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여의도 문건 작성자 따로 있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한나라당 파문 일자 서둘러 봉합… 실제 작성자 왜 숨길까

[정치]“여의도 문건 작성자 따로 있다”

지방신문을 베낀 것으로 알려진 지난 6월 여의도연구소의 대외비 문건은 과연 누가 작성한 것일까?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4·30 재보선을 심층 분석한 대외비 서류가 6월말 누출돼 파문을 일으켰다. 한나라당 내부 문서에 사조직을 움직였다는 표현이 있어 선거법 위반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여당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당시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은 연구소의 기획팀장이 지방신문을 참조해 직접 작성했다는 것. 하지만 당시 발표와는 다른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서 작성자로 알려진 이모씨는 “누출된 문건의 총결론에 해당되는 두 페이지는 내가 썼다”면서 “하지만 알려진 것과는 달리 나머지 내용은 다른 사람이 썼다”고 말했다. 모두 43쪽으로 이뤄진 이 보고서는 재보선 지역 6곳의 선거를 분석하고 마지막 두 페이지에 ‘총평 및 전략적 시사점: 민심트렌드의 변화’라는 제목 아래 결론을 담고 있다.

문제가 된 ‘사조직이 치밀하게 움직이면서’라는 표현은 김해갑 지역의 선거를 분석한 내용으로 문건 앞부분에 나온다. 문제가 된 부분은 이씨가 작성하지 않았음을 주장한 것이다. 이씨는 “사실을 밝히면 당에 누가 되기 때문에 지금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어느 시점에 가면 밝힐 수도 있다는 뉘앙스다.

[정치]“여의도 문건 작성자 따로 있다”

“전체 중 2페이지만 내가 썼다”

김해갑 지역의 선거 분석에는 ‘박근혜 대표에 대한 지지는 정치적으로 구체적이고 확고한 기반을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호기심과 동정 여론의 연결로 평가됨’‘대표 방문시 창원·마산·진해 등지에서 대거 동원된 당원들로 인해 실제 김해시민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는 점은 향후 개선 사항’ 등 박대표에 비판적인 내용이 들어있다.

이씨 이야기대로라면 문제가 된 문건 앞부분의 작성자는 다른 사람이며, 문건 유출 때문에 파문이 일자, 윗선에서 문건 작성자를 이씨 한 사람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여러 사람 것을 짜기운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썼다고 알고 있다”면서 “윤건영 당시 소장이 문건 작성자를 한 사람으로 보고했으며 지도부에서는 그 이상의 사실을 모른다”고 말했다. 전 대변인은 “다른 사람이 작성했다면 그런 문건을 누가 작성했느냐”고 반문했다. 박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씨가 문건작성자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 여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윤건영 전 소장은 “이미 다 지나간 일이며 대외비 문건이라 일절 코멘트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문건 작성자가 누구냐는 진실 여부의 문제와 함께 의혹이 일고 있는 부분은 만약 진실이 왜곡됐다면 왜 윗선에서 문건 작성자 부분을 숨겼을까 하는 점. 문건 작성자로 알려진 이씨는 “당을 위해서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나 자신도 왜 그 부분을 숨기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문건 유출을 둘러싸고 한나라당에서는 6월말 친박 - 반박 간에 갈등이 표출됐다. ‘반박’측에서 일부러 문건을 유출했다는 것이 ‘친박’의 주장. 당시 ‘반박’에 가까웠던 여의도연구소 인사들이 박 대표에게 비판적인 문건을 작성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반박’측에서는 문건작성자 책임론을 내세워 소장을 비롯한 비코드 인사를 사퇴시키려고 한 것이라는 음모론으로 맞섰다.

[정치]“여의도 문건 작성자 따로 있다”

대기발령 연구원들 사퇴 압력

이씨는 지난 8월 1일 연구소에서 대기발령 상태에 놓였다. 사실상 문건 작성의 책임 때문에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 박사 출신을 뽑은 연구소의 공채 시험에 합격해 지난 4월 업무를 시작한 이씨는 “내가 ‘(지방신문을) 베낀 박사’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는데 지금 나가라고 하는 것은 ‘니가 인정했으니까 책임지라’고 하는 식”이라면서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을 내보내기 위한 완벽한 시나리오”라고 항변했다.

