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우리 생각을 모으면 세상이 바뀐다”

주제별 집담회 정책 아이디어 만발… ‘대통령채용면접’ 소통 기회 넓혀

2030 주제별 집담회

2007 대통령 공개채용 프로젝트에 참여한 스태프 겸 뉴스메이커 명예기자들.

“난 그런 주제 잘 몰라. 잘못 말했다가 사람들 앞에서 괜히 망신당하면 어떡해.” “우리가 떠들어봤자 뭐가 바뀔 것 같아?”
캠페인의 첫 순서인 주제별 집담회를 진행하면서 KYC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고민 많은 2030 세대’의 제안을 직접 들어보고, 이를 대선 후보들의 정책으로 반영하게 하자는 취지는 쉽게 먹히지 않았다. 젊은 유권자 다수가 부담스러워하거나 무관심했다.

그러나 막상 자리에 함께 한 2030들에게서는 ‘희망’이 보였다. 그들에겐 사회 속에서 부대끼며 건진 아이디어가 있었다. “부모에게서 막 독립한 사회초년생들을 위한 국민임대오피스텔을 짓자” “아이를 학교, 병원에 데리고 갔다 온 후에도 당당히 출근할 수 있는 반차제도(월차를 오전 오후로 나눠 쓰는 제도)를 만들자” “정부가 20대 맞춤형 취업 멘토링 서비스를 만들면 좋겠다” 등이 그것이다.

그들의 이야기 속엔 생생한 현실도 있었다. 학교 교사에게 자녀의 영어교육방법을 묻자 “영어 사교육을 왜 안 시키느냐”는 핀잔을 들은 한 주부의 이야기가 그런 예다. “고향조차 지방대생을 홀대해 더 큰 도시로 이사 왔다, 고향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돌아가기 싫다”는 지방대생의 이야기도 절절하게 다가왔다. 이들의 사연 속에는 전문가가 내놓는 그 어떤 통계수치도 없었지만,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집담회에 참석한 이들에게는 정치에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주택’ 집담회에 참석한 양대영씨 (27·회사원)는 “내 현실에 기반한 정책아이디어에 귀기울여줘 좋았다”며 “대학 졸업 후엔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2030 정책 관련 토론회에 자주 참석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학등록금’ 집담회에 참석한 이승빈씨(22)는 “(집담회 때) 도입 필요성을 얘기했던 ‘등록금 후불제’를 재정경제부에서 검토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뻤다”며 “20대들의 생각을 모으는 일을 계속하면 세상이 조금씩 변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주제별 집담회를 매주 읽고 정책 답변을 보내줘야 했던 대선(당시 경선) 후보 진영의 반응도 컸다. 상당수가 집담회에 대해 “유권자들의 현실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소감을 정책 답변에 덧붙였다. 또 자신들의 정책 답변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묻는 후보 진영도 있었다.

그러나 후보들의 정책 답변에 대한 집담회 참석자들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집담회의 한 참석자는 “큰 기대는 안 했지만 너무 추상적인 답변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그는 “편하게 풀어놓은 내 이야기를 대선 후보 진영에서 읽고 답변을 보내줬다는 그 자체는 고무적이었다”고 말했다.

뉴스메이커에서도 매주 각 후보 진영의 답변이 도착할 때면 고민에 빠졌다. 후보별로 정책공약의 구체성에서 차이가 커 고르게 정리하기가 마땅찮았기 때문이다. 구호에 그치는 정책공약의 경우 ‘알맹이’를 뽑아내기가 어려웠다. 반면 여러 가지 방안을 동시에 제시한 공약의 경우, 무엇을 중심에 두고 있는지 모호했다. 성실성 면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첫 집담회부터 정책 답변을 보내기로 한 세 후보 중 이명박 후보가 6번, 정동영 후보가 8번, 권영길 후보가 8번 답변을 보내왔다.

‘대통령 채용 면접’

“후보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면접관이 된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잘 보고 누구 찍을지 좀 알려줘’라고 하더군요.”(면접관 류정령·31)

2007 대통령 공개채용 프로젝트의 면접관들.

