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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중진 전면배치로 위기 탈출… 국방장관 해임건의안도 당론 아래 ‘단결’

최근 열린우리당에는 ‘위기 뒤의 찬스’라는 스포츠 격언이 딱 어울린다. 4·30 재보선 참패, 당 내분 등 한 차례 홍역을 치른 후 내부 단결이라는 소중한 ‘면역세포’를 얻었기 때문이다. 4월 초 출범 이후 내우외환으로 내내 흔들리던 문희상 의장 체제는 6월 말 ‘중진 카드’를 꺼내들었다. 임채정 의원이 당의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의 원장으로, 배기선 의원이 당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사무총장으로 전진 배치됐다.

중진들의 전면 부각에 대한 초선의원들의 불만은 거의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108번뇌’로 불렸던 108명(현재 103명) 초선의원의 목소리도 한결같다. “지도부를 전적으로 신임하고 따라야 한다”(김태년 의원), “당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중진들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김형주 의원), “당이 잘 되자고 하는 것이니 만큼 긍정적으로 본다”(김재윤 의원)는 등으로 지도부에 대한 신임을 나타냈다. 다른 구성원의 의견도 마찬가지. 재선인 문석호 의원은 “중진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허동준 중앙위원은 “리더십을 제대로 갖추자는데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에 ‘위기 뒤의 찬스’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말와 올해 초 천정배 전 원내대표와 이부영 전 당의장이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통과되지 못한 데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한 차례 큰 위기를 겪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그룹이 민주당 출신 중진들이었다. 임채정 의원이 과도기 당의장을 맡고 정세균 의원이 원내대표, 원혜영 의원이 정책위 의장이 됐다. 문희상·배기선·유인태·이강래·김한길 의원 등이 주축이 됐다. 천·신·정 당권파가 물러난 공백을 이들이 메운 것이다. 이른바 ‘장로정치’의 부활이었다.

6월 말 이들이 다시 ‘총대를 메고’ 나섰다. 처음의 난관은 사무총장직의 부활. 초선의 사무처장이 당직자들에게 휘둘려 당무를 장악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사무처장을 사무총장으로 바꾸고, 사무총장 아래에 사무부총장 3인을 두는 당헌 개정안이 중앙위원회의 결의를 거쳐야 했다. 반발이 예상됐지만 일부 소장 중앙위원들이 문제를 제기했을 뿐 무난히 통과됐다. 회의에서 문 의장과 유인태 의원이 직접 중앙위원들에게 간곡하게 호소했다고 한다.

‘위기 뒤 찬스’ 중진이 나섰다

특히 사무총장직을 맡게 된 중진이 배기선 의원인 것도 설득이 주효했던 부분이다. 배 총장은 평소 후배 의원들로부터 신망을 얻고 있는 인물. 총장직에 임명되자마자 당의 살림살이와 조직을 챙기고 나섰다. 6월 30일 당 윤리위원회 회의에 출석, “당의 포상 규정을 개선해 상을 받은 사람에게 공직 추천에서 가산점을 주도록 하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최근 기자와 만난 문희상 의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면서 “재·보선 때문에 3개월을 허송세월했다”고 말했다. 취임 100일을 맞게 되는 문 의장은 7월 10일 금강산에서 앞으로의 당 운영방향을 밝힐 예정이다. 문 의장은 “민생개혁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문 의장의 언급처럼 당 지도부는 3개월 동안 ‘쓴맛’을 보았다. 이 사이 중진들은 사실상 뒷짐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중진의원측은 “문 의장이 전당대회에서 중진들의 지원만 받아도 무난히 의장직에 당선됐을 텐데 그 과정에서 정동영계의 빚을 너무 많이 졌다”고 말했다.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박영선 비서실장과 전병헌 대변인 등이 주요 당직을 차지한 것도 이같은 이유로 본 것이다. 다른 중진의원측은 “도와주고 싶어도 일할 자리도 없는데 정식 지도부를 무시하고 나설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당직 인선에는 중진들이 대거 좌우에 배치됐다. 중진들이 앞으로 나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셈이다. 우선 전직 당의장과 원내대표들로 상임고문단을 구성했다. 정동영·김근태·천정배 장관을 비롯해 신기남·이부영·임채정 전 의장, 조세형 전 주일대사가 포함됐다. 또한 이상수·김태랑·천용택·이우재 전 의원과 이용희 의원 등 당 외곽의 중진들을 중심으로 고문단을 구성했다. 여기에 유재건·김한길·김원웅·신계륜·이석현·홍재형·유인태·이강래·이호웅·김희선 의원 같은 다선 의원들과 염동연·조성태·김명자·정덕구·홍창선·박찬석·이경숙·박명광 의원 같은 ‘중진급 초선의원’들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문 의장은 ‘중진정치’에 대해 “중진을 더 쓰고 싶은데 쓸 분이 없더라”면서 “3선의원은 모두 다른 자리를 이미 맡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열린우리당의 현역의원 중 6선인 김원기 국회의장과 5선 김덕규 국회부의장·이해찬 국무총리, 4선 이용희 행자위원장, 임채정 통외통위 위원장,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은 모두 중요 직책을 맡고 있다. 3선의원은 모두 12명으로 이들 역시 장관 또는 상임위 위원장이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천정배 법무부 장관, 김원웅 윤리위원장, 배기선 사무총장, 신기남 정보위원장, 유재건 국방위원장, 김한길 건교위원장, 정세균 원내대표, 문희상 의장, 이석현 보건복지위원장 등이다. 선거법 재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계륜 의원만이 유일하게 보직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 26명에 이르는 재선급 의원들도 대부분 국회 또는 당에서 보직을 갖고 있다. 문 의장은 “일할 사람을 재선급에서 겨우 찾아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문 의장 체제는 이밖에도 초선의원들로 특보단을 구성했다. 일각에서는 ‘모든 의원의 간부화’가 아니냐는 비판의 시각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당 내부에서는 ‘일하는 사람만 일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50명을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6월 30일 윤광웅 국방장관의 해임건의안이 부결된 것은 문 의장 체제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한 명의 이탈표도 없이 당론을 따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간접 지원 ‘구세주’

‘비온 뒤에 땅이 굳은’ 열린우리당의 단결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6월 27일 당에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문 의장 체제를 간접적으로 지원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당 지도부에 대해 비판세력으로 자리잡은 개혁당 출신 그룹조차 비판의 목소리를 낮췄다.

당 의장 당선으로 차기 대권주자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기대됐던 문 의장이 위기 후 관리형 의장으로 ‘내려앉은’ 것도 문 의장 체제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낸 기반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관리형 지도부인 문 의장 체제가 물러날 경우 차기 대권주자들의 조기 경쟁으로 당 자체의 기반이 흔들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혼과 같은 ‘허니문’ 분위기가 오래 갈 것인지는 미지수. 개혁 진영에서는 공공연하게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중진을 중심으로 한 지도부의 당 운영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 브레이크를 걸겠다는 의미를 다분히 담고 있다. 사무총장의 역할에 대해서도 선을 긋고 있다. 김형주 의원은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된 당헌으로 사무총장이 옛날 사무총장과 같은 권한을 갖는 것이 아니다”면서 “만약 그렇게 하려면 다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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