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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없는 환경운동 ‘靜中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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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교수, ‘시위’보다 ‘대안’ 제시… 시민 참여 전력회사 설립 실천도 앞장

이필렬 한국방송대 교수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성명서를 발표하거나 시위·단식 등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없다. 그를 환경운동가로 기억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정도로 그의 운동은 조용하다.

하지만 환경단체나 관련 업계·기관에서 그는 두려운 존재다.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주장이나 활동은 오히려 더 강력하고 실질적이기 때문이다. 한때 유행한 자동차 카피처럼 그는 ‘소리 없이 강한’ 환경운동가다.

그의 무기는 강연·기고·저술

그의 운동 무기는 시위나 단식이 아니라 강연·기고·저술 등이다.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창비)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찾아서’(궁리출판)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녹색평론) ‘다시 태양의 시대로’(양문) 등이 그가 그동안 내놓은 환경관련 저서다. 이런 저술활동을 통해 그는 화석 에너지를 태양 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유는 40년 안에 고갈될 것이며 천연가스나 원자력 같이 대체 에너지원이라고 믿는 것들도 실상은 50~60년 이내에 사라질 것”이라는 그의 경고는 이미 환경·에너지 분야의 핵심 논제로 부상한 상황이다. 게다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배럴당 60달러에 육박한 국제 유가가 조만간 100달러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이 문제는 일반인에게도 발등의 불로 다가왔다.

[조명]투쟁없는 환경운동 ‘靜中動’

환경·에너지 관련 사회적 논제들은 그의 이런 기고·저술 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 지난 3월 한 일간지에 실린 그의 칼럼 ‘수소 경제는 없다’가 반론·재반론·재재반론으로 이어지며 열띤 논쟁을 일으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2월에는 단식과 농성 같은 극단적인 환경운동 방식을 비판한 ‘위기의 환경운동, 이제 변해야 한다’는 시평을 계간지에 발표, ‘환경귀족’ 논쟁과 더불어 환경운동 내부에 신선한 자극을 주기도 했다.

또 하나 그가 가장 주력하는 소리 없는 운동 방식은 대안을 제시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나 핵 폐기장 건설을 반대만 해서는 정책 담당자나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는 2000년 10월 에너지대안센터를 설립, 화석·원자력 에너지를 햇빛·바람·물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바꾸는 데 온힘을 쏟고 있다. 그가 원자력업계 등에서 두려운 존재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업계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피케팅보다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이런 운동이다.

원자력업계가 두려워하는 이유

에너지대안센터를 중심으로 한 그의 활동은 햇빛발전소 등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을 늘려 장기적으로 보아 50~60년 후에는 화력·원자력발전소가 이 땅에서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것. 석유 등 화석연료의 고갈로 인한 에너지대란, 화석·원자력 에너지가 자져오는 지구환경 변화와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이 교수는 지난 5년 동안의 노력에 대해 두 가지 의미 있는 결실을 거뒀다. 그 하나는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부암동 에너지대안센터 내의 시민햇빛발전소 1호에서 생산한 전기를 한국전력에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난 6월 10일 유한회사 시민발전(대표 박승옥)을 출범시킨 것이다.

시민햇빛발전소의 전력 판매가 성사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2년 3월 ‘대체에너지개발및이용·보급촉진법’이 개정되면서 ‘햇빛전기’를 판매할 길이 열렸지만 이를 가능케 할 시행령이나 세부 지침이 마련되기까지는 이 교수를 비롯한 관계자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정책토론회를 열어 전력 판매를 가로막는 갖가지 불합리한 제도를 고발하는 한편 산업자원부 장관을 직접 찾아가 제도 개선안을 제안, 구두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모든 지붕에 햇빛발전소를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했다. 그동안 에너지대안센터는 센터내에 시민햇빛발전소 1호를 비롯해 경기도 안성 농가에 2호, 파주 (주)창비 사옥에 3호를 건설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각계각층의 출자를 받아 국내 최초의 시민 전력회사인 시민발전을 창립하기에 이르렀다. 시민발전에는 중학생부터 주부·변호사·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37명이 1억5000만원을 출자했다. 이 교수는 시민발전의 감사를 맡고 있다.

환경운동을 시작한 이래 시위·농성·단식을 시도한 적이 한번도 없는 이 교수지만 전력은 화려하다. 그는 1978년 긴급조치 9호 시절 최초의 도심 가두시위였던 6·26광화문연합시위 기획자 중 한 사람이었다. 서울대 화학과 4학년이던 그는 도피중에도 활동을 계속하다 졸업을 앞둔 11월 다시 학내 시위를 주동하고 구속됐다. 1980년 복학해서도 5·17계엄확대조치 때 검거됐으나 경찰서에서 탈출하는 등 많은 무용담을 남기기도 했다.

