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네티즌 마음을 낚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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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가장한 ‘작전’ 인터넷 ‘낚시 마케팅’… 이용당하는 느낌에 반발 커져

[사회]네티즌 마음을 낚아라

‘우연이냐 작전이냐.’
인터넷 스타 ‘떨녀’를 두고 뒷말이 많다. 떨녀는 지난 4월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진 동영상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별명이다. 온몸을 심하게 떠는 젊은 여성의 섹시한 춤사위는 단숨에 네티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 한명의 ‘벼락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곧바로 떨녀 팬카페가 만들어졌고 그녀의 정체를 밝히려는 네티즌 수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네티즌은 곧 혼란에 빠졌다. 떨녀가 네티즌의 입소문을 노리고 기획된 ‘상품’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조선닷컴’은 떨녀를 두고 코카콜라와 광고대행사가 개입해 ‘짜고 친’ 정황이 포착됐다며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여기에 ‘오마이뉴스’가 반박을 하고 나서면서 사건은 더욱 커졌다. “조선닷컴의 보도는 철저히 확인된 팩트에 기초하지 않은 ‘오버’였다”고 직격탄을 퍼부은 것이다.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커밍아웃’한 떨녀 이보람씨 역시 자신은 “무용을 전공하는 평범한 대학생이며 연예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말해 코카콜라나 광고기획사의 연관성을 전면 부정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닷컴과 오마이뉴스의 한판 승부는 오마이뉴스의 KO승으로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떨녀’뒤에 광고기획사가?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조선닷컴의 ‘예언’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조선닷컴이 보도한 내용이 하나둘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연예계에 관심이 없다던 떨녀는 비록 패러디지만 코카콜라 광고에 얼굴을 내밀었다. 코카콜라측은 “사내에서 이견도 있었지만 어차피 떨녀가 인터넷 스타로 부상한 것은 사실인 만큼 패러디 광고에 출연시키기로 했다”면서 자작극설을 진화하기에 바빴다.

이 와중에 사건의 한 축인 코카콜라와 광고기획사는 쾌재를 부르고 있다. IT컬럼니스트 김중태씨는 “떨녀 사건의 경우 적어도 마케팅 홍보 차원에서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셈”이라고 평가했다. 사건이 조선닷컴과 오마이뉴스의 ‘진실게임’으로 흘러갔지만 코카콜라나 광고기획사 입장에서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화젯거리를 만들고자 한 작전이라는 면에서는 오히려 대박에 가깝다. 떨녀가 논쟁의 핵심이 될수록 이들이 챙길 이익은 계속 늘어난다.

엽기토끼, 개죽이·개벽이, 몸짱 아줌마 정다연, 얼짱 탤런트 박한별·구혜선·남상미, 레이싱걸 오윤아·이선영…. 네티즌의 입소문을 타고 ‘귀하신 몸’이 된 인터넷 스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수많은 인터넷 스타의 등장은 ‘보이지 않는 손’이 선택한 사람만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중견 연예매니지먼트사의 ㄱ실장은 “연예인 한명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노력을 딱 잘라 얼마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가수의 경우 보통 기획에서 데뷔까지 약 3년 동안 6억 원의 비용이 투여된다”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연예기획사 아니고는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예계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중소규모의 연예기획사들은 정공법으로 연예계에 진출하는 것보다 쉽다고 알려진 우회로를 개척한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기에 인터넷만한 곳은 없다. 자연히 네티즌을 유혹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이 동원된다.

업계 관계자들이 꼽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월드컵 가수로 알려진 미나의 경우다. 미나는 2002년 월드컵이 한창 열기를 뿜을 때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현장에 나타나 네티즌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녀의 사진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인터넷에서 미나의 인기는 월드컵의 인기와 함께 치솟았다. 그 다음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음반을 들고 나타났다. 미나의 월드컵 경기장 나들이는 우연을 가장한 철저한 계산이었던 셈이다.

