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7)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차를 타고 정신없이 달리다보면 길 중간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어요. 안간힘을 써서 급브레이크를 밟고 간신히 멈추면서 잠이 깨곤 합니다.”

상담자 한 명이 자주 꾸는 꿈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떤 길을 달리고 있었는지, 차를 탄 본인이 어떤 모습인지 등을 물어보면 상담자는 “모르겠다”고 한다.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차를 몰고 달리기만 했다는 듯이 말이다. 반면 또다른 상담자는 꿈에서 친구가 밥을 먹는 걸 보고 있다거나, 골목길에서 과거 여자친구가 걸어가는 게 보인다고 얘기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정신분석 상담에서는 전통적으로 꿈을 분석한다. 심리적인 억압이 잠자는 동안 조금 느슨해져서 깨어있을 때는 감추어져 있던 것이 꿈으로 표현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꿈을 통해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는 각자가 무언가를 경험할 때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이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달리다 멈추는 상담자는 꿈속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있지 않다. 목적지도 없이 끌려가듯 차를 달리다가 간신히 멈출 뿐이다. 자기의 눈으로 무언가를 전혀 보지도 못한다. 반면 다른 상담자는 꿈속에서 계속 무언가를 보고 있다. 밥을 먹는 행위를 하더라도 ‘밥을 먹는다’, ‘내가 밥을 먹는 게 보인다’, ‘다른 사람이 밥을 먹는 걸 보고 있다’는 모두 같은 입장이 아니다.

‘꿈에서 무언가를 보는 것’은 ‘현실에서 보는 것’과는 맥락이 다르다. 꿈이 현실에서 억압된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상담자가 꿈속에서 무언가를 보는 것은 현실에서는 그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눈으로 보는 것이 왜 금지되는 것일까. 그것은 눈이 갖고 있는 ‘보는 것’ 외의 다른 기능 때문이다.

소망을 이루고 싶은 마음

눈은 단순히 세상을 보는 일로만 이용되는 게 아니다. 무언가를 봄으로써 즐기는 데에도 사용된다. 아름다운 풍경, 좋은 물건, 사랑하는 사람 등 우리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림·사진·영화를 감상하고, 운동경기나 게임을 관전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낀다. 모두 눈으로 보는 것에서 얻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렇게 언급한 것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내가 내 눈으로 보는 것을 존중하고, 그것의 의미를 찾으면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난 바다를 보는 게 좋아”라고 하는 것은 내가 바다를 존중하고, 이해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바다가 가진 특징인 푸른색이나 넘실대는 파도 때문에 좋을 수도 있고, 바다를 보면 떠오르는 추억 때문에 좋을 수도 있다. 또 바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서 호감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바다와 내가 이어지는 지점을 찾아내고 내가 바다를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바다와 함께 겪는 특별한 경험 덕분에 바다가 좋아지는 것이다.

일본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자기 집 정원 채소들을 바라보며 쓴 글도 이런 특별한 경험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제대로 자라지 못한 채소들의 마음을 듣는 것이다. “자반이 나빠요. 자갈투성이라 내 하얀 다리를 뻗을 수가 없답니다. 왜 그런지 털북숭이 다리가 되었어요. 우엉인 척하고 있으려고요. 전 유순하게 체념했거든요.” 다자이 오사무가 잘못 자란 무를 보고 재치있게 적어낸 글이다.

그런데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과 달리 생각없이 보기만 하는 것, 말 그대로 보여서 보기만 하는 종류의 ‘보기’도 있다. 즐겁다는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기보다는 일종의 자극, 즉 흥분만 주는 ‘보기’인 것이다. 여기에는 내가 본 것을 존중하거나 이해하는 일이 빠져 있다. 어떤 대상을 보면서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 없이 맹목적으로 보면서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대상은 나와 어떤 관계도 맺지 않는다. 그렇게 오직 눈으로만 즐기게 되면 눈이 그러한 쾌락에 무뎌지기 시작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고, 더 강하게 자극해야만 겨우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자극적인 것, 성적인 것, 폭력적인 것들을 ‘보는’ 것에 탐닉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이다. 자극의 강도는 점점 높아지고, 자극을 접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자극이 없는 상황, 눈앞이 비어 있는 시간이 견딜 수 없이 허전하고 지루해진다. 급기야 그런 것에서 눈을 뗄 수 없고, 눈을 감을 수 없게 된다. 이건 내가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아니다, 나는 사라지고, 눈만 남아서 즐기는 것이다.

나 스스로 길들이고 다스려야

앞서 말한 상담자의 꿈에서 보는 행위가 계속 강조된 것은 상담자가 보는 것을 통해 실제로 즐기고 싶은 것이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에서는 실행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것은 현실 속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문화적인 맥락 하에 억압되고, 그저 ‘하고 싶다’는 소망의 형태로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소망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꿈으로 나타난 것이다. 보통 성인이 무언가를 즐기는 방식은 이러한 경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과학기술 발달이 단순히 즐거움을 강조하고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그러한 단순한 방식으로 보고 즐기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

생각하고 기억하는 일을 보조 소프트웨어가 담당하고 우리의 몸은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테드 창이 자신의 소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서 말하는 바가 정확히 이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어린아이는 우리 어른들처럼 과거의 어떤 일을 생각하고 마음의 눈으로 그 광경을 보는 대신, 검색어를 머릿속으로 하위발성하고 신체의 눈으로 해당 동영상을 보게 된다.”

하지만 몸이 머리와 분리되어 단독적인 기관으로 행세하면서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길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볍게는 음흉한 시선에서부터 음란물 중독, 몰카에 이르기까지…. 이때 문제는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을 즐기면 즐기는 대상에 대한 존중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 있는 나 자신도 온전한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한낱 쾌락을 움켜쥐고 있는 몸의 기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추락해버린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우리의 몸이 다양한 감정과 효과로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나 스스로 길들이고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을 눈을 비롯한 내 몸으로 즐길 때 그것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생각하면서 즐겨야 한다. 생각없이 즐기는 것보다는 당연히 복잡한 일이고, 무한정 계속 즐길 수도 없고, 또 그렇게 자극적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 속에 담긴 의미가 또다른 차원의 즐거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승화다. 우리에게 취향이나, 취미를 갖게 해주는 문화적인 즐거움이며, 그것이 내 안에 기억으로 남아 내 삶이 풍부해지게 된다.

<이수련 정신분석학 박사(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