1983년 뒤늦게 독일 유학길에 오른 그는 베를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0년 귀국했다. 대학 시절 폭압적 정치체제에 맞서 몸으로 항거했던 그는 세상이 바뀐 뒤에는 환경문제로 눈을 돌렸다. 현대 사회의 중요한 물적 기반인 에너지가 고갈되는데다 환경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그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대안적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동시에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소리 없는’ 운동, 즉 대안운동이다.

그가 찾는 대안이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경제성이 없고 생산량에 한계가 있으며 국민적 인식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그가 ‘대안운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전 없는 세상이 아니라 전국의 건물 지붕에 햇빛발전소를 설치하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바다. 그래서 그의 운동은 소리 없이 강하다.

“지금 같은 에너지 소비는 ‘미친 짓’”

[조명]투쟁없는 환경운동 ‘靜中動’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40~50년 보급되면 원자력·화력발전의 상당 부분을 없앨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정책 담당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독일 등 유럽에서는 이미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를테면 2050년까지 전기의 6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공급한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을 정도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은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 소비는 ‘미친 짓’이다.”

햇빛발전의 경우 전지판에 중금속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카드뮴이 들어가는 전지판은 전체의 2~3%에 불과하다. 에너지대안센터나 시민발전이 취급하는 햇빛발전기는 규소로 만든 것이다.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지판은 25~30년을 쓸 수 있다. 만드는데 들어가는 에너지의 7~8배를 빼낼 수 있다.”

풍력발전도 발전기 아래 곤충이 못 살고 철새의 이동을 방해하는 등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런 점을 감안하고 세우기 때문에 밑에 곤충이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새는 높은 건물에 부딪힌다. 따라서 당연히 풍력발전기에도 부딪힌다. 하지만 연구 결과 풍력발전기에 부딪히는 빈도는 고층건물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층건물과 달리 풍력발전기는 날개가 돌아가기 때문에 새가 먼저 알아차린다. 다만 철새의 이동경로에는 대규모로 세우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상업용 햇빛발전이 가능해져 업체들이 뛰어들어 대규모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또한 환경파괴를 유발하지 않겠는가.

“한전이 비싸게 사주니까 돈을 들여 설치해 놓으면 약간의 수익이 남는다. 그래서 업자들이 1000~2000평에서 10만평에 이르기까지 크게 펼치려 하고 있다. 지금 나와 있는 계획만도 여의도 면적을 뒤덮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우리는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되 시민참여형, 환경친화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대규모로 땅을 뒤덮어 버리면 그 자체가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고 시민 참여의 여지도 없어진다.”

대안에너지라면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햇빛발전에 주력하는 까닭은?

“재생가능에너지라면 일반적으로 햇빛, 바람, 물, 바이오매스, 지열을 꼽는다. 정부에서는 신(新)재생가능에너지라고 해서 수소도 포함시키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활용해야 하지만 일차적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햇빛부터 하자는 것이다.”

지율 스님의 단식이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 적 있는데.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은 아니다. 환경운동단체가 원칙을 지켜야 하고, 극단적인 방식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 단식과 같은 극한투쟁은 국민이 쉽게 납득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원전이나 핵 폐기장 반대 시위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라는 뜻인가.

“주민들 차원에서 반대하는 것은 옳다고 본다. 그래야 대안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환경운동단체가 앞장서는 것은 이와 별개의 문제다.”

더 이상 원전 건설을 하지 않는다면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당장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현재 20기가 가동되고, 앞으로 6~7기의 건설 계획이 세워져 있다. 우리 얘기는 이미 계획된 것 외에 더 이상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이런 구도라면 2015년까지 원전이 건설된다. 원전 수명은 길게는 45년까지로 잡을 수 있으니까, 추가 건설이 없다면 2060이 되면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그 사이에 노력해서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자는 게 우리 주장이다.”


우리집 계량기를 거꾸로 돌리자

[조명]투쟁없는 환경운동 ‘靜中動’

전력 판매의 최소단위는 3KW이다. 이 정도 발전을 하려면 10평 정도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발전사업자 허가에서 햇빛 발전기 설치, 한전과 계약 등을 대행해주는 시민발전에 맡긴다면 2200만~23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이 가운데 30%를 정부가 지원해주니까 실제 비용은 어림잡아 1500만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한전이 사주는 햇빛발전의 기준가격은 1KW당 716.4원이다(일반 전력의 시장가격은 1KW당 100원 가량). 이 가격으로 15년간 사주는 것이다. 1500만 원을 들여 지붕에 3KW급 햇빛발전기를 설치하면 연간 230만원 정도를 한전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5%의 평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이필렬 교수의 계산이다.

햇빛발전기의 수명은 25~30년이다. 한전이 정책적으로 전기를 사주는 15년 이후에도 전기는 계속 생산되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공짜로 전기를 쓸 수 있다.

지붕의 햇빛발전기에서 생산된 전기는 우선적으로 해당 가정에 들어간다. 따라서 햇삧이 있는 낮에는 계량기가 거꾸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신동호 편집위원 hu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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