대선후보이색토론회 ‘대통령 채용 면접’의 경우 집담회처럼 섭외가 어렵지는 않았다. “시간도 없고 정책은 잘 모르지만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색토론회를 기획한 권수현씨(25)는 “젊은 유권자들도 여건만 된다면 대통령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면접관으로는 취업준비생,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고 있는 여성, 결혼했지만 집이 없어 부모님과 함께 사는 젊은 가장 등을 선정했다. 2030세대의 고민을 전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면접관들은 토론회 한 달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정책공부를 했다. 교재는 각 후보 측이 보내온 정책자료집. 그런데 그 ‘교재’가 문제였다. 이색토론회의 연출을 맡았던 윤도형씨는 “후보들의 2030 관련 정책들은 ‘경제성장으로 300만 개 일자리 창출’ 등 지나치게 단순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내용이 어려웠다기보다 불친절했다. 윤씨는 후보들이 2030을 위한 정책에 얼마나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캠페인의 최대 돌발변수는 정동영 민주당 후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였다. 면접날을 며칠 앞두고 약속을 깨, 면접장인 비보이 전용극장 대관을 취소해야 했다. 나머지 후보의 면접까지 모두 취소될 위기였다. 비보이 전용극장이 뉴스메이커와 KYC를 믿고 극장을 계속 빌려주지 않았다면 다른 면접도 진행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두 후보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감은 컸다. 권수현씨는 “정 후보의 경우, KYC의 다른 회원에게서 정 후보가 그날 다른 일정을 잡아놨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며 “정 후보 측에 몇 번이나 (면접 참여) 사실을 확인한 데다가 그쪽에서도 (대통령 채용 면접은) 특별히 신경 써서 잡은 일정이라고 말한 터여서 적잖이 당황했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윤도형씨(29)는 “이명박 후보 측은 우리와 마지막으로 상의한 지 사흘 뒤에 비슷한 테마의 행사 ‘블루 페스티벌’을 직접 기획해 진행했다”며 “우리가 제안했던 장소에서, 마찬가지로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한 행사라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윤씨는 또 “이 후보 측은 대통령 채용 면접의 취지에는 호의적이면서도 ‘돌발질문’ 코너를 우려해 질문 리스트를 미리 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며 “외부 주최의 행사를 부담스럽게 여긴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이명박·정동영·권영길 후보 등 면접에 나오지 못한 후보들은 따로 서면면접을 진행해야 했다.

명예기자단

뉴스메이커와 KYC는 7월부터 약 2개월간 보육·주택·국민연금·비정규직·사교육·대학등록금·지역균형 발전·청년실업을 주제로 2030 집담회를 진행했다.

“언론은 늘 대선 후보가 한 말을 그럴듯하게 정리해서 전해주잖아요. 저희는 기성 언론을 거치지 않은 대통령 후보의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명예기자 이유진)

‘2030 유권자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캠페인을 위해 모인 뉴스메이커 명예기자단 12명은 지난 4개월간 캠페인에 큰 활력소가 됐다. 명예기자들은 행사 스태프이자 기자였다. ‘대통령 채용 면접’의 세부 콘텐츠에 관한 아이디어는 이들에게서 나왔다. 토론회 취재를 진행해 자신의 블로그에 기사를 만들어 올리는 것도 이들의 일이었다.

2개월간의 여정을 거치는 동안 명예기자들은 나름의 성장을 했다. 이유진씨(26)는 “그간 언론이 보여주는 후보들의 이미지를 보며 투표를 했다”며 “이제는 정책평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문이나 뉴스를 볼 때 청년실업, 사교육 등 관심 있는 정책공약을 눈여겨보게 됐다”고 말했다.

공약을 평가하는 나름의 잣대도 생겼다. 고은미씨(24)는 “일부 대선 후보들이나 기성언론들은 경제성장률 등 통계수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것보다는 ‘매력적인 중소기업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유도하겠다’ ‘그러려면 어떤 지원책이 필요하다’ 등 구체적인 서술이 젊은 세대에게 더 와닿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명예기자들이 꼽는 가장 큰 성과는 2030 현실에 눈을 떴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취업난과 비정규직 등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이유가, 우리가 못났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토익성적이 낮아서, 학점이 낮아서, 영어를 못해서…. 그런데 그게 사회구조에 따른 문제임을 알았다. 설사 내가 좋은 곳에 취업해 나은 삶을 산다고 해도, 그저 ‘소수’가 되는 일일 뿐 우리 세대 전반의 문제점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앞으로는 우리 세대의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이 누군지 눈여겨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시각을 주위 친구들에게 전파하는 것도 내 일이라고 느낀다.” 명예기자로 참여한 이유진씨(26)의 말이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대통령 공개채용 한마당’을 마치고

대선 후보 토론회는 지루하다. 어렵다. 재미없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2030세대가 가진 생각이다. 토론회 기획을 맡은 나부터 그랬다.
그런데 왜 토론회는 딱딱한 이야기만 해야 하는 걸까. 좀 더 쉽고 재미있는 자리를 만들 수는 없을까? 갑자기 ‘공개 채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이곳저곳 기업을 돌아다니며 면접을 보는 취업 준비생 신세, 쉽게 말해 ‘백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 자리를 두고 각축을 벌이는 구도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취업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번엔 내가 지원자가 아닌 면접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좌지우지 한다면? 내 얼굴엔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토크쇼도 하면 어떨까.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성격, 가치관, 도덕성 등의 인간적 면모를 알아보는 거다. 그렇게 나는 1부 ‘대통령 후보자 면접’ 2부 ‘놀러와, 2030 세상으로’의 구성을 짜게 됐다.
물론 걱정도 많았다. 참신하지만 자칫 가벼워보인다는 주위의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2030 유권자와 대선 후보자의 ‘소통’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물론 약속을 깬 후보자와는 만나지는 못했지만.
행사가 끝난 후 2030 면접관, 참가자, 그리고 2030 명예기자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참가하지 못해 속상했다” “좀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 못해 후회스럽다” “면접약속을 깬 후보자와는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절대로 2030 세대가 선거와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것을. 정치를 편안하고 쉽게 접할 기회가 없어서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다. 또 자신의 삶과 정치가 연관되어 있음을 충분히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앞으로 정치인과 2030세대가 만나 소통하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권수현 KYC 자원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