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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자식 같은 아이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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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내무반 총기난사 사건 벌어진 연천군 르포… “사고가 난 이유 지금도 이해 못해”

[포커스]“다 자식 같은 아이들인데…”

요 며칠 사이 경기도 연천의 대기는 무덥고 우울하다. 아주 무거운 침묵이 드리워져 있으며 그 분위기는 하나의 거대한 상가(喪家)를 연상케 한다. 사고가 난 태풍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연천군 중면 민통선 마을 횡산리에서 만난 주민의 말도 그랬다.

“여긴 상갓집이야. 상가에 와서 그 집안 부끄러운 내력을 이것저것 캐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궁금한 것 있어도 오늘은 참고 돌아가세요.”

횡산리는 사고가 난 초소에서 서쪽으로 5㎞ 정도 떨어진 고요한 마을이다. 임진강은 주민들이 경작하는 문전옥답을 적시며 아주 천천히 흐른다. 폭도 깊이도 적당해서 주변의 낮은 구릉과 잘 어울린다. 이 강의 ‘겸손한 운치’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 아름다운 마을이다!”

무겁고 우울한 연천의 대기

마을을 에워싼 북쪽의 작은 동산 너머 흉물 같은 철책이 있고, 그곳을 경계로 남과 북의 엄청난 무력이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마을로 통하는 길은 오직 하나, 두 군데의 검문 초소를 지나야 이곳 횡산리에 올 수 있다. 횡산리 이장 ㄱ씨(70)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방송사의 ‘강압에 가까운 인터뷰 요청’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기자들은 떠벌리기 좋아해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사단’이 나기 때문이요.”
ㄱ씨는 하고 싶은 말을 아껴야 하는 접경지역 주민의 특수성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기삿거리로 치면 재미있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이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그 재미있는 일이 뭐냐”는 질문에는 그냥 웃어넘기고 만다. 대신 그는 요즘 사병들의 ‘예의 없음’을 지탄했고 ‘활달하고 솔직한 태도’를 칭찬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친구, 형제나 다름없는 소대원들에게 총을 내갈긴 일을 어떻게 봐야 허나. 난 군대가 나빠서 생긴 일이라고 안 봐. 사회가 그렇게 미쳐 돌아가고 있잖아요. 군대 지휘관들이 그런 흐름을 다 막을 순 없는 거요. 국민들이 공동 책임져야 해.”

그는 “바쁠 텐데 어이 가봐”라며 손을 내저었다. ‘거동 수상자를 군부대에 신고하라’는 마을 입구의 커다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입간판을 지나 곧게 뻗은 아스팔트 위에 서너 살 먹은 아이들 셋이 나와 놀고 게으른 소 울음 소리도 들린다.

황해도 한 시골 마을에서 썼다는 이상(李箱)의 수필 ‘권태’의 적막강산이 연상되는 풍경이다. 마을을 배회하는 기자의 행색은 영락없는 ‘거동 수상자’다. 점방 옆 골목길로 들어가다 40대 중반의 주민 ㄴ씨를 만났다. 그는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적 개연성’에 대해 나름대로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 보슈. 펄펄 뛰는 장정들을 답답한 막사 안에 가두고 밤낮 없이 근무를 서게 한단 말이요. 대단한 정신력이 필요하고 엄정한 군기가 살아 있어야 해요. 예나 지금이나 그 많은 사병 중엔 나약한 애들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런 아이들을 미리 발견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게 지휘관의 능력이고 자질이지.”

그는 지난 30년간 이곳에 살며 ‘풍문으로 들었던’ 몇 건의 자살 사고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군대생활의 힘겨움’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 힘겨움이 ‘총을 목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야 할 정도의 고통’인지에 대해서는 회의하게 된다고 말했다.

“요즘은 군생활 부적응자는 의무대에 입실시킨대요. 군의관이나 의무사관들도 죽을 지경이죠. 겉보기에 멀쩡한 아이들이 의무실에서 뒹구니까요. 입대하기 전에 철저한 검진을 해서 이런 일을 막아야 해요.”

[포커스]“다 자식 같은 아이들인데…”

장미마을 삼곶리가 흘린 눈물

횡산리에서 차를 몰고 이웃 마을 삼곶리를 찾았다. 삼곶리는 민통선 바깥에 있지만 사고가 난 초소와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29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 산곶리는 화훼 특화단지로 마을 입구부터 장미꽃 향기가 진동했다. 이장 ㄷ씨는 전날 부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눈물이 납디다. 다 자식 같은 아이들인데. 대민봉사 나와서 열심히 일하던 아이들인데…. 삼곶리는 전부가 상가예요. 며칠 동안 내가 마을 방송을 삼갔어요. 사고가 나고 오늘 처음으로 방송을 했지. 여긴 군인들 없으면 농사 못 지어요. 그러니 군인들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지….”

그는 20여 년을 이곳에 사는 동안 부대 하사관들과 친형제처럼 지냈다. 오래 근무한 태풍부대 하사관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중대의 인사계는 내가 10여 년 동생처럼 알고 지냈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사람이 큰 책임을 져야 할텐데 정말 걱정이오. 사고 나기 며칠 전 중대 막사 주변의 나무를 베고 있더라고. 내가 사병들 시키지 왜 그걸 혼자 베고 있냐고 했더니 ‘요즘 아이들은 일이 서툴러서 잘못하면 다친다’는 거야. 이런 게 요즘 군대의 현실입니다. 자식 군대 보낸 부모들은 걱정이 많지만 과거에 비해 굉장한 보살핌을 받고 있어요.”

