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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의 못다 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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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 회고록은 그가 갖고 있는 자료나 기억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더 많은 비화와 자료를 갖고 있다는 얘기. 이런 점에서 박 전의원의 회고록 출간에는 또 다른 정치적 복선이 엿보인다. 그래서 박 전의원이 이번 회고록에 쓰지 않은 비망록은 여전히 '블랙박스'로 남아 있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의 주변에 나쁜 영향이 미치는 상황이 오면 그 뚜껑은 열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커버스토리]박철언의 못다 쓴 이야기

최근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랜덤하우스중앙)은 그가 갖고 있는 자료나 알고 있는 내용의 일부를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박철언 전 의원은 말했다. 두 권짜리 1106쪽에 이르는 회고록에 기록한 것보다 더 많은 비화를 자료나 기억 속에 갖고 있다는 얘기다.

업무일지 20권 비망록 120여권 토대 작성

5·6공화국에 관한 한 박 전 의원만큼 많은 비화를 간직한 공직자나 정치인은 드물 것이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무비서관·법률비서관, 안기부장 특보를 지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는 청와대 정책보좌관, 정무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거쳤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시에는 슬롯머신 사건으로 옥살이 끝에 잠시 야인 생활도 했지만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재기, DJP공동정권의 주역으로 권력 중심부에 복귀했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이력은 1980년 신군부 등장부터 2000년 정치일선을 떠나기까지 20년간 그가 맡았던 역할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 아래 6·29선언, 3당합당, DJP연합 등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고, 42차례나 대북밀사로서 북한과 접촉하는 등 권부의 핵심 브레인이자 숨은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박 전 의원은 이 기간 공무와 관련한 활동을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이번 회고록은 이때 작성한 20권의 업무일지(다이어리)와 120여권의 비망록(메모수첩)을 토대로 쓴 것이다. 이 가운데 자신이 직접 관여 또는 집행한 사안이 아니거나, 관여했더라도 기록하지 않은 대목은 회고록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각종 회의에 언급되거나 보고된 ‘광주사태’ 관련 내용 등 자신이 직접 관여하지 않은 사건은 수첩에 적혀 있어도 회고록에 싣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의 회고록은 대단한 폭발력을 발휘하고 있다. 서점에 출시되자마자 불티처럼 팔려나가 일주일도 안 돼 4쇄에 돌입했다. 판매에서 현재 교보문고 정치·사회부분 1위, 인터넷서점 예스24 사회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회고록을 출판한 랜덤하우스중앙 측은 “나온 지 일주일이 안돼서 4쇄에 들어간 예가 거의 없다”며 “정치인 회고록으로는 예상 밖의 반응”이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정치인의 회고록이 출판시장에서 상품성을 발휘한 적은 거의 없다. 정작 회고록을 써야 할 사람은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쓰더라도 자화자찬하는 내용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주변 인물에 대해서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덕담이나 늘어놓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다 보니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사료로서 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 전 의원의 회고록은 이런 ‘한국적 회고록 문화’의 도식을 깼다. 밀실에서 오간 은밀한 대화는 물론 음모나 불법행위도 그대로 싣고 있다. 회고록에 등장하는 인물이 체면을 구기거나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대목도 과감하게 수록했다. 정치적으로 ‘왕따’를 자초하고 송사에 휘말릴 수 있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의원은 “네 분의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나와 함께 일했던 분들에게 인간적으로 죄송한 마음”이라며 “하지만 깨끗한 정치와 투명한 국가 운영,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고뇌에 찬 결단으로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회고록이 현장감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특별한 요소가 있다. 먼저 대필작가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썼다는 점이다. 남의 손을 거치지 않아 본인의 경험을 여과없이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박 전 의원은 회고록 집필에 꼬박 1년 2개월을 매달렸다. 또 하나는 기억이 아닌 기록을 토대로 했다는 점이다. 기억은 희미해지거나 변형될 수 있지만 기록은 확실한 것이다. 박 전 의원은 회고록을 준비하면서 기록과 자료에 있는 내용은 될 수 있는 한 가감 없이 담는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정확하고 생생하기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근거가 확실하면 다른 사람이 쉽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그러니 만큼 그의 회고록은 최근 ‘과거사’문제로 뒤숭숭한 현 정국에도 미묘한 파장을 던졌다. 이제까지의 각종 과거사 진상 규명 활동과 최근 불거진 도청 X파일 파문,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권력 남용범죄의 시효 배제 발언 등으로 ‘과거’ 문제가 정국의 중심 이슈로 부상한 상황에 나왔기 때문이다.

