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23)사람 사이, 경계는 지키되 벽은 쌓지 말자

지난달 며칠 동안 상담실 밖에서 유별난 새소리가 들려왔다. 귀엽고 작은 소리가 아니라 꽥꽥거리는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 속으로 불평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음이 참 간사하게도 새가 어디로 갔을까, 어떤 종류의 새였을까 궁금해졌다. 며칠 전 한 기사를 읽고 그때의 새소리가 생각났다. 프랑스 남부에서 소음으로 소송에 휘말렸던 모리스라는 이름의 닭이 병으로 죽었다는 기사였다. 몇 년 전에 새벽마다 울어서 소음 공해를 일으킨다고 새로 이사 온 노부부에게 소송을 당했는데, 그 일이 알려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리스를 응원했다고 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재판은 “수탉으로서 시골에서 울 권리가 있다”는 판결로 모리스가 승리했다. 모리스 측 변호인 변론이 인상적이다. “그는 시골 마을의 자연 속에서 그저 자신답게 행동한 것이다.” 지난달 상담실 주변에서 울어대던 새도 그저 자신답게 행동한 것이었을까. 같은 소송이 걸린다면 시골이 아니라 도시 한복판이라 패소하게 되려나.

프랑스의 재판 결과는 ‘민폐’를 생각해보게 한다. 최근 들어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 ‘민폐가 되고 싶지 않다’이다. 상담을 진행해야 하는 필자에게 새소리는 소음이고, 그렇다면 새가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시에서도 새가 날아다니거나 살 수 있다면, 울음을 우는 것도 새로서는 권리가 될 수 있다. 양쪽의 권익에 충돌이 생기고,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 일이다.

“수탉은 시골에서 울 권리가 있다”

이런 일들은 사람과 새, 사람과 닭 사이보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훨씬 자주 일어난다. 한쪽에는 권리이거나 필요한 일이 또 다른 쪽에는 손해나 번거로운 일이 되는 경우다. 그런 경우를 잘 처리하기 위해 법과 규칙이 있고, 예의범절이 있는 것이며 사회적인 존재로 사람들과 함께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것들을 서로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최근 ‘민폐 끼치지 않기’에는 조금 더 극단적인 면모가 엿보이는 경우들이 있다. 필자의 성인 상담자나 아동 청소년을 동반한 부모 중에도 있었다. 행동이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예의가 바르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단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가 아니라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빚을 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사람들. 그래서 타인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일도 거의 없다. 스스로 원하거나 필요한 일을 중심에 두기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보인다. 행여나 민폐가 될까 늘 조심하고, 혹시라도 그럴 기미가 보이면 차라리 자기가 손해를 입는 선택을 해버린다.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주의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타주의가 자신에게 보람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대신 타인과 접촉을 전적으로 회피하게 만들기도 한다. 타인에게 피해도 안 주고, 신세도 안 져서 빚이 없으니 갚을 것도 없다. 남의 일에 연루되거나 말을 섞어 피곤해질 필요가 없으니 점점 관계를 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조금이라도 불만스럽거나 갈등의 조짐이 보인다면 차단해버린다. 대표적인 예가 경찰 신고와 고소다. 프랑스의 수탉의 예처럼 현대사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사소한 일로도 소송이 넘쳐난다. 사람들이 대화하면서 풀 수 있는 문제까지 전부 법정으로 가버린다. 물론 그런 대화가 다정하거나 유쾌할 리는 없을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무엇이 이런 경향의 원인이 되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과도한 ‘민폐 끼치지 않기’의 태도와 무관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이 그저 남에게 빚지지 않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빚지지 않으려는 태도와 행동은 나의 바람이나 권리를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 ‘민폐 끼치지 않기’가 내게 아무 영향도 안 준 게 아니라 결국 손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더 손해를 입고자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람들과의 접촉이 귀찮고, 피곤하고, 무용하게 느껴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손해에 손해를 더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바르지만 냉정한 사회가 좋을까?

규칙과 예의를 지키면서도 때로는 당당하게 자신의 바람을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하고, 행동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손해 나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있고, 그 타인과의 관계를 피하거나 차단하지 않고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게 된다. 나와 타인의 경계를 지키는 삶, 하지만 그 경계를 지키기 위해 가끔은 불평도 터져 나오고, 갈등도 생기고, 그것을 조정하는 수고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대신 나는 나의 권리를, 타인은 타인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반면 깍듯이 예의를 지키고 갈등도 없어 평화로워 보이지만, 누군가가 혹은 누구도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소통 없이 곧바로 법적인 분쟁으로 향하게 된다면, 사람 사이에 경계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벽을 쌓아버리게 된다. 바르지만 냉정한 사회, 더 나아가 교류하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다.

프랑스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 시>에는 이웃집 남자 베르나르댕이 매일 오후 4시에 주인공 부부의 ‘우리 집’을 찾아온다. 민폐가 아닐 수 없다. 비정상적인 방문으로 괴로워하던 주인공은 급기야 베르나르댕을 살해한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속세를 벗어나 단둘이 ‘우리 집’에 살기를 바라던 부부는 처음부터 한 번도 베르나르댕을 진심으로 반가운 이웃으로 맞아준 적이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

“그가 거실로 들어오자 나는 쥘리에트를 찾으러 갔다. 그녀는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건 그저 예의상의 방문일 뿐이야’.” 예의상의 방문이라고 규정한 첫 만남부터 부부는 베르나르댕과의 만남을 매우 예의 바르지만 냉정하게 치른다. 그들의 ‘우리 집’은 벽이 높은 집이었다. 이후 베르나르댕은 강박적인 방문으로 매우 고집스럽게 권리를 주장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신들의 이웃이다.” 소설 속 주인공 부부가 조금 다르게 응답했다면 어땠을까? 시골 마을에 살았던 수탉 모리스가 ‘자신답게 행동할 권리’로 울었을 때 이웃 노부부가 소송을 걸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교양 있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 피해가 생기지 않게 항상 조심하고 노력하는데, 소송 사건은 갈수록 많아지고, 법이 그렇게 부지런히 사건들을 처리하는데도 세상은 더 불안하고 흉흉해지는 것 같은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만한 일이다. ‘민폐 끼치지 않기’가 과연 최선인지 말이다.

<이수련 정신분석학 박사(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