산의 혁명을 일궈낸 것으로 감히 자부합니다.”

유산균 추출 김치 제조에 유용

[특집]한국김치맛 ‘2%의 비밀’

일본인이 좋아하는 재료의 조직감 또한 한국인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일본의 기무치는 젖산 발효를 하지 않은 생김치라는 것이다. 한국인은 젖산 발효에 의한 자연스러운 산미를 선호하지만 일본인은 발효된 김치 맛을 싫어하고 심지어 이를 상했다고 생각한다. 젖산 발효의 비밀을 극대화한 것이 바로 한국 김치 과학의 비밀이다.

김치 유산균을 추출해 이를 김치 제조에 응용하는 기술은 말처럼 쉬운 공정이 아니다. 추출과 적용 기술을 개발해 실제 상품을 생산하기까지 3년 이상이 소요됐다.

김치연구팀의 연구원들은 이 기술을 개발하려고 김장독 100개를 땅에 묻기도 했고 김치 발효용 스티로폼 박스를 연구실 가득 쌓아놓고 연구에 몰두했다. 이들은 이 연구를 위해 TV에 소개된 전국의 맛집과 전국의 명인들을 찾아 최고의 김치를 얻으러 다녔다.

유산균을 발견한 후 이를 배양할 천연 배지를 만들기 위해 배추 값이 제일 비싼 여름에 1t이나 생산되는 배추밭을 갈아 엎기도 했다. 이 과정에 남자 연구원들도 ‘김치 도사’가 됐다. 남도 김치 맛을 얻기 위해 멸치젓을 1t 이상 공수해 쓰면서 젓갈 냄새가 몸에 배 한동안 버스도 못 타고 목욕탕에도 못 갔다. 양시영 선임연구원은 김치 대량생산과 수출의 길을 처음 연 것은 ‘포장 기술’이라고 말한다.

밀폐형 가스 흡수 포장재 특허

[특집]한국김치맛 ‘2%의 비밀’

두산 종가집에서는 국내에서 최초로 이산화탄소 가스를 흡수하는 포장재를 개발(1990년 특허 출원)함으로써 이 문제를 일시에 해결했다. 이러한 밀폐형 가스 흡수 포장은 현재 유통되는 거의 모든 김치 회사가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맛있는 김치를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은 역시 엄선된 재료다. 좋은 재료를 눈으로 관찰하고 맛을 보아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으론 균일한 김치 맛을 낼 수 없다. 재료의 이화학적 특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기법을 개발, 김치는 사시사철 균일한 맛을 내게 됐다. 한경호 소장은 그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했다.

“고추의 경우 과거에는 지역적 명성에 의존하거나 개인의 주관적인 맛으로 선별했지요. 그러나 요즘은 다릅니다. 고추의 매운 맛을 판정하기 위해 캅사이신 함량을 측정하는 겁니다. 붉은 색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고추의 적색 성분을 추출해 ‘흡광도’를 잽니다. 배추와 무, 마늘과 기타 양념 재료도 모두 이화학적 특성 파악을 통해 구매를 결정합니다. 종가집 김치가 늘 균일한 맛을 유지하는 것은 이와 같은 재료 선별 때문입니다.”

중국산 김치 재료의 이화학적 특성을 두산 R&D 센터는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국산에 비해 현격하게 싼 중국산 재료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는 ‘김치의 비밀’이다. 양시영 선임연구원은 그 비밀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말 이상합니다. 중국산 재료는 국산과 비교해 이화학적 특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미미한 차이라서 과학적으로 보면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 김치를 만들어 맛을 보면 차이가 납니다. 과학으로 풀 수 없는 미스터리죠. 김치가 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한 음식인지 절감하게 됩니다.”

