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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전향 장기수 북송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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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택씨 시신송환 계기 인도주위적 차원 ‘2차 송환’ 검토

[포커스]강제전향 장기수 북송 이뤄질까

9월 30일 숨을 거둔 후 북으로 시신이 송환된 장기수 정순택씨는 2000년 비전향 장기수의 1차송환 당시 신청을 했으나 63명의 송환대상자에 끼지 못했다. 전향서를 제출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정순덕(여)씨도 마찬가지 이유로 대상자가 되지 못했다. 65명의 신청자 중 2명이 북으로 가지 못했다. 두 사람은 복역 중 강제적으로 전향했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순덕씨는 지난해 고인이 돼 파주 보광사의 장기수 묘역에 묻혔다. 정순택씨 역시 간암으로 사망, 시신으로 북녘땅을 밟았다.

정순택씨는 1958년 체포됐다. 고향인 충청도에서 상고를 졸업할 정도로 지식인 계층이었던 정씨는 월북 후 북한에서 공직에 있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한 문화계 인사와 접촉하기 위해 남파됐다가 1989년 출소하기까지 31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정씨 복역 중 강제적 전향 항변

그는 2000년 송환이 좌절된 후 장기수들의 거주지였던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살아왔다. 한 일간지와의 생전 인터뷰에서 정씨는 “(강제적으로 전향한 것이) 억울하고 분하지”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처와 4명의 아들을 두고 내려왔다. 김책공대 교수인 장남이 10월 2일 아버지의 시신을 인계해갔다. ‘만남의 집’에서 같이 생활한 장기수 문상봉씨(80)는 “정씨가 평소 가족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정씨의 아들 4명 모두 북한에서 고위직에 있다고 전해진다.

그는 평소 국가보안법 폐지, 반미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 권오헌 상임대표는 “7월까지도 시위에 참가할 정도로 정정했는데 간암 판정을 받은 후 한 달도 못돼 돌아가시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9월 29일 사경을 헤매던 그는 적십사자의 배려로 아들의 문병을 앞두고 있었으나 숨을 거둔 후 시신으로 아들과 만나게 됐다. 정씨의 시신 송환으로 장기수의 2차송환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정씨와 함께 생활해온 문상봉씨도 송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장기수다. 그는 2000년 1차송환 때에는 전향했다는 이유로 송환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지난해 열차역 폭발사고로 이름이 크게 알려진 평안북도 용천이 그의 고향이다. 그는 1960년 남파간첩을 싣고 가기 위해 포항 구룡포로 내려왔다가 체포됐다. 안내원으로 민간인 신분이었던 그는 이전에도 몇 차례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당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그는 1987년까지 28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북한에는 어머니와 처, 두 딸이 있었다. 그는 “그냥 하룻만에 다시 돌아가는 줄 알고 왔다가 지금까지 고향에 못가게 됐다”고 말했다. 3형제 중 장남으로 두 동생도 북쪽에 있다. 남한에는 가족이 한 명도 없다.

가족 없는 장기수 북송 의지 강해

정순택·문상봉씨와 함께 생활한 김영식씨(71)도 강제전향한 장기수. 김씨의 고향은 강원도 이천으로 금강산 위쪽에 위치해 있다. 1962년 안내원으로 울산지역에 내려왔다가 체포됐다. 1988년까지 26년 동안 복역했다.

1962년 남으로 내려오던 당시에는 28세이던 젊은이는 어느새 70세를 훌쩍 넘어섰다. 시골에는 부모가 생존해 있었고 처와 일곱 살짜리 아들, 두 살짜리 딸이 북에 남겨져 있었다. 김씨는 “감옥에서 금방 나갈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도 못했다”면서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출소한 후 지방으로 떠돌아다녔다는 그는 감시의 눈길 때문에 자유롭게 생활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한 상황에서 2000년에는 송환 정보조차 제대로 얻지 못했다. 김씨 역시 남한에는 가족이 전혀 없다. 1차송환으로 낙성대 만남의 집이 텅텅 비게 되자 이곳으로 들어가 고 정순택씨와 함께 생활해왔다.

김씨는 정씨가 “공부를 많이 한 지식인 출신으로 시위에 열성이었다”면서 “적십사자에서 북으로의 송환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씨는 복역 당시 정씨와 전주교도소에서 3∼4년 같이 생활한 인연도 있다.

