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25)빨라진 세상,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우리는 초스피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술 발달 덕분에 거의 모든 분야의 것들이 빨라졌다. 무엇이든 원하기만 하면 우리 앞에 바로 나타나는 마술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물건을 주문하면 로켓처럼 날아오고, 누군가를 부르면 바로 접속할 수 있다. 보고 싶은 광경, 듣고 싶은 소리,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도 몇 초 안에 찾아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게 빨리 이루어지는 시대.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것이 단순히 속도의 문제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 바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어떤 ‘과정’들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과정의 수고를 버리지 않는 삶

온라인 로켓배송으로 상점에 갈 필요가 없게 되면서 거리를 걷거나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상점에 있으면서 거쳐야 하는 모든 수고를 생략할 수 있게 됐다. 온라인 리뷰가 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의견을 물을 필요도 없다. 침대에 누워서 손가락만 움직이면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볼거리들이 가득하다. 기다릴 필요도, 이동할 이유도 없다. 적은 노력으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효율적이고, 최근 유행하는 말처럼 가성비가 좋다. 예전부터 미덕이라고 여겨지던 절약의 개념에도 부합한다.

대신 우리는 무엇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참여할 수도, 무언가를 우연히 찾아낼 수도,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수고하면서 무언가를 깨닫거나 배울 수도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 각자의 디테일한 삶의 내용을 채우기 어렵게 되었다. 모든 것이 미리 만들어져서 진열되니 그것을 재빨리 선택하여 취하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전해 듣고 의미를 가늠하거나 상상하지 않아도 정확한 정보가 전달된다. 최종적인 의미나 이미지를 내가 결정해야 하는 글 대신 이미 의미가 결정된 영상이 그것도 친절한 자막과 함께 제공된다. 우리는 덜 오해하고, 덜 실수하고,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무엇을 하더라도 이전보다 더 빨리 목표에 도달해 더 좋은 성과를 내게 된 것도 같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에롤 모리스는 저서 <코끼리가 숨어 있다>에서 이와 정반대되는 행보를 보여준다. 사진작가 로저 펜톤의 사진 두 장 ‘죽음의 그림자 계곡’이 있다. 크림반도 전쟁터를 찍은 사진이다. 저명한 저자인 수전 손택이 그 사진에 덧붙인 설명에 모리스는 의문을 품는다. 말 그대로 엄청난 수고를 들이고 품을 팔아 의문을 풀고자 했다. 손택은 펜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돌멩이를 옮겨 연출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 그 주장은 정확한 증거를 토대로 검증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손택은 주어진 대로, 혹은 자신이 믿는 대로 본 것이다. 모리스는 손택의 가정을 뒤집을 만한 증거가 있는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장소를 찾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며 결국 증거를 잡아내 증명하기에 이른다. 손택의 가정과 같이 펜톤은 그 사진을 찍기 위해 돌멩이를 옮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보이는 손택과 모리스 두 사람은 과정의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경험과 발견을 얻는다. 손택은 ‘연출’에 대한 ‘도덕적인 훈계’를 강조하는 반면, 모리스는 펜톤의 사진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이 ‘전쟁의 대학살에 대한 훈계’임을 깨닫는다. 펜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겪었던 길고 고된 과정을 따라가며 맞닥뜨린 과정의 진실인 것이다.

프랑스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1960년대 초반 일본의 사원을 여행하며 거대한 부처상과 그곳에 이르는 길에 놓인 1000여개의 보살상을 보았다. “분명히 말해 그것은 부처 신은 아닙니다. 그것은 보살이며, 말하자면, 거의 부처 같은 것이죠. (중략) 그는 많은 노고를 들여야 했던 배가된 형태로 그곳에 존재합니다. 그 불상들은 부처가 여러분 앞에 있기 위해 들여야 했던 노고의 이미지일 뿐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좀 전에 언급했던 그 장애물 중 하나 때문에, 인류의 안녕에 아직 초연해지지 못한 부처입니다.”

부처가 되는 길은 갖은 노고를 겪으며 부처가 되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과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거대한, 완성된 부처상에 이르는 길 위의 수많은 보살상은 부처가 되기까지 한 존재가 겪어내야 했던 수많은 모습을 현시하는 것이다. 부처를 공경하는 불자라면 부처가 되기 위해 겪어낸 그 과정을 보여주는 보살들을 공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평범한 삶에서 특별함을 밝혀내다

사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고 평범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딱 하나뿐인, 그리고 단 한 번뿐인 나의 삶이 내게는 한없이 특별하다. 폴란드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더 이상 신비롭고 별난 것이 없는 현대 사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고 한다. “가장 평범한 삶으로부터 건져낸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놓칠 뻔한 특별함을 눈앞에 드러내어 밝히려 한다. 익숙해 보이는 것에 진정으로 익숙해지고 싶다면 먼저 그 익숙함을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 평범한 삶에서 특별함을 밝히는 것,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 진정으로 그것에 익숙해지는 삶을 이루는 것,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결국 삶의 내용을 덜어내거나 버리지 말고 채워 넣을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직접 겪는 과정은 처음엔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연히 발견한 것들을 우리 것으로 삼으면서 우리는 진정으로 삶에 익숙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삶의 목표에 대해 말한다. 마치 그것을 이루는 것이 진짜 삶의 목표라는 듯이. 하지만 삶의 진정한 목표라고 한다면, 그것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과정을 만들고, 경험하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목표에 빨리 도달하면 그만큼 잃는 것은 내 삶의 과정이다. 내 삶에 볼륨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외면만 남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공경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부모로부터 독립된 한 사람의 개인이 되기를 고대했다. 독립된 개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내 삶의 과정을 만들고, 새로운 의미로 채워가는 것을 말한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시간이 반복되는 세상이라도 내가 살아가는 과정이 있다면 그것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삶의 물음에 스스로 답하는 독립된 개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네로, 곧 다시 여름이 온다. 새롭고 한없이 넓은 여름이 온다. 그리고 나는 역시 걸어갈 것이다. 새 여름을 가을을 겨울을 맞이하고 봄을 맞이하고 더 새로운 여름을 기대하면서. 모든 새것을 알기 위해, 그리고 내 모든 질문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다니카와 슌타로 <네로- 사랑받은 작은 개에게> 중에서)

<이수련 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