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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생활정치로 복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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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권 내부문건 단독입수… 친노직계 작성, 야당과 연대 등 강조

[정치]“대통령은 생활정치로 복귀하라”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드라이브 속에 ‘신(新) 여소야대 국면에서 대통령정치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여권 내부문건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경향신문’이 최근 입수한 ‘정치지형 변화와 국정운영’은 대통령의 ‘정치 복귀’ 및 야당과의 연대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친노직계 그룹이 작성한 A4용지 82페이지 분량의 이 방대한 보고서는 지난 6월 초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이 보고된 후 노 대통령의 ‘서신정치’가 시작된 사실을 감안하면, 비선 정치 논란도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 문건의 충고내용은 현재 노 대통령의 행보와 매우 흡사하다.

대통령 행보의 밑그림? 문건은 포인트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복귀’다. 노 대통령
이 정치일선에 복귀해 “야당과의 정책연합을 선도하는 방식으로 정국 주도권을 강화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4·30 재·보선 참패로 조성된 ‘신 여소야대’ ▲보수세력 결집으로 인한 개혁 헤게모니의 약화 ▲지지기반 붕괴 등으로 “(현 상황이) 조기 레임덕을 경고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위기국면에 대한 여권의 안이한 대응방식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여권이 현재의 위기를 ▲측근 및 대통령위원회와 관련된 문제로만 ‘표피적으로’ 이해하거나 ▲지역주의 부활, 보수언론 등만 탓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권 지도부의 단결강조 내지 갈등무마식 접근에 대해선 “무책임하거나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의회 전략만으론 (현재 위기의) 돌파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여소야대 극복을 위해, 과거와 같이 의원 빼내기 등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빼든 게 대통령의 정치복귀 카드다. 문건은 ‘대통령 정치로의 중심이동’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대통령 주도로 ▲의회협력 정치를 강화하고 ▲당정협력을 완성하는 한편 ▲사회문제에 대면하고 타협을 이끌어내야 “보수세력에 짓눌린 개혁 헤게모니가 작동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실제 노 대통령은 문건의 조언을 대부분 받아들이는 수순을 밟았다. 우선 노 대통령은 6월말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노 대통령이 ‘권력이양’까지 거론하면서 대연정을 외치는 것도 의회협력정치를 통해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강화하라는 문건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문건은 한나라당에 대해선 ‘협력정치’를, 민노당과 민주당에 대해선 연대정치를 추진하라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위기감을 공유,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 정국에 유·무형의 영향을 미쳤을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밖에도 노 대통령은 문건의 충고와 여러모로 흡사한 행보 및 발언을 보여준다. 일례로 문건은 “차기 대권주자들이 모두 복귀해도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며, 준비 안된 복귀를 할 경우 사회적으로 이들의 힘이 소진될 수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당 일각의 대권주자 조기복귀론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후 노 대통령은 지난 6월 24일 여권 11인 회의에서 “대권 주자들을 내년 지방선거까지 묶어두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대통령은 생활정치로 복귀하라”

이후 노 대통령은 6월 27일 당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원내정당화는 당의 효율적 운영 차원에서 천천히 검토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며 “국회의원 당선자가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는 구조에서 원내정당화는 나머지 지역의 당 조직과 지지기반을 포기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문건과 똑같은 상황인식을 보인 것이다.

문건은 또 집권당의 위상강화 등을 위해 집권당 중심의 당정협의를 강화하라고 했다. 정부정책 발표 이전에 당정협의를 반드시 거치고 필요한 경우 집권당이 발표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충고다. 이후 총리공관에서만 개최되던 당정협의가 당에서도 개최되었으며, 현재 매주 수요일 부동산 당정정책의 결과는 당 주도로 국회에서 발표되고 있다.

향후 정국 시간표 보고서는 멀게는 007년 대선국면과 개헌국면 관리, 깝게는 9월 정기국회까지 일련의 정치 환경 속에서 정국을 어떻게 주도할지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역시 그 핵심은 ‘대통령 정치’의 강화다.

문건은 현 시점을 집권 3기(2005.6~2006.6)로 규정, 대통령 주도의 ‘개혁아젠다’ 실현을 통한 공세적인 국면 전환을 제안했다. 지금까지의 시스템 정치에선 대통령의 영역이 행정부분으로 한정됐지만, 이제는 대통령이 국민 삶의 사회경제적 문제와 대면할 ‘생활정치체계’로 복귀하라는 것이다.

