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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하던 해변에 드라마 후광이…시도와 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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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한적하던 해변에 드라마 후광이…시도와 모도

9월로 접어들면 하늘이 높아진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기만 한 날도 많아진다. 깔끔한 가을 하늘을 보기 위해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의 신도·시도·모도를 찾아 나선다. 모름지기 여행자는 부지런해야 한다.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신도로 출항하는 첫 번째 카페리를 타기 위해서이다. 일단 신도로 들어가면 이웃한 시도와 모도는 쉽사리 돌아볼 수 있다. 이들 3개의 섬은 방조제와 연륙교로 이어져 하나의 섬처럼 여행할 수 있다. 올림픽대로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드라이브. 새벽녘이라 바람이 여간 삽상한 게 아니다.

영종대교기념관에 잠시 들러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호흡을 고른 다음 화물터미널 입구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삼목선착장에 도착한다. 뱃삯은 신도에서 나올 때 지불하면 된다기에 선원들의 지시를 따라 배에 차를 싣는다. 10분에 불과한 짧은 항해. 갈매기들에게 과자를 던져줄 틈도 없는 시간이다. 내 여행법이 늘 그랬던 것처럼 일단 선착장에서 가장 먼 곳까지 이동한다. 신도와 시도를 잇는 방조제를 건너고 시도와 모도를 잇는 연륙교도 건너 배미꾸미해변이라는 곳까지 간다.

오른쪽 바다 건너로 강화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동막리와 여차리 해변 그리고 마니산이 가만가만 속삭인다. ‘나를 잊지 마세요. 다음 번 가을여행 목적지는 강화도라구요.’

3형제 섬 가운데 규모로 봐서 막내격인 모도의 배미꾸미해변에는 놀랍게도 멋진 조각공원이 들어서 있다. 조각가 이일호 선생의 작업장 구실을 하는 2층집 마당이 조각공원이다. ‘모도와 이일호’라고 새겨진 커다란 화강암이 기념탑처럼 수직으로 서 있고 그 주변으로는 사랑, 고통, 윤회 등을 형상화한 조각품들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여행]한적하던 해변에 드라마 후광이…시도와 모도

꿈을 꿀 줄 아는 자가 마침내 도달한 행복의 바닷가에서 여행자들 역시 크고 작은 조각작품들을 찬찬히 감상하며 그의 예술혼에 빨려든다. 시인 김춘수씨의 표현을 잠시 빌리건대 이 조각공원이 없었더라면 모도는 그저 하나의 쓸쓸한 섬에 지나지 않았을 터이나 한 조각가와 인연이 돼 모도는 여행객들에게 꿈꾸는 법을 일러주는 섬이 되었다. 조각공원 상공은 인천국제공항을 드나드는 비행기들의 이착륙 항로 가운데 하나다. 시시때때로 항공기 엔진소리가 귓전에 내려앉는다. 국제선 여객기들의 은빛 날개를 바라보며 내 몸이 파리나 베이징, 그 어디쯤으로 실려가고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한다. 비행기들이 지나간 자리, 파란 하늘은 쨍그랑쨍그랑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게 상쾌한 가을바람을 선사한다.

모도에서 연륙교를 건너 시도로 이동한다. 신도보다 작지만 북도면사무소가 이 섬에 있다. 면사무소 앞을 관통하는 큰 길에서 ‘풀하우스’라는 안내판을 따라 북쪽의 수기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중간에 천일염을 파는 염전 옆을 지나게 되는데 오후시간에는 소금을 거둬들이는 장면도 구경할 수 있다. 시도에서 유일한 해수욕장인 수기해변은 최근 들어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방문객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KBS 수목드라마 ‘풀하우스’의 야외세트가 바로 이 해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작디작은 섬은 배가 들어올 때마다 한 차례 교통체증을 겪기도 한다.

[여행]한적하던 해변에 드라마 후광이…시도와 모도

북쪽으로 강화도 동막해수욕장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수기해변의 서쪽 끄트머리는 드라마 속의 주인공인 이영재(비)와 한지은(송혜교) 커플이 계약 결혼을 하고 함께 거주하는 풀하우스가 있는 곳이다. 몇 억원이라던가, 엄청난 돈을 들여 지은 풀하우스 세트는 한 쪽 벽면을 넓은 통유리로 만들어 강화 앞바다를 품 안에 끌어들였다. 여행객들은 저마다 디카와 폰카를 들고 풀하우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수기해변 동쪽 끝은 갯바위지대로 망둥어 낚시터다. 망둥어는 간단한 채비로도 쉽사리 손맛을 볼 수 있는 어종이라서 아이들까지 망둥어낚시에 나선다. 서울에서 왔다는 일가족을 수기해변에서 만났다. 그들은 풀하우스 구경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망둥어낚시에만 몰두하는데 특이하게도 초등학생 딸이 낚싯대를 잡고 아버지와 아들은 망둥어를 회로 떠서 먹기에 바쁘다. ‘아빠, 내가 먹을 건 남겨줘’ 하고 딸아이가 소리치지만 두 부자는 마지막 한 점마저 낼름 삼켜버렸다. 내장을 따고, 뼈를 바르고, 회를 뜨면 4점밖에 나오지 않는 망둥어는 잡자마자 배를 가른 다음 햇볕에 살짝 말렸다가 구워먹어도 맛이 기막히다.

[여행]한적하던 해변에 드라마 후광이…시도와 모도

시도와 신도를 잇는 방조제를 건너면 두 갈래 길. 오른쪽으로 가면 곧장 신도선착장에 닿고 왼쪽으로 가면 신도를 한 바퀴 돌게 된다. 신도는 3형제 섬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지만 조각공원이나 해수욕장 같은 명소는 없는 섬이다. 다만 한가운데 솟은 구봉산(178m)이 등산객들에게 조금 알려진 정도다. 신도 동부 해안가에도 역시 염전이 있으나 점차 사라지는 운명에 놓여 있으며 그 자리에는 대하양식장이 들어서고 있다.

그렇게 섬 3개를 돌아보고 신도선착장으로 나와도 망둥어낚시가 여행목적이 아니었다면 일몰 때까지는 시간이 남는다.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하면 이리도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영종도의 섬목선착장으로 나온 다음 공항북로를 타고 용유도의 왕산해변과 을왕리해변으로 향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또는 모도 바로 옆 장봉도까지 다녀와도 된다. 장봉도에는 진촌, 한들, 옹암 등 3개의 해변이 유명하다.

◆여행메모(지역번호 032)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세종해운(884-4155) 소속의 카페리가 오전 7시 무렵부터 오후 6시 무렵까지 1시간 간격으로 출항하며 먼저 신도에 들른 뒤 장봉도까지 간다. 신도매표소 752-3619, 장봉매표소 751-0193. 북도면사무소 752-4019.


글·사진/유연태<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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