조금 더 쉬운 길이 있다면 마다할 기획사는 없다. 레이싱걸 업계도 연예기획사들의 입질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요즘 뜨는 레이싱걸 대부분은 웬만한 연예인보다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팬으로서 충성도가 매우 높을 뿐 아니라 디카로 무장한 자발적 홍보요원들이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연예기획사 입장에서는 ‘불확실’을 ‘확실’로 바꾸는 네티즌의 힘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횡재수나 다름없다. 신선한 얼굴에 목마른 방송국도 경쟁력있는 레이싱걸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연예기획사들이 군침을 흘릴 만도 하다. 한 유명 레이싱걸의 매니저는 “요즘은 인기있는 레이싱걸을 연예기획사에서 스카우트하는 추세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예비 연예인을 레이싱걸로 써달라는 제안이 심심치 않았다”고 말했다. 레이싱걸로 먼저 데뷔시켜 짧은 시간 내에 인지도를 최대한 높인 다음 연예계로 내보내겠다는 전략이다.

[사회]네티즌 마음을 낚아라

‘펌질’이 인기를 만든다

최근 디시인사이드 등 유명사이트 엽기게시판에는 커다란 음료수병에 깔려 찌그러진 차량이 견인차에 실려가는 광경을 찍은 사진이 자주 올라온다. 사진을 본 네티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차를 뭉개버린 음료수병에 고정된다. 재미난 것을 보면 일단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네티즌의 속성을 제대로 간파한 홍보방식이다. 엽기적이고 독특한 사진일수록 ‘펌질’을 통해 쉽게 확대재생산된다.

광고대행사 휘닉스커뮤니케이션이 지난해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보유하고 있는 전국의 16~34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8%가 다른 사이트의 글을 퍼온 적이 있으며 72%는 1주일에 1번 이상 퍼온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밖에서 퍼온 내용이 전체 콘텐츠의 25%를 넘는다는 응답도 64%에 달해 ‘펌질’은 보편적인 현상인 것으로 증명됐다.

네티즌의 호기심을 자극해 ‘펌질’을 유도하는 ‘낚시’ 마케팅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영화 ‘분홍신’의 제작사인 청년필름은 지하철에 분홍색 구두를 든 맨발의 소녀를 출동시켜 짭짤한 재미를 봤다. 지하철은 영화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하루에 수백만명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이라는 점에서 훌륭한 홍보 장소였다. 청년필름 기획실 문현정 팀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 ‘분홍신’ 홍보 이벤트라는 걸 금방 알아차리고 재미있어 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리고 현장을 찍은 사진들은 네티즌의 네트워크를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인터넷 입소문이 시작된 것이다. 제작사는 이런 효과를 노린다. 인터넷에서 이슈로 부각되면 언론사가 기사를 쓰기도 한다. 별도의 비용을 들여야 하는 광고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특별 보너스다.

‘“알바들아, 낚시질 그만 해라”

최근의 홍보 이벤트들은 ‘선영아 사랑해’라는 현수막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뒤 TV를 통해 조금씩 스스로 정체를 밝혔던 마이클럽닷컴 광고의 ‘티저’ 기법과 엇비슷하다. 그렇지만 최근의 퍼포먼스들은 정답을 직접 가르쳐주지 않는다. 네티즌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네티즌들은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에 댓글을 달면서 추리를 하고 결국 정답을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제품 인지도가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다.

[사회]네티즌 마음을 낚아라

그러나 네티즌의 반응은 점차 냉소적으로 바뀌고 있다. ‘알바’를 들먹이며 “낚시질 좀 그만 하라”고 반감을 드러낸다. 한두 번은 ‘신선하다’며 박수를 보내지만 그 이상 반복되면 ‘짜증난다’는 반응이 튀어나온다. 알듯 모를듯 궁금증을 자아내는 홍보 이벤트의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기쁨도 곧 이용당했다는 울분으로 바뀐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떨녀가 연예인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떨녀는 이달 초 한 케이블TV 음악방송의 댄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멋진 춤솜씨를 보여줬다. 연예계로 한발짝 더 다가선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코카콜라의 ‘코크플레이’ 사이트 개편 이벤트에서 선발된 이른바 인터넷 스타들이었다. 이제 네티즌들은 떨녀 이보람씨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나의 꿈은 연예인도 아니고 모델도 아니다”라고 한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기획사가 우리를 가지고 놀았다”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품을 각인시키기 위해 어떤 기법을 사용할 것인지는 광고기획사가 선택할 문제지만, 나중에라도 분명히 광고임을 알려주거나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게끔 해야 하는데 끝까지 감췄기 때문에 네티즌은 ‘속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연예인 떨녀의 앞날이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이유다.

<유병탁 기자 lum3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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