중국산 김치 파문이 국내 김치메이커에 호재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산이든 국내산이든 대량 생산된 김치는 믿을 수 없다는 소비자들의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가집 김치 역시 중국산 김치의 위생 문제가 불거지면서 김장철 김치 매출이 늘지 않아 고민중이다. 한경호 소장은 소비자의 우려가 ‘기우’라는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특집]한국김치맛 ‘2%의 비밀’

김치공장은 반도체공장 같은 ‘클린룸’

김치 공장의 위생 관리는 매우 엄격하다. 작업장은 반도체 공장과 맞먹을 정도의 ‘클린 룸’ 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출입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모자, 마스크, 위생복을 착용해야 한다.

‘끈끈이 장치’로 혹시라도 옷에 붙어 있을 머리카락과 실오라기 등을 제거하고 ‘에어 샤워’를 통과한다. 그 다음에도 비누로 손을 씻고 손을 완전히 건조시키는 ‘에어 블로’ 과정을 거친다. 한 순간이라도 작업장을 떠난 사람들은 다시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작업장에 들어갈 수 있다.

종가집 김치연구팀이 최근 야심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기능성 김치의 개발과 세계적 차원의 ‘로컬화’ 작업이다. 한경호 소장은 그 프로젝트의 포인트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치가 항암작용 등 여러 질병 치료에 유익하고 최근 유행하는 조류독감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일부 밝혀졌습니다. 우리 연구팀은 김치의 이런 효능의 비밀을 밝혀 건강에 좋은 기능성 김치 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또 김치가 세계적인 식품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역적으로 적합한 다양한 맛의 김치를 개발해야 합니다. 유럽식, 미국식, 일본식, 동남아식 등의 김치를 각각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 김치가 세계 김치의 진정한 표준이 되기 위해선 이런 현지화 전략이 필수적입니다. ‘개봉 박두’입니다. 세계인들의 입맛에 맞는 김치가 그들의 식탁에 매일 오를 날이 이젠 멀지 않았습니다.”

엄격한 위생 잣대 ‘해썹’

‘HACCP’란 ‘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s’의 머리글자로, 일명 ‘해썹’이라 부르며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는 이를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으로 번역하고 있다.

HACCP은 위해분석(HA)과 중요관리점(CCP)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HA는 위해가능성이 있는 요소를 찾아 분석·평가하는 것이고, CCP는 해당 위해요소를 방지·제거하고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할 관리점을 지칭한다.

HACCP의 원리가 식품에 응용되기 시작된 것은 1960년대 초다. NASA(미항공우주국)가 미생물학적으로 100% 안전한 우주식량을 제조하기 위해 Pillsbury사, 미육군 NATICK연구소와 공동으로 HACCP를 실시한 것이다. 그 내용은 1971년 미국식품보호위원회에서 처음으로 공표됐다.

최근 세계각국은 식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HACCP를 이미 도입하였거나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더욱이 1993년 7월 CODEX(국제식품규격위원회) 제20차 총회에서 ‘HACCP 시스템의 적용지침’을 채택하여 각국에 HACCP 도입을 권고함에 따라 HACCP는 전세계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5년 12월 식품위생법(제 32조의 2)에 HACCP 규정을 신설했다.

최근 수입식육이나 냉동식품, 아이스크림류 등에서는 살모넬라, 병원성대장균 O-157, 리스테리아, 캠필로박터 등의 식중독 세균이 빈번하게 검출되고 있으며, 농약이나 잔류수의약품, 항생물질, 중금속 및 화학물질(포장재가소제(DOP), 식물성 가수분해단백질(MCPD), 다이옥신 등)에 의한 위해 발생도 광역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들 위해요소에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번 중국산 수입 식품 파동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따라서 국내의 식품 생산업체들은 위해요소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위생관리기법인 HACCP를 법적근거에 따라 도입하여 적용하고 있거나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김치에는 20여 가지 재료가 투입되기 때문에 위생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김치업계에서는 두산 종가집 김치가 강원도 횡성, 경남 거창 공장에 HACCP 인증을 받았고 일부 대기업 김치메이커들도 이 관리 기준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EU, 미국 등 각국에서는 이미 자국내로 수입되는 몇몇 식품에 대하여 HACCP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HACCP 도입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한기홍〈객원기자〉 glutton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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