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힘 있는 대기업이 먼저 양보해야”

정운찬 전 총리,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공동체 정신 강조

재벌과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할까. 정운찬 전 총리는 동반성장이라는 화두를 들고 ‘사회적 대타협’의 한 축인 재벌과 의견이 충돌하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자신의 소신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실현하기 위해 힘썼다. 하지만 대기업과 일부 관료들의 미지근한 반응을 뒤로 한 채 야인으로 돌아와 동반성장연구소를 개설, 동반성장의 꿈을 이어나가고 있다. 동반성장의 전도사인 정 전 총리는 5월 26일 동반성장연구소에서 한 인터뷰에서 사회적 대타협에 대해 “강하고 힘 있는 대기업 쪽이 먼저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20대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보나.
“국민이 무섭다. 언제든지 마음이 변할 수 있다. 새누리당 참패가 총선 결과이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승리한 게 아니다.”

사회적 대타협의 하나가 될 수도 있는 동반성장이 20대 국회에서 많이 다뤄질 것으로 기대하나.
“비관하지 않는다. 새누리당에는 동반성장 DNA가 별로 없다. 두 야당이 의석수를 많이 확보했기 때문에 앞으로 동반성장에 대한 논의를 많이 할 것으로 기대한다.”

사회적 대타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같은 배를 탔다고 생각해야 한다. 독일·일본·대만은 이런 기업생태계를 갖고 있다. 지금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샌더스 후보나 클린턴 후보가 내세우는 것이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다. 우리는 아직 인식을 못하고 있다. 대기업에서는 사회적 대타협은 장기적으로 좋은데 단기적으로는 손실이라고 본다. 대기업에서 단기적인 측면이 아니라 장기적인 측면을 보고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한다. 뭐든지 큰 쪽이, 그리고 강한 쪽이 양보해야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진다. 경제민주화나 공정성장은 경제적 문제에서 대타협의 모습이다. 동반성장은 대표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타협으로 나타나지만 공정성장·소득주도 성장·경제민주화보다 더 포괄적이다. 도농 간, 빈부 간, 남녀 간, 남북 간 동반성장, 그리고 국가간 동반성장 등을 의미한다.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비경제적인 것까지 포함하는 굉장히 넓은 개념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대타협도 동반성장처럼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의 비근한 예가 노동 4법이다. 이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노사문제가 일반론적으로 사회적 대타협으로 여겨진다. 노사 대타협에서 어디가 강하냐. 사가 강하다. 사가 양보하면 좋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크다.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60%도 안 된다. 같은 일을 하면서 한 사람은 정규직이고 다른 사람은 비정규직이다. 불공평하다. 최저임금이 너무 낮다. 대기업이 먼저 양보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양보해야 한다. 이렇게 안 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탐욕이다. 구조조정을 하려고 대타협을 이야기한다면 ‘거꾸로 대타협’이다.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대타협이 동반성장이고 노사 간의 동반성장은 노동시장에서의 대타협이다. 노사 간의 타협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가 타협해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동체 정신이 필요하다. 과거에 비해 공동체 정신이 많이 줄어들었다. 각자가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의 사회 분위기다. 노력해서 고치는 수밖에 없다.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자본가가 너무 많은 이익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신뢰도 늘리고 공동체 정신을 키우기 위해서는 강하고 힘센 사람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동반성장에 대해 자꾸 오해를 하면 안 된다.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어서 다같이 잘 사는 사회가 목표다. 더불어 성장하자고 하면 좋아하나 함께 나누자고 하면 부르르 떤다. 성장이 정지된 상태에서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의 파이를 크게 하되 분배룰을 다르게 하자는 것이다. 성장 증가분에서 못 사는 사람이 더 잘 살게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부자에게도 이익이고 가난한 사람도 이익을 얻게 된다.”

동반성장도 사회적 대타협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하기 위해서 초과이익공유제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정부에서 중소기업 제품 구매 등을 동반성장위원회 시절 내놓았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반대에 부딪혀 지지부진하다. 어떻게든 사회적 대타협과 연결하려고 노력했는데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설정한 목표를 초과하는 이익이 발생했을 때 초과이익의 일부를 협력 중소기업에 나눠주는 제도다. 10조원 이익을 목표로 했는데 17조원의 이익이 나왔다면 7조원 이익의 일부를 협력 중소기업에 나눠주자는 것이다. 협력 중소기업은 이 돈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데 쓴다. 대기업은 협력 중소기업이 좋아지면 자신들도 좋아진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대기업이 반발했다. 부분적으로 나의 홍보가 부족하기도 했다. 재벌이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재벌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재벌이 준비가 됐을 때 그것이 사회적 대타협의 시초다. 여대야소일 때는 재벌은 정치적 힘이 있어 폼은 잡고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 여소야대일 때는 실천적으로 해야 한다. 안될 때는 억지로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마지막 카드다.”

사회적 대타협의 하나로 동반성장을 꼭 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이런 거 하려고 하느냐고?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대기업에는 첨단기술이 없어 투자가 안 된다. 돈은 갖고 있지만 투자 대상이 없다. 중소기업도 투자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은 투자할 데는 많으나 돈이 없다. 대기업에 흘러갈 돈이 부드럽게, 그리고 합법적으로 중소기업으로 흘러들어가면 투자가 이뤄진다. 생산도 늘고 고용도 늘고 소비도 늘고 성장도 된다. 그 연결고리의 가운데에 중소기업이 있다. 중소기업이 주역이다. 한편으로 성장이 이뤄지고 다른 한편으로 양극화도 완화된다. 낙수효과가 아니라 분수효과다. 낙수는 위에서 잘 되면 밑에도 효과가 있는 것이지만 분수는 밑에서 위로 끌어올린다.”

내년 대선에서도 경제적 이슈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가 상반되는 것으로 비쳐지는데, 어떤 것이 시대정신이 될 것으로 보는가.
“저성장과 양극화는 상반되지 않는다. 분배 없는 성장은 없다. 성장 없는 분배도 없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성장과 분배는 ‘or 관계’였다. 발전론자들의 이야기다. 지금은 학계의 조류가 많이 바뀌었다. 장기적으로 소득이 평등한 나라가 성장을 잘해 왔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으로 흘러갈 돈이 중소기업으로 흘러가면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이 동반성장이다. 저성장 탈피와 양극화 극복이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동반성장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대선과정에 참여할 생각이 있나.
“동반성장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다.”

요즘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정말로 바쁘다. 동반성장 월례 포럼을 하고 전국으로 돌아다니며 특강을 한다.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을 위한 것이다. 또 하나의 일은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의 추모활동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의 제34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의 독립운동에 많은 기여를 했다. 개인적으로는 학창시절에 나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준 분이다. 또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다. 그 분에게 대학에 가기 전에 어떤 전공을 해야 할지 물었다. 빈부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가르쳐주는 학과로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경제학과로 갔다. 동반성장은 그 분이 내게 남겨주신 평생의 과업이다.”

<글/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