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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조원 국부가 날아갈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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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의 반도체 핵심 제조 기술 유출의 전말

“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이 기술이 유출됐으면 최고 12조원의 손실을 가져왔을 테니까요.”

[E@L]12조원 국부가 날아갈 뻔했네

전말은 이렇다. 올해 3월 하이닉스 관계자가 국정원에 한가지 사실을 제보했다. 지난해 6월 포토장비팀의 우모(39·구속기소) 과장이 하이닉스를 그만두고 전직을 했는데, 그가 핵심기술을 다루고 있었고, 이 기술을 개인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국정원은 최근 2년간 퇴직자 중 그를 포함해 7명을 혐의 대상자로 정하고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핵심 기술을 취급하고, 이 기술을 개인적으로 활용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직원들이었다. 특히 퇴직한 직후인 지난해 6~7월 시차를 두고 차례로 중국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의혹을 더해주고 있었다.

국정원은 그중 김 전 부장이 리더인 것으로 추정할 만한 단서를 잡았다. 김 전 부장이 최연장자이고, 전 직책도 부장으로 가장 높은데다, 결정적으로 그가 중국 전자업체와 판매 계약을 진행중이란 첩보를 입수했다. 김 전 부장은 2003년 5월 반도체 제조시설인 팹(FAB) 프로젝트 기획과 최적화 업무를 총괄하다가 퇴직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수사권은 없지만 국내외에 인적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어 단서포착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현지에 국정원 주재원 외에 업계 관계자 등 정보원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해놓고 있다는 얘기다.

김모 전 부장 중국 업체와 계약 포착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는 또 한번 빛을 발했다. 김 전 부장이 2004년 3월 조세피난처인 중남미의 케이먼군도(영국령)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의 가공회사)를 차린 것을 포착한 것이다. 전혀 한국과 연결고리가 없는 케이먼군도에 회사를 차린 경우 추적이 어렵다. 그러나 국정원은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는 케이먼군도의 회사 오너가 한국사람이라는 제보를 정보원으로부터 제공받아 단서를 잡아냈다.

국정원은 김 전 부장 등이 서울 양재동 ㄴ사를 거점으로 삼아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하고 잠복근무를 시작했다. ㄴ사는 김 전 부장의 친형이 운영하는 회사다. 이들은 이 회사 한켠에 사무실을 차려놓았던 것이다. 사무실을 자주 드나드는 인근 음식점 배달원 등을 설득해 대화 내용 등을 알려달라고 했다. 두 달여간 탐문한 끝에 이들이 기술유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심증을 굳혔다. 또 이들은 지난 2월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투자설명회를 성공리에 마쳤는데, 기술을 완벽하게 확보하고 있어 투자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 사실도 알아냈다. 물론 그 기술은 하이닉스에서 빼온 것이다.

김 전 부장은 퇴직하면서 동료 직원들과 함께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차릴 계획을 세웠다. 그는 우 전 과장 등에게 기존 연봉(5000만~6000만원)보다 많은 7000만~1억원 가량의 연봉과 스톡옵션을 제시하고 퇴직할 때 핵심 반도체 기술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우 전 과장은 2004년 5월께 NAND 플래시메모리 90㎚ 세부 공정자료, 공정별 상세 공정조건, 생산장비 배치도 등의 자료를 CD 8장에 복사해 유출했다. 역시 하이닉스 과장 출신인 ㅊ씨도 재직중인 2004년 6월 NAND 플래시메모리 개발현황, 세부 공정자료, 양산방법 등을 USB 메모리 카드에 담아 회사 밖으로 가지고 나온 후 CD 2장에 복사했다. ㅂ씨도 2004년 6월 NAND 플래시메모리 100㎚, 120㎚ 반도체 세부 공정자료, 각 공정별 상세 공정조건, 생산장비 배치도 등을 자료를 CD 4장에 복제해 유출했다. 이들은 NAND 플래시메모리 90, 100, 120㎚ 제조기술 대부분을 빼낸 셈이다. 이 기술은 하이닉스가 2002년 6월부터 2년에 걸쳐 연인원 120명, 연구개발비 6245억원을 투입한 것이다. 플래시메모리는 지난해 하이닉스 영업이익 2조원에서 60~70%를 차지할 정도의 주력제품이다. 또 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 2조5000억원을 들여 플래시메모리 제조공장을 증설해 내년 상반기중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동료직원들과 중국에 공장설립 계획

이들 일당이 빼낸 기술유출 분량은 CD 15장(약 12G)으로 A4용지로 출력할 경우 1톤 트럭 한 대분에 이른다. 공장설립·생산을 해도 추가적인 기술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거의 모든 기술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중국 현지에 공장설립 계획까지 세웠다. 이들은 중국 정부, 유럽계 투자회사 등으로부터 모두 12억달러를 끌어들이기로 하고 중국 전자업체와 플래시메모리 판매 협의까지 진행했다. 또 중국내 반도체 공장이 설립됐을 때 활용할 인력으로 하이닉스 전·현직 직원 80여명과 접촉했다. 이중 33명은 현재 재직 중이다. 게다가 국내 역수출 계획까지 수립했다. 국내 시장까지 잠식될 뻔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 기술이 유출됐을 경우 매출감소 예상액은 4000억~12조원 규모에 이른다. 이는 시장점유율, 기술수명 사이클 등을 참고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산출한 것이다.

최근 하이닉스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졸업하는 등 회생의 길을 걷고 있다. 하이닉스는 2001년 10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반도체 사업부만 남겨놓고 휴대전화·액정표시장치(LCD) 부문을 포함해 20개가 넘는 사업부를 매각하거나 분사하면서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결과 경영상태가 호전돼 올해 1분기에 매출액 1조2843억원, 영업이익 2991억원을 기록했다. 세계 D램 반도체 시장에서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반도체 기술도 세계 일류 수준이다.

하지만 아직 워크아웃 상태라 직원들의 처우가 최고 수준은 아니다. 경쟁업체인 삼성전자에 대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얘기다. 과거 하이닉스에서 있었던 몇건의 기술유출 사건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쨌든 이들 7명은 지난 6월 27일 새벽 집에서 잠옷을 입은 채로 모두 잡혀 그 원대한 꿈(?)을 접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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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메모리란

플래시메모리는 전원이 꺼져도 계속 데이터가 저장되는 비휘발성 메모리다. 이 점에서 D램 메모리와 구별된다. 플래시메모리는 반도체칩을 구성하는 기억소자의 구성방법에 따라 데이터저장형(NAND)과 코드저장형(NOR)으로 나뉜다. NAND 플래시메모리는 집적도가 뛰어나 디지털카메라, USB메모리, MP3플레이어 등 주로 대용량 저장장치에 쓰이며 NOR 플래시메모리는 응답속도가 뛰어나 휴대전화, PDA 등에 사용된다. NAND는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 점유율 60%대로 1위를 독주하고 있다. NOR는 인텔·AMD 등 컴퓨터 CPU(중앙처리장치)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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