임기를 1년 앞두고 중도 하차한 연대장은 사고 전날 인근의 6·25 참전 용사들을 모두 불러 ‘잔치’를 벌였다.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단장 또한 이곳에 부임한 지 두 달이 채 안 된다. 이장 ㄷ씨는 사단장에서 말단 하사관까지 ‘줄줄이’ 책임져야 하는 군의 관행이 ‘가혹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유능한 지휘관을 키우기 위해 국가에서 들인 막대한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찌할 것인가. 사병들의 생명과 안전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지휘관의 책임은 무한대인 것을.

과거 삼곶리는 마을 상점이 세 군데나 있었다. 일과를 마친 하사관들은 마을 사람들과 이곳 상점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이런 풍경도, 막걸리 파는 가게도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주민과 군인의 만남은 주로 ‘대민 지원’를 통해서만 이뤄지고 있다.

“위계질서가 많이 약해졌지. 졸병이 고참한테 담배 달라고 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그런데도 대민봉사 나올 때 보면 고참·졸병 관계가 굉장히 돈독하거든. 그게 신기하더라고요. 신체적으로는 많이 약해진 것 같은데 책임감은 훨씬 더 강해졌어요. 잔소리 듣기 싫으니까 자기 할 일은 확실하게 하죠. 부대 바로 옆에서 살지만 사고가 난 이유를 지금도 이해 못하겠어요.”

태풍부대 군인들의 대민 지원활동은 연천 주민들의 자랑이다. 농번기에 농민들이 필요로 하는 일손은 거의 완벽하게 충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고 소식을 접한 연천군민들의 마음은 더 시리고 아프다.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에 사병들의 점심식사도 현장으로 ‘추진’된다. 그래서 어색하고 이상한 풍속도가 생겨났다. 농민들이 내온 점심과 부대에서 가져온 ‘식반’이 어우러져 ‘민군(民軍) 합동식사’가 벌어지는 것이다.

“재작년인가 군단장이 이곳을 순시하다 노부부가 힘겹게 밭을 가는 걸 봤어. 군단장이 차에서 내려 물어봤대요. 왜 군인들 일손을 빌리지 않느냐고… 부부가 그랬답니다. 군인들 점심 만들기가 너무 힘에 부친다고요. 그래서 군단장이 지시를 내려 식사를 추진하게 됐죠. 그래도 그건 예의가 아니지. 농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처사요. 자식 같은 사람들이 우리를 돕는데 따뜻한 밥 한끼 못해주면 인정이 아니죠.”

소통의 시대, 고독한 장병들

연천군 전곡읍은 외출·외박·휴가를 오가는 군인들의 중간 집결지다. 매시간 10분께면 의정부를 떠나 신탄리까지 가는 경원선 통근 열차가 이곳 전곡에 도착한다. ‘헌병’이라는 명찰을 달고 모자에 독수리 날개를 달고 있는 병사들이 28사단 수색대 장병들이다.

[포커스]“다 자식 같은 아이들인데…”

“군복을 입고 그런 얘기를 할 순 없죠. 제대가 1년쯤 남았는데 그때 뵙도록 합시다.”

그들은 씩 웃으며 자리를 피했다. 몇 가지 필요한 물건을 사고 저녁 식사를 한 후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그들은 귀대할 것이다. 갑자기 역사 앞 공중전화 부스가 군인들로 가득 찬다. 이 ‘무한 소통의 시대’에 소통의 수단을 갖지 못한 그들은 누군가와의 소통에 목말라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앞 벤치에 귀대하는 아들과 어머니가 앉아 있다. 수심이 가득한 어머니, 덤덤한 표정의 아들이다. 대대본부에 근무하는 아들은 GP도, GOP 근무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도 어머니는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아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말려도 따라 오시겠다는 겁니다. 구타도 없고 괴롭힘 당하는 일도 없다고 휴가 기간 내내 그렇게 설명해도 믿지 않으십니다. 저는 군대 생활보다 제대 후의 일을 더 걱정하고 있는데….”

평소 시외버스 터미널 옆 비디오 게임방에는 온통 군인들로 북적인다. 특히 일요일 오후 귀대시간 전까지는 빈 자리를 찾을 수 없다. 게임방 건물 3층에 있는 PC방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게임에 몰두하고 누군과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이 온라인 시대, 가상현실 시대, 무한소통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병영의 초소와 막사는 너무도 답답한 공간이다. 그러나 가상현실의 허구성과 무한 소통의 번잡함과 그 번잡함 속에 도사린 고독의 함정을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깨우쳐 줄 것인가.

역에서 20분을 천천히 걸어 태풍부대의 간부와 하사관이 거주하는 초라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다. 아군이 초래한 비상 상태지만 장병들 그 누구도 부대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에 딸린 ‘태풍회관’ 치킨호프 집에서 밤 11시가 넘도록 혼자 마시는 맥주는 씁쓸했다. 맥주집 여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대대장과 말단 하사관들이 함께 어울려 맥주를 마셨어요. 며칠째 그분들 얼굴을 못 봅니다. 연천군 전체가 병을 앓고 있어요. 군인들 사기가 떨어지면 주민들의 어깨에도 힘이 빠집니다.”

한기홍〈자유기고가〉 glutton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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