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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신드롬’ 과 이명박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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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앞날은 귀신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예측불허, 변화무쌍의 소용돌이 정치가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 공세를 거둬들이면서 정계개편 등과 맞물린 백가쟁명식 대권논의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 대박’을 터뜨리면서 대권을 노리는 잠룡들의 행보가 또 다시 국민들의 관심사로 떠오른 분위기다.

청계천 효과에 힘입어 이 시장의 지지율이 수직 상승하면서 그동안 부동의 1위를 지켜온 고건 전 총리와의 격차가 한 자릿수로 좁혀졌다. 향후 대권가도의 판도 변화를 예고한 셈이다. 어느 경우든 차기 대선에서 고 전 총리와 이 시장이 맞붙는다면 용호상박의 한판 승부가 펼쳐질 것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상당수 국민들도 두 사람이 빅 매치를 벌여주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무위(無爲)의 정치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고 전 총리나 ‘청계천 신화’를 창조한 이 시장의 인생역정을 들여다보면 여러 모로 대비가 된다. 고 전 총리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KS(경기고, 서울대)마크로 통하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거친 반면 이 시장은 낮에는 풀빵장수, 일용직 노동자로 고학을 하면서 야간 상고와 대학을 졸업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고 전 총리는 장관 3차례, 국회의원 2선, 관선·민선 서울시장, 총리 2차례 등 다른 사람은 한 번 하기도 힘든 자리를 두루 섭렵했다. 그러면서도 완벽하고 깔끔한 일처리, 모나지 않은 처신과 청렴한 공직생활로 행정의 달인, 공직자의 우상, 클린 고건 등의 찬사를 얻었다.

이 시장은 고대 재학시절 굴욕적인 한·일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6·3시위를 주도하다 실형을 살기도 했으며, 현대건설 입사 13년 만에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샐러리맨의 우상, 이명박 신화를 창조했다. 1996년 총선에서 정치1번지로 통하는 종로에서 당선됐으나 선거법 위반혐의로 금배지를 반납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민선 서울시장으로 재기에 성공, 청계천 복원은 물론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 건설, 대중교통체계 혁신 등 ‘역시 이명박이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숱한 화제와 찬탄을 자아내고 있다.

업무추진 스타일도 고 전 총리가 돌다리도 두드려본 뒤 건너는 신중·치밀형이라면, 이 시장은 옳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밀어붙이는 불도저식 추진력이 트레이드 마크다. 지역적으로도 영·호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어느 모로 보나 두 사람 모두 대권주자로서 경험과 경륜, 능력 면에서 손색이 없는 맞수다. 만약 본선에서 맞붙는다면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는 볼 만한 싸움을 벌일 것이 틀림없다.

다만 고 전 총리가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 선두를 달려왔다면, 이 시장은 없는 길을 만들고 새 길을 개척해온 인물이다.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창조적 리더십이 국가지도자에게 요구하는 리더십이라면 이 시장이 한 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에 반해 고 전 총리는 ‘노무현 실패’의 반사이익을 향유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노 대통령의 과거 허물기, 벼랑끝 전술과 같은 ‘고위험 정치전술’에 신물이 난 국민들이 그 대척점에 있는 고 전 총리의 노련하고 안정적인 국정운영 스타일을 선호하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장의 지지율이 검증된 것이라면, 고 전 총리의 인기와 호감도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막후의 고 전 총리가 막상 무대 위로 올라올 경우 상당부분 거품이 꺼질 것은 불문가지다. 민주당을 기반으로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 할 경우 자칫 ‘도로 호남당’ 시비에 휘말려 예상 밖의 난관에 부딪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랜 침묵과 암중모색을 끝내고 머지않아 무대 전면에 나설 고 전 총리가 과연 어떤 카드를 제시할까. 새 시대를 열어갈 희망과 비전, 제3의 길, 뉴 고건의 모습을 보여주느냐 여부에 따라 고건 신드롬이 신기루로 끝날지, 태풍을 몰고 올지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고영신<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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