지금 대기발령 상태에 놓인 연구원은 이씨를 포함해 모두 4명. 이중 또다른 이모 연구원은 윤여준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문건작성자로 알려진 이씨는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보좌관 출신. 때문에 최근 대권구도와 관련해 최병렬 전 대표와 윤여준 전 의원이 이명박 서울시장 편에 섰기 때문에 박 대표 쪽 지도부에서 사퇴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소문의 당사자인 이명박 시장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면서 “윤 전 의원과도 친분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박사모에서 날아온 편지’라는 형식으로 문건작성자와 최 전 대표의 인연을 밝히면서 일부러 비판 문건을 작성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 전 대표의 보좌관이던 이씨는 “내가 알기에도 최 전 대표가 이 시장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 이런 글이 인터넷에 나돌면서 가만히 있는 최 전 대표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는 요약본만 봤을까

[정치]“여의도 문건 작성자 따로 있다”

윤건영 전 소장은 “그때 일로 책임지고 물러났다”면서 “지금 인사 문제는 인사권자인 현 소장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 전 소장은 “그때 일로 연구원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내게도 생각이 있지만 지금 언론에 표명하지 않는 게 좋다”며 입을 닫았다.

윤 전 소장의 모호한 입장과 관련해 일고 있는 또 하나의 의혹은 과연 박 대표가 문제가 된 내용이 담긴 43쪽짜리 전체 보고서를 보지 못했느냐는 점이다. 당초 언론을 통해 박 대표가 요약본만 봤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다는 주장도 솔솔 나온다. 전여옥 대변인은 “그 부분은 내가 분명히 안다”면서 “박 대표는 한 페이지 요약본을 봤을 뿐 전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윤 전 소장은 박 대표에게 전체 보고서를 보여줬느냐, 아니면 요약본을 보여줬느냐는 질문에 “그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얼버무렸다.

여의도연구소의 문건 유출 파동은 열린우리당의 고발로 한나라당 재보선 당선자에 대해 검찰이 수사 착수한 상태로 여전히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베낀 것인가, 작성한 것인가

지난 6월말 문건 유출 파동은 문건의 내용이 지방신문인 ‘경남신문’에서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가 다시 ‘경남신문’에서 한나라당 경남도당의 보도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남신문’ 5월 2일자에는 “한나라당 조직과 후보의 사조직이 치밀하게 움직이면서, ‘김정권 동정론’을 부각시킨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라고 실렸다. 연구소의 문건에는 “한나라당 당원 조직과 후보의 사조직이 치밀하게 움직이면서 ‘김정권 동정론’을 부각시킨 것이 주효”라고 적혀 있다. ‘당원’이라는 문구가 삽입된 데다 ‘했다는 분석이다’라는 기사 문체가 보고서 문체에서 생략된 것이 다를 뿐 전체 내용은 같다.

‘경남신문’의 기사보다 미리 작성된 한나라당 경남도당의 보도자료에는 선거승리 요인으로 ‘한나라당 조직과 후보 사조직의 탄탄한 기반’이라는 표현이 나타나 있다. 또한 ‘김정권 동정론 유발’이라는 표현도 있다. 이 사실을 보도한 한 주간지는 기사를 작성한 ‘경남신문’ 기자가 ‘한나라당 보도자료를 참고로 했다’고 답변한 것으로 싣고 있다.

‘한나라당 경남도당 보도 자료→경남신문 기사→여의도 연구소 문건’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사조직이 움직이면서’라는 표현이 나왔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상황. 하지만 지방신문을 취합했다는 당초 주장과는 다른 얘기가 나오면서 과연 누가 보고서를 직접 썼는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표현을 그대로 보면 경남도당의 보도자료에서 ‘경남신문’ 기사로 바뀐 과정은 기사 작성자의 주장대로 ‘참고’ 수준이다. 하지만 신문 기사에서 여의도연구소 문건으로의 변화는 ‘참고’와 ‘취합’ 수준을 넘어선 ‘베낀’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경남신문’ 기사와 연구소 문건은 총평도 일치한다. ‘경남신문’에는 “‘대통령 고향 - 한나라당 텃밭’ ‘인물 - 조직’ 대결로 맞붙었으나 한나라당 조직의 승리로 결말이 났다”라고 실렸다. 연구소 문건의 총평에는 “‘대통령 고향 對 한나라당 텃밭’, ‘인물 對 조직’ 대결로 맞붙었으나 한나라당 ‘조직의 승리’로 결말”이라고 나타나 있다. 이밖에도 여러 군데에 같은 내용이 나타나 있다.

한 인사는 “당시 연구소에서 문건을 작성하기 전 한 연구원이 지방선거를 집중 취재한 기자들을 소개받으려 했다”고 말했다. 기사 작성자인 이모 기자의 이름도 거론됐다는 것이 이 인사의 증언. 하지만 해당 기자는 문건의 직접 작성을 부인했다. 이 기자는 “연구소의 원고 청탁을 받은 적도 없으며 문건 작성자와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없다”면서 ‘지방신문 기자의 직접 작성설’을 부인했다. 문건작성자로 알려진 이씨 역시 “다른 사람이 작성했으나 기자들이 쓴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