문건은 대통령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갈등을 직접 대면하고, 모든 힘을 동원해 저항세력에 승리한 뒤 집권여당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새로운 경로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정책을 통한 정치의 5대과제’를 제안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정책을 포괄하는 동반성장 전략 ▲일자리 경제 ▲균형발전에서 균형사회로의 전환 ▲안전한 사회 ▲삶의 기준과 질의 향상 등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100대 국정과제 중 ‘동반성장 해당과제’ ‘균형사회 해당과제’ ‘일자리경제 해당과제’ ‘균형사회 해당과제’ ‘안전사회 해당과제’ ‘안전사회 해당과제’ ‘삶의 기준과 질의 향상에 해당하는 과제’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이후 정부가 기득권의 저항이 예상되는 파격적인 ‘부동산대책’을 준비하고, ‘양극화문제’ 등 복지에 부쩍 신경쓰는 모양새는 문건의 제언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또 8·15 때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평화번영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라고 제안한 것도 눈에 띈다. 역시 대통령 주도로 추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밖에 그간 대통령이 던진 동반성장·선진한국·균형사회·균형자론 등 주요 사회·정치적 의제제시가 공론을 형성하지 못해 “혼자 생각으로 파묻히고 지지자들이 신뢰기반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당국자의 적극적인 정책홍보 ▲인터넷 민주공론장의 재구축 등을 제언했다.

[정치]“대통령은 생활정치로 복귀하라”

이와 함께 향후 개헌과 대선 국면에 대비, 민주당·민노당 의원들의 입각 등을 통해 야당과의 연대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대연정’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응이 싸늘한 상황에 문건의 ‘소연정 강화’ 구상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한 당국자는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이 연말쯤 민노당·민주당과의 소연정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9월 정기국회의 쟁점법안의 처리방향 등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국가보안법 폐지안 및 사립학교법은 국면전환이 완성되고 나면 연내처리를 목표로 하도록 했다. 특히 비정규직 관련법안 등의 법안처리는 가능하지도 않으며, 통과되더라도 역풍을 초래하는만큼 사회적 대타협 아래서만 추진하라고 제시했다.

문건은 마지막으로 집권 4기(2006.7~ 2007.12)를 ‘대통령정치의 확장기’로 규정한 뒤 ‘개헌국면’(2006.7~2007.2)과 ‘대선정국’(2007.3~12)으로 세분했다. 골자는 대통령이 여야 대선주자를 관리하고, 개헌논쟁을 촉발해 시민사회의 참여폭을 확대하라는 것이다. 이밖에 ▲선진사회협약의 입법화 ▲대통령 개혁아젠다의 법제도적 기반구축 ▲정책연합의 구성과 신여소야대하 정기국회의 작동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대통령 정치강화 어떤 식일까

친노직계가 지난 6월 초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정치지형 변화와 국정운영’문건의 핵심은 ‘대통령의 정치복귀’다. 당연히 여당 및 대야(對野)를 향한 대통령의 정치강화 방안을 담고 있다. 대통령의 최근 발언과 행보가 문건과 많이 흡사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눈여겨볼 사항이 꽤 많다.

문건은 우선 대통령이 당내 권력구조의 중재자 역할을 맡을 것을 제안했다.

재야파·당권파 ·친노직계·개혁당파·안개모 등 5개 의견그룹을 분류한 뒤 이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밝히고 전략적인 당론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각 계파들을 청와대로 불러 그들의 견해를 정취하고 특별한 역할을 부탁하는 식으로 당내 권력구조를 조절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건은 또 대통령과 집권당을 연결하는 의견그룹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들이 ▲사회현상에 대한 권위있는 해석 및 정의를 할 수 있고 ▲사회·정치적 담론을 주도하면서 사회적 힘들을 조정하고 ▲관료사회의 인사권 및 주요 정책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정치력·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를 강력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회정치는 회유와 압박을 함께 구사하라고 제시했다. 회유로는 대통령이 주요 정책사안에 대한 야당의 협조를 직접 부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후 노 대통령은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윤광웅 국방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됐을 때 야당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해임건의안의 부결을 요청한 바 있다.

압박용으로는 여론 주도층과의 공개적인 대화 기제를 적극 활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실제 대통령은 7월 7일 29개 언론사의 편집·보도국장과 간담회를 갖고, 장장 3시간 10분동안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연정론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론 야당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셈이다.

문건은 이밖에 정치관계법·한반도 평화선언을 대통령의제의 2가지 사례로 제시한 뒤 의회와의 토론·합의·협력을 주도할 것을 충고했다.

<정치부/이용욱 기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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