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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위협하는 ‘비행기 불청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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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기류·벼락·버드스트라이크 등 돌발상황 추락 가능성은 없어

[사회]안전 위협하는 ‘비행기 불청객’

지난 7월 14일 오전 4시 15분(한국시간) 대한항공 KE630편이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서 이륙했다. 257명의 승객과 14명의 승무원을 태운 이 B747-400 항공기는 이륙 후 약 40분이 흐른 시점, 인도네시아 상공을 지나 막 말레이시아 영공으로 진입했다. 장마철이었지만 기상은 비교적 양호했고 항공기 상태도 정상이었다.

이날 탑승한 승객의 대부분은 휴가철을 맞아 발리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던 한국인들이었다. 나른한 피로감에 젖어 있던 승객들이 항공기가 정상적으로 이륙한 뒤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자 편안한 잠에 빠져 있었다.

3만8000피트(약 1만2000m) 상공에서 고공비행하고 있던 항공기의 기체가 갑작스럽게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비행의 적’이라 할 수 있는 난기류(터뷸런스·Turbulence)를 만난 것이다.

항공 기상정보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상 레이더에도 전혀 감지되지 않았던 난기류의 출현을 감지한 기장은 재빨리 승무원들에게 안전벨트 사인을 보냈다. 방송담당 승무원 김혜영씨(36·여)도 지체없이 “안전벨트를 매달라”며 한국어 방송을 시작했다. 김씨의 몸이 항공기 천장을 향해 ‘붕’ 뜬 것은 그때였다. 항공기가 갑작스럽게 곤두박질치면서 서둘러 마이크를 잡은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친 것이다.

항공기는 거의 300피트(약 100m)를 급강하했고, 이 과정에서 심하게 흔들리며 승객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한 탑승객은 “한국어 기내방송이 나오는 도중 갑자기 항공기가 흔들리면서 승객과 승무원들이 기내 벽면 등에 부딪치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고 전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이날 사고로 골절상과 찰과상 등 크고작은 부상을 당한 승객은 모두 29명. 기내 서비스를 준비하던 승무원 11명도 전치 2~3주 가량의 타박상을 입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난기류는 비행을 하다보면 워낙 흔히 만나게 되는 상황이지만 이번처럼 300피트를 급강하하는 정도로 심한 난기류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항공기가 비행하다보면 수많은 돌발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위의 사례에서 나타난 난기류, 즉 터뷸런스이다. 특히 장마철이 겹치는 매년 여름이면 터뷸런스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터뷰런스는 일반적으로 적운(뭉게구름) 속에서 구름 내부의 풍속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 순항하던 항공기가 ‘공기 주머니’(Air Pocket)로 불리는 난기류 지역을 지나게 되면 바람의 방향과 속도의 변화가 심해져 기체가 요동을 치거나 심지어 급강하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라면 멀쩡하던 비행기가 갑자기 흔들려 불안에 떤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텐데 그 원인이 바로 터뷸런스인 셈이다.

난기류 가운데 ‘청천난류’(Clear Air Turbulence)는 기상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아 가장 달갑지 않은 손님으로 통한다. 주로, 중위도(30~50도) 지역의 고고도 지역(3만 피트 전후)에서 제트기류의 주변에 생성되는 강한 하강기류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구름이나 천둥 등 일반적인 기상현상과는 무관하게 멀쩡한 하늘에서 예고없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예측이 곤란하다. 항공기 기장들 사이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으로 불린다.

이번에 대한항공 KE630편이 급강하한 원인도 바로 이 청천난류와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순항 중이던 항공기가 청천난류를 만나면 항공기가 갑자기 뚝 떨어진다. 항공기가 청천난류를 맞아 급강하하면 탑승 중이던 승객들은 순간적으로 중력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놀이동산의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항공대 항공운항학과 송병흠 교수는 “일반적으로 난기류는 태양이 지표면에 내리쬘 때 올라오는 복사열로 인해 기류가 불안정해지면서 발생한다”며 “난기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상대적으로 기류가 안정적인 고고도에서 비행하는 것이 좋지만 무조건 높이 날 수도 없기 때문에 약간의 난기류는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비행기가 난기류로 인해 추락하는 경우도 있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럴 일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우선 최근 기상 레이더 등 장비가 좋아져 대부분의 난기류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는 데다, 항공기를 제작할 때부터 난기류를 만나 심하게 흔들리고 난 뒤 회복이 빠르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난기류 가운데서도 예측이 까다로운 편인 청천난류도 사전에 알아낼 수 있는 장비가 연구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승객들은 터뷸런스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항공기는 설계할 때부터 이런 상황을 모두 염두에 두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면서 “다만 심하게 흔들릴 경우 기내 충돌로 인한 찰과상 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안전벨트 사인이 꺼진 뒤에라도 되도록 이동을 삼가고 앉은 자리에서는 항상 안전벨트를 매고 있는 편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벼락 맞아도 승객들은 못 느껴

기류 변화에 따른 터뷸런스 이외에도 여름철 비행기가 흔히 맞닥뜨릴 수 있는 돌발상황에는 벼락(낙뢰)가 있다.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의 대형 항공기는 연간 각각 한 번 정도 벼락을 맞는다. 비행 중 항공기가 벼락을 맞는 것은 비행과정에서 구름을 통과하거나 공기와의 마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낮은 전압의 전기를 띠기 때문이다.

