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8) 어른의 몸은 ‘배운 몸’이어야 한다

올해 봄 학술대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교수가 한국 교사들로부터 “갑자기 화를 내고 폭발하는 아이를 진정시킬 좋은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교수의 대답은 “물을 주세요”였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사실 교수의 답에는 우리의 몸에 대한 특정한 해석의 관점이 담겨 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제대로 듣는 법, 보는 법 배워야

“제가 좀 욱하는 기질이 있어요.” 상담실에서 꽤 많이 듣는 말이다.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서다. 아이 상담을 위해 동반한 부모라면 이렇게 덧붙이기도 한다. “얘도 저를 닮아 자주 욱해요.” 주로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 등을 타격하거나, 심하면 사람을 상대로 폭언이나 폭행을 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몸과 마음이 불안정해져서 몸을 통해 넘치는 흥분을 뿜어내는 것, 가벼운 수준이라면 굳이 상담실이 아니어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예전에 상담했던 성인 한 분이 이런 경우에 속했다. 어떤 일이 생기면 늘 일차적으로는 감정이, 이차적으로는 몸이 과잉된 에너지를 분출한다는 것이다. 말은 대부분 ‘화가 난다’, ‘짜증 난다’로 끝이 나고, 말하면서 점점 격앙되어 목소리가 커진다. 또 인상을 찡그리게 되고, 몸을 떨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먼저 이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의 문제와 관련지을 수 있다.

‘욱하는 기질’이라는 상담자의 말처럼 이는 기질 또는 성격, 인격 등의 차원에 해당하는 문제로 볼 수 있다. 먼저 ‘화가 많다’, ‘몸이 예민하다’, ‘참을성이 부족하다’, ‘제멋대로 하려고 한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 ‘자기 기분만 중히 여긴다’ 등으로 해석하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궁극적으로는 끓어오르는 흥분의 에너지를 참는 방법, 가라앉힐 방법을 찾아야 한다. 수양이나 명상을 통해 인내심을 길러 밖으로 넘쳐 흐르지 않게 잘 진정시키거나, 운동을 비롯한 여러 방식을 이용해 안에서 밖으로 배출시킬 통로를 찾는 식이다. 화를 표현해서 비워내라는 뜻이다. 이런 해결책들도 가시적인 효과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문제는 늘 동일한 과정이 그대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과잉된 감정을 비우기 위해 애쓰는 작업을 계속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해석은 그것이 누군가의 기질이나 성격 때문이 아니라 몸이 겪어야 할 변화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자극의 흥분에 곧바로 반응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몸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다만 성인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성인의 몸은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몸에 대해 놀랄 만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 <몸의 일기>는 몸이 겪어야 하는 변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은 자기 몸에 관해 무엇이건 다 배워야만 한다. 모조리 다. 걷는 법, 코 푸는 법, 씻는 법. 누가 시범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게 될지 모른다…. 들리긴 하지만 제대로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보이긴 하지만 제대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먹을 순 있지만 고기 자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똥을 쌀 줄은 알지만, 변기까지 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배운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우선 자기 몸을 제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페나크의 말대로라면 어른의 몸은 배운 몸이고, 그렇게 되기 위한 방식은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배우려고 하나? 내게 어떤 것이 부족할 때다. 부족함이 없다면 무언가를 새롭게 배울 필요가 없다.

배움이란 내가 아닌 외부세계의 어떤 것을 내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이전에 내게 어떤 결핍, 부족함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외부의 것이 결핍의 자리로 들어와 채울 수 있다. 따라서 몸이 배워야 한다면 그 조건은 몸이 부족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책 <꿈의 해석>에서 배고픈 아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울부짖고 발버둥친다고 강조한다. 배고픔이라는 자극에 노출되고 그것 때문에 생긴 흥분을 울음과 몸짓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음식을 먹는 ‘충족 체험’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배고픔의 자극을 분출하는 반응을 하지 않고, 그 음식을 먹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일어난 변화가 바로 몸이 자극으로 인해 ‘과잉’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중대한 사안은 배고픔의 자극이 아니라 음식의 부족이다. 내 몸에 음식이 부족하다는 자극을 받으면 부족함을 채우려 한다는 말이다. 아이의 몸이 음식을 먹는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몸에 오는 자극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귀에 그냥 들리는 소리는 내가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면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내 눈에 보이는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여 정말로 듣고, 볼 수 있으려면 내 몸이 무언가를 소망해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의 몸은 ‘똥이 마렵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징징대지 않고, 화장실의 변기를 향해 간다. 내 몸이 주는 자극에 바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알게 된 외부의 요소를 내 몸과 결합하는 것이다.

자극을 얼마나 잘 참고 견디는지, 얼마나 적절한 방식으로 분출하느냐는 핵심 사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몸에 오는 자극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어떤 해석의 매개를 거쳐야 한다는 거다. ‘지금 나는 이 자극을 해소할 외부세계의 어떤 수단이 필요하다’는 해석. 이는 개인의 참을성이나 인내심, 인성 등이 문제가 아니다. 어떤 자극이 오면 내 몸은 그 자극으로 넘쳐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자극 때문에 무언가가 부족한 상황에 처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맞서 세상에 있는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세상의 것과 내 몸이 짝을 이루게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것. 그런 전제 속에 있는 몸이 성인의 배운 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반면 아이는 태어날 때 오로지 자기 몸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다. 자라면서 아이의 몸은 자기 몸과 외부세계의 여러 요소와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몸이 돼야 한다. 자기만으로는 부족한 몸, 그래서 늘 문제의 해결은 외부세계와의 결합을 소망하고 그것을 이루는 행동으로 완수된다. 그래서 그때 교수님이 이렇게 답했던 것이다. 아이가 화를 내고 폭발할 때 우리가 아이에게 가르쳐 줄 것은 지금 네 몸은 화나 분노로 꽉 차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부족한 상태라는 것. 그것이 물이 되었든, 음악이 되었든 말이다.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외부세계에 있고, 아이는 외부세계를 통해 부족함을 충족함으로써 흥분이 해소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인 것이다.

<이수련 정신분석학 박사(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