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들의 상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가 ‘왕따 문제’다. 별다른 이유 없이 한 사람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형태의 폭력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와 다른 누군가의 이질성에 대한 배타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배척당한 아이는 자신의 고유함이기도 한, 이질성 때문에 놀림을 받아 마음에 상처를 입고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한다. 또 친구들 사이에서 완전히 고립되기도 한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모두가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것, 모두가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은 뭔가 불편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 거부당하기 쉽다. 이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들려오는 말은 그래서 잔인하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너는 왜 우리와 어울리지 못해?”
친구란 말처럼 다정하고 듬직한 말이 있을까.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대부분의 사람은 친구를 원하고, 친구가 있는 것을 축복이라고 여긴다. 어떤 면에서 그런 걸까? 우정이란 어떻게 만들고 지켜나가야 하는 걸까?
한 사람의 성장에는 관계의 확장이 포함되어 있다. 혈연인 가족은 한번 정해지면 끝이고, 사랑의 파트너는 사회적인 제약이 아니더라도 마음의 움직임이 쉽게 변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인간관계를 넓히는 건 우정의 차원, 즉 친구나 동료를 통해서 이뤄진다.
너는 왜 우리와 어울리지 못해?
형제자매는 어른인 부모와의 대비 속에서 가장 먼저 공감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를테면 친구의 원형과도 같다. 어린 시절의 친구는 이런 관계의 연장선에 있다. 내가 아니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도 아닌 나의 닮은꼴. 아이는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없는 대신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을 그와 유사하게 만들어나간다. 아이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확인하는 데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주요하게 작용한다.
친구의 첫 번째 의미가 여기에 있다. 나와 처지가 같은 닮은꼴과의 유대를 통한 자아의 형성과 강화다. 그래서 아이들은 소위 성향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모이고, 같은 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놀게 된다. 그리고 ‘나’와 ‘너’로 만나 금방 우리가 된다. 여기서 이 관계의 또 다른 측면이 드러난다. 나와 전혀 다른 아이를 만나도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 둘 중 하나로 정해진다. 누가 누구를 따라 하면서 같아지거나 누가 누구를 따돌려 버리거나다. 한편으로는 닮은꼴을 모방하는 것이 나를 만드는 가장 쉽고 원초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라서 그렇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어린 나이에는 이질적인 존재를 대면해 일정한 태도를 정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선 이질적인 부딪힘으로 일어나는 충격과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어른을 호출해 도움을 청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앞서 말한 친구 사이의 왕따는 바로 이런 맥락 안에 있다.
처지와 조건이 같은 상황에서 맺어지는 친구관계가 어른들 사이에도 당연히 있다. 서로 상황이 같거나, 취미나 가치관이 같거나, 아니면 식성이라도 같아야 쉽게 공감하고 위로하고 나눌 수 있다. 공통된 부분이 있어서 그것을 중심으로 만나거나 혹은 다르게 만나더라도 서로의 영향으로 동질화된다. 너와 내가 우리로 묶일 수 있는 무언가 같은 것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이런 관계는 꼭 필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안정된 힘을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관계를 확장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울타리 안에 갇혀 같은 것만을 반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서로 같은 부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통해 만난다는 것은 나와 다른 존재로서의 타인이 아니라 타인 안에 있는 나를 만나는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을 만나도, 나만 만나는 삶이 되어버린다.
또 다른 방식의 친구 만들기도 있다. 진짜 타인을 친구로 삼는 것이다. 관심사가 다르고, 공통된 부분이 없는데 친구가 되는 것이다. 너와 나를 우리로 덮어쓰는 게 아니라 너와 나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 직업·성격·취미·종교·사는 동네·입맛 등이 다 다른데 서로에게 동화되지 않아도 편안하거나 평화롭지 않은 순간들을 겪게 된다. 서로의 다름을 포기하지 않고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이질적인 차이에서 오는 이런 긴장을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견뎌내게 되면 단단한 신뢰로 묶인 친구 사이가 될 수 있다. 보통 오래된 친구는 이런 형태가 많다. 상대의 고유한 부분을 그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으로 인정한 사이인 셈이다. 하지만 그런 깊은 우정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존재를 버텨낸다는 게 맘먹은 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면 또 어떤 형태의 친구관계가 가능할까? 바로 얕은 관계다.
얕은 관계도 정리하지 않는 것이 좋아
얕은 관계는 관계가 깊지 않은 초기단계에 머무는 형태를 띤다. 계속 만나거나 가까운 사이가 되지 않고, 서로 곁에 머물지 않는 관계. 요점은 그런 얕은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 것이 내가 관계를 통해 삶을 확장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얕은 관계가 꼭 깊은 관계로 갈 필요가 없다. 아는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관계도 중요하지만 모르는 사람, 표면적으로만 아는 사람, 잠깐 만나고 말 사람,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도 사실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 그것이 나와 다른 새로운 사람과의 진짜 만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공동체가 아닌 사람들, 공통 관심사가 없는 사람들, 이익이 겹치지 않는 사람들이 잠깐씩 만날 기회가 많아지면, 서로의 다름과 차이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거나 긴장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른들만의 성숙한 우정의 방식이 될 수 있다. 네 안에 있는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너를 만나는 순간을 견디는 것이다. 하나의 관계에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가기를 계속하면서 타인들을 만나는 것. 그것은 세상을 이루는 나와 다른 요소들을 너무 불편해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길을 통해 나를 확장해줄 수 있다.
사실 우리 각자가 꼭 그렇게 자신의 삶을 확장할 필요가 없어 보이긴 하다.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알아서 발전해주기 때문이다. 기술과 상품이 발달하면서 세상은 날로 확장되고 있다. 현대인이라면 세상에 잘 적응해서 맞춰나가는 일이 더 시급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나를 세상에 맞추는 일에 애쓰다 보면, 나는 사라지고 세상만 남게 되진 않을까.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일, 그것은 나의 확장을 멈추지 말아야 가능해지고, 역설적이게도 내가 아닌, 내가 모르는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낼 수 있다.
<이수련 정신분석학 박사 (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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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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