그러나 벼락을 맞아 여객기 사고가 발생하거나 승객이나 승무원이 감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본래 항공기는 벼락에 대비한 피뢰침이 좌우 및 수직날개 부분에 40~50개나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피뢰침에 벼락이 떨어질 경우 수만 볼트의 전류는 정전기 방출기를 통해 공중에 확산된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운항 중 벼락을 맞으면 간혹 뾰족한 부분의 금속이 녹아버리거나 전류에 의한 일시적 전자시스템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승객들은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벼락이 심한 우박 등 악천후를 동반하지 않는 이상 항공기가 큰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피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비행기가 낙뢰를 맞았다고 해서 별다른 대응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낙뢰가 예상되는 지역에 접어들면 항공기 기장들은 조종석의 밝기를 최대로 맞춰놓는다. 번개가 엄청나게 밝아 이를 맞았을 경우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도 항공사로서는 골치아픈 존재다. 버드 스트라이크란 항공기에 새가 충돌해 일어나는 사고를 말한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대형 항공기에 그깟 새 한 마리 부딪혀 죽었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시속 370㎞로 이륙하는 비행기에 0.9㎏짜리 청둥오리 한 마리가 부딪치면 항공기는 순간 4.8t의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이 정도의 충격이면 조종실 유리가 깨지거나 기체 일부가 찌그러질 수 있다.

오리 부딪치면 순간 충격 4.8t

국내에서도 매년 평균 60~80건의 버드 스트라이크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는데 이로 인한 항공사들의 피해가 만만치 않다. 항공기 몸통에 부딪히면 몰라도 자칫 새가 엔진에 빨려들어가기라도 하면 엔진 내의 블레이드를 망가뜨리거나 심한 경우 엔진을 태우는 등의 손실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2000년 11월에는 부산발 서울행 항공기 엔진에 청둥오리 4~5마리가 한꺼번에 끼어 부산으로 회항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크고작은 버드 스트라이크는 모두 약 400건에 달하며 이로 인한 피해액은 몇백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비행기 엔진을 고장낼 정도라면 안전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현재 운항 중인 대부분의 민항기의 경우 2~4개의 엔진을 갖추고 있어 버드 스트라이크로 엔진 한개가 고장나더라도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보다 안전한 운항을 위해 조류가 충돌하면 조종사는 회항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행경력 30년이 넘는 아시아나항공의 이호일 기장은 “터뷸런스나 낙뢰, 버드 스트라이크 등이 결코 반가운 존재는 아니지만 비행을 하다보면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해본 적은 없다”면서 “비행사고의 80% 이상이 이착륙할 때 벌어진다는 통계에서도 나타나듯 조종사 입장에서는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와 기내 화재 등 안전사고에 더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조종석 유리창은 5중 구조

영화를 통해 항공사고가 벌어질 때 이따금 조종석 유리창이 깨져 조종사가 밖으로 튕겨져나가는 장면이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항공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같은 경우는 대단히 ‘영화적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민항기 조종실의 창은 보통 5겹의 구조로 되어 있다. B-747기종의 경우는 무려 7겹이다. 외부창은 1~2㎜의 강화글라스로 여러 충격에도 상처가 나지 않는 특수재질을 사용하고 있다. 그 안쪽은 아주 얇은 전도성 금속 산화피막을 입혀 창의 표면온도가 항상 섭씨 35도를 유지하게 한다.

두 번째 창은 2㎜ 정도의 비닐이고, 세 번째 창은 두께 22㎜ 정도의 아크릴수지, 네 번째 창은 두께 1㎜ 정도의 비닐, 그리고 제일 안쪽의 창은 두께 17㎜의 아크릴수지로 이뤄져 있어 바깥 창이 깨지더라도 안쪽에는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강화글라스와 비닐, 그리고 아크릴수지 등이 안팎의 강한 압력차를 버텨주기 때문에 설령 바깥창이 깨지더라도 나머지 한 장만으로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는 것.

세계적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사에서 항공기 창의 강도를 측정하는 요령은 매우 흥미롭다. 객실 창의 경우 직경 3㎜ 정도의 얼음덩어리를 공기총으로 쏘아 그 안전성을 확인한다. 또한 더욱 강력한 충격에도 견뎌야 하는 조종실 창의 경우에는 2㎏ 정도 나가는 닭을 압축대포로 쏘아 그 유리의 강도를 측정한다고 한다. 이따금 버드 스트라이크로 말썽을 일으키는 조류들 때문에 죄없는 닭이 대신 희생하는 셈이다.


<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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