[커버스토리]박철언의 못다 쓴 이야기

회고록 집필에 꼬박 1년 2개월 매달려

과거사를 규명하려는 이런 각종 시도의 기본 취지는 하나 같이 국민 대통합이다. 어두운 과거의 진실을 밝혀 서로 화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 대통합을 이뤄 미래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박 전 의원도 회고록의 말미에 국민 대통합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박 전 의원측은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과거사 문제와 회고록의 그것은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박 전 의원은 “회고록을 X파일에 비유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그래서 ‘박철언 X파일’이라는 표현을 제일 싫어한다”고 말했다. X파일은 국가기관이 범죄적 방법으로 도·감청한 테이프를 사적인 목적에 악용하려고 한 것인 반면 회고록은 공직자가 공무수행 과정에서 합법적으로 기록한 일지와 비망록을 국민의 알권리에 부응하기 위해 공개한 것이라는 얘기다.

각종 과거사 진상규명을 통해 국민통합에 이르는 방식도 회고록이 표방하는 방식과 다르다는 게 박 전 의원측의 주장이다. 여권이 추진하는 방식은 상대방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이지만 회고록의 취지는 상대방의 흠집 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잘못도 고백함으로써 서로의 공과를 인정하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뜻을 모으자는 데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18일 박 전 의원측은 ‘박철언 회고록-그건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회고록 발간에 대한 세간의 의혹에 대한 해명 자료였다. 그 중 하나가 과거 정적에 대한 비판적 내용은 많은 대신 상대적으로 자기고백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한 설명이었다. 박 전 의원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회고록을 쓴 목적에는 지금 마치 수구·부패·반동의 시절로 폄훼되고 있는 5·6공 시절에도 그 시대의 주역들 나름대로는 얼마나 열심히 일했던가를 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면서 “YS가 돈을 받았다든지, 노 대통령에게 절을 했다든지, DJ가 YS를 씹고 YS가 DJ를 씹고… 이런 것들은 큰 흐름에 있어서 순간적인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 정권 주류의 5·6공에 대한 태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박 전 의원도 “그동안 5공·6공·YS시대·DJ시대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왔는데 내가 체험한 진실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고 말했다. 그는 회고록에서도 “개발도상에 있는 세계 여러 나라가 부러워하는 우리의 현대사를 오늘의 시점에 왜 이토록 비하하고 짓밟아야만 할까”라고 개탄했다.

이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의 회고록 출간에는 또 다른 정치적 복선이 엿보인다. 박 전 의원 자신은 정치복귀의 뜻은 티끌만치도 없다고 스스로 못 박았지만 ‘과거’에 대한 일방적인 부정은 견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의원이 이번 회고록에 쓰지 않은 비망록들은 그래서 여전히 ‘블랙박스’로 남아 있다. 회고록에 수록된 내용은 모든 정보가 청와대로 집중되던 시절 그가 옆에서 지켜보고 들었던 정보의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회고록에 쓰지 않은 기록과 정보가 더 강력한 폭발성을 가질 수 있다.

회고록 집필을 위한 자료 정리를 도왔던 황태순 공보특보는 “원래 박 전 의원의 비망록은 120여권이 아니라 300여권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며 “그중 180여권은 ‘정치보복’을 당할 때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비서들이 자료를 분산해서 숨기거나 이사하는 과정에 유실됐다는 주장이다. 그는 “사라진 부분에 ‘섹시한 내용’이 더 많을 수 있다”며 “그 내용이 박 전 의원의 기억에는 남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의원은 이번 회고록의 후속편을 출간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지금으로서는 다시 쓸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10권은 너끈히 낼 수 있는 자료와 그보다 더 많을지 모르는 기억은 ‘블랙박스’로 남겨두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가 예기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 자신과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 올 때도 ‘박철언 블랙박스’의 봉인이 풀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 이번 회고록이 출판시장과 정치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해 그의 말대로 ‘기록문화의 혁명’이 일어난다면 언제 어디서 제2, 제3의 ‘박철언식 회고록’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동안 과거사 정리를 위한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대사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그 진실이 감춰져 있다. 현장 관계자의 솔직한 증언은 이런 노력에 양념 구실을 톡톡히 할 수 있다. 박 전 의원의 회고록만 하더라도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회 5공비리 청문회를 통해서도 해소하지 못한 국민의 많은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신동호 편집위원 hu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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