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24)살면서 믿을 만한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던 22세의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꿈을 이루길 지지해주리라 믿었던 어른들에게서 학대를 당하고, 도움을 요청하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 세상에 좌절하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언제인가? 더 잘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때이다. 사람은 불행만으로는 죽지 않는다. 불행을 이겨내고 싶은 소망이 간절할 때, 너무 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를 때 죽음에 나를 내주게 된다. 지난 6월 말 짧은 생을 마감한 고 최숙현 선수의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의 마음에 흉터처럼 남을 것 같다.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청소년이 좌절하고 죽고 싶은 이유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이 청년이 되는 과정은 설레고 가슴 벅차오르는 일로 가득 차 있다. 엎어져 기다가 일어나 걷게 되고, 옹알거리던 입으로 의미 있는 말을 하게 되고, 혼자서 먼 곳을 다녀오기도 하고, 누군가를 도와주기도 하고, 모르던 사람에게 인정받기도 한다. 괜찮은 생각을 할 줄 알게 되면서 자신이 뭔가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는, 뭔가 쓸모있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확인이 쌓여간다. 그래서 청년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갈망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현대사회의 현실은 그런 성장과 발전에 관대하지 않다. 많은 고난과 역경이 그들을 옥죄어 온다.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청년은 용기를 잃지 않고 절망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적어도 어느 순간까지는. 청년이든, 아니든 그 누구라도 진짜 절망에 빠지는 건 어떤 순간일까? 그건 어려움을 마주한 순간이라기보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자신의 노력에 어떤 응답도 돌아오지 않을 때다.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해결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것일 테다. 부모 품 안의 나약한 아이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 부모를 바라보며 답을 기다린다. 조금 성장해 집 밖으로 나가 곤란에 부딪혔을 땐 뭐라도 해보려다가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부모를 부른다.

학교에서 생기는 일은 교사에게 상의한다. 이제 사회로 나온 청년들은 어려움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이 되어도 사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독립적인 성인의 자격을 잃지 않기 위해 조금 더 끈질기게 참고 견딘다는 것 말고는. 스스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경우라면 당연히 도움을 청해야 한다. 어디에? 성인 삶의 터전이 되는 기관에, 사회에, 법에.

최숙현 선수의 메시지가 우리 사회의 치욕과 흉터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성장해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사회에 안착하기를 바랐던 청년이 마지막에 절망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것이 엄마라는 사실이다. 사회의 선배, 혹은 스승이라는 사람들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한 청년의 삶을 유린할 때도 그 청년은 완전히 절망하지 않았다. 참고 견뎌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그 노력으로 더 이상 버텨지지 않을 때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응답은 없었다. 사회는 안전한 곳이 아니었고, 그렇다면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많은 사람이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며 불안해한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부모는 아이들이 바깥세상에서 안 좋은 경험을 할까 두려움에 떨며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말라고 가르친다. 예전에 어떤 청소년은 세상이 너무 무섭다며 핵전쟁이 나서 다 죽고 자기 가족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전하지 못한 곳이 된 우리 사회

우리 사회는 어쩌다가 이토록 안전하지 못한 곳이 되었을까?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어떤 사람도 어린아이처럼 늘 집 안에만 머무르기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집 안에 있기를 완강히 고집하는 사람조차 그러하다. 집 안에 머무르는 선택은 자신의 기쁨과 행복을 적극적으로 포기하는 결정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인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바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안전해져야 하는 곳은 오히려 집 밖이어야 한다. 집 밖이 안전해야 집 안도 같이 안전해진다. 집 밖이 안전하지 않은데 어떻게 집 안이 안전해질까? 자신의 안전, 가족의 안전, 자녀의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집 밖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항상 그 방향을 향해 가야 한다.

최근에 일어난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집 밖의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더불어 사회적인 존재인 성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아홉 살짜리 초등학생을 차 타고 뒤쫓아가 고의로 추돌한 어느 부모의 교통사고다. 수사도 고의적인 사고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는데, 아니길 바라지만 정말 그런 것이라면 이 부모가 철저하게 착각하고 있는 점이 있다. 그런 행동은 사고를 당한 아이뿐 아니라 자기 아이에게도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그 부모의 아이에게는 집 밖도, 집 안도 안전하지 않은 곳이 되면서 이중적인 불안이 엄습할 수 있다. 아이의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다른 아이를 해치려고 한 부모의 의도와 행동은 결국 자기 아이의 안전을 가장 많이 해치게 될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여전히 사람들을 믿고 산다는 필자의 지인은 이렇게 말한다. 살면서 믿을 만한 사람들을 그만큼 많이 만났기 때문이라면서, 그래도 그런 믿음의 초석이 된 것은 어릴 적 경험이라고. 지인의 어릴 적 경험에는 전혀 모르는 자신을 믿어준 어른들과 전혀 모르는 아이들을 걱정해준 엄마가 있었다. 초등학교 하굣길에 넘어져 울고 있을 때, 반창고를 붙여준 모르는 아저씨, 고등학교 때 모자라는 돈을 내일 가져와도 된다며 선뜻 외상으로 내준 옷가게 주인. 비가 오면 집에 남는 우산을 들고 나가 우산 없는 학생들에게 내어주고, 버스에서 무거운 가방을 멘 학생들을 보면 늘 힘들겠다며 자리를 내어주던 엄마. 지인의 주변 어른들은 사회가 안전하니 밖으로 나와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 사람들이었다. 어디에도 집 밖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던 어른들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아이가 청년이 되어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사회, 청년이 다시 집 안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회, 절망한 청년이 어린아이처럼 부모님을 부르며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집 안의 안전만 신경 쓰게 되면 결국 우리는 어디에 있어도 불안에 삶을 내어주는 처지가 될 뿐이다.

<이수련 정신분석학 박사(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