[포커스]강제전향 장기수 북송 이뤄질까

김씨가 전향을 한 시기는 1972년께. 김씨는 “감옥에서 강제적으로 전향서를 제출한 후 마음은 불편했지만 몸은 편했다”고 말했다. 독방에서 나와 다른 범법자들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이다. 김씨는 “사상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어려서부터 일제의 만행을 보아왔다”면서 “외세를 배제하고 우리 민족끼리 통일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금까지 버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생활한 3명의 장기수 외에 다른 이들은 각자 흩어져 살다가도 각종 시위나 기자회견 때면 얼굴을 마주 대한다. 하지만 그것도 지방에 사는 사람이 많아 얼굴을 자주 보지는 못한다. 장기수라는 꼬리표를 가진 이들은 남파간첩, 간첩 안내원, 빨치산 활동으로 체포된 사람들이다. 대부분 북한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남한에 가족을 새로 둔 사람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비전향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가족 때문에 2000년 남한에 그대로 남았다.

통일부 장기수 본격적 신원 파악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 권오헌 상임대표는 요즘 부쩍 바빠졌다. 강제전향한 장기수의 북한 송환이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에 이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 9월 22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원과 박성범 한나라당 의원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장기수 송환에 대한 검토 용의를 물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답변, 2차송환의 가능성을 점치게 했다.

하지만 보수단체와 한나라당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10월 5일 “정부는 국군 포로와 납북자의 송환을 함께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감사에서 장기수 송환의 뜻을 물었던 박성범 의원측은 “박 의원과 박 대표의 발언은 서로 다르지 않다”면서 “박 의원은 장기수가 나이가 많은 만큼 인도적 차원에서 북송을 고려하고 이때 국군 포로와 납북자 송환도 함께 북측에 요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납북자가족모임과 피랍탈북인권연대 등도 기자회견을 하고 “2000년 비전향장기수 63명을 보냈지만 납북자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면서 장기수 북송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송환추진위에서는 정순택씨의 시신 송환을 계기로 2차송환의 시기가 무르익었음을 실감하고 있다. 권 상임대표는 “이번 시신 송환에서 정부가 ‘송환’이라는 용어를 처음 썼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면서 “2000년 송환 때는 보수단체의 반발을 우려해 ‘방문’이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송환추진위에는 송환 여부에 관한 장기수들의 문의전화가 오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묻는 것이다. 통일부에서도 장기수에 대한 본격적인 파악에 들어감에 따라 2차송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

송환 대상 장기수는 몇 명?

송환추진위원회가 밝힌 송환3대상자는 28명이다. 원래 33명이었으나 정순택씨처럼 5명이 세상을 떠나 28명이 북측으로의 송환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권 상임대표는 28명이 “구체적인 숫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권 상임대표는 최근 추가 송환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몇 명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말했다. 희망 인원이 늘어나 30명선이 넘어갈 것이라는 권 상임대표의 추측이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2000년 당시 대상자인 83명 중 20명이 신청을 포기, 63명이 송환됐다고 밝혔다. 83명은 비전향장기수를 말한다. 전향장기수의 경우는 아직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일부에서는 송환방침이 확정될 경우를 대비해 대상자 분류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전향장기수였으나 송환신청을 하지 않은 20명은 대부분 가족 때문에 남한에 남은 경우다. 권 상임대표는 “가족이 아니면 북으로 갈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에는 비전향장기수 63명과 정순덕·정순택씨 두 사람을 포함, 65명이 송환신청을 했으나 두 사람은 전향했다는 이유로 송환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기수의 정확한 숫자는 아직도 집계되지 않고 있다. 1999년 권 상임대표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감호처분자가 52명, 비전향 만기 출소자가 2명, 비전향 노인·병약자가 17명, 장기복역자가 31명이었다. 모두 102명이다. 이 숫자는 비전향장기수의 숫자이다. 1999년 이후 감옥에 복역 중인 비전향장기수는 없다.

송환추진위에서 파악한 숫자에 의하면 전향장기수를 포함해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 사망자는 22명에 이른다. 6명은 북측에 가지 못하고 파주 보광사 장기수 묘역에 묻혔다. 102명의 비전향장기수 중 10여 명의 사망자를 제외하고 나면 2000년도 대상자 83명이라는 숫자가 나올 수 있다. 권 상임대표는 “이밖에도 80여 명 정도는 감옥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전향장기수의 숫자는 더욱 불명확하다. 송환촉구 기자회견을 할 때면 많을 때는 20여 명의 장기수가 모인다. 이들을 포함해 30명 정도가 북한 송환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 상임대표는 “이들은 대부분 고령이고 2∼3가지 질환을 앓고 있어 빠른 시일 내에 북한으로 송환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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