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新 인맥]금감위·금감원 퇴직관료‘낙하산 취업’

보험협회 수장·은행 감사 ‘싹쓸이’

정채웅, 이우철, 김치중, 제정무 (사진 왼쪽부터).

최근 금감위·금감원 출신 인사들의 유관업계 ‘낙하산 취업’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보험개발원장에 금융감독위원회 정채웅 기획행정실장이 선출되고 최근 제31대 생명보험협회장에 이우철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내정됨으로써 재경부와 예금보험공사 사장 출신인 손해보험협회 이상용 회장을 제외한 보험개발원, 생명보험협회, 화재보험협회 수장들이 모두 금융감독위원회나 금융감독원 출신으로 채워졌다.

공직자윤리법 취업제한 ‘유명무실’
화재보험협회 제정무 이사장은 금감원 부원장 출신으로 지난해부터 화보협회 수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우철 부원장은 2004년부터 금융감독원 부원장직을 맡아왔으며, 경기고·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강만수 재정경제부 장관의 대학 및 관료 후배인데다, 소망교회 금융인 모임의 일원이어서 세칭 ‘강만수 라인’으로 통한다. 또 생보협회와 손보협회 전무들도 금감원 출신들로 채워졌다. 생보협회는 박창종 전무가, 손보협회는 김치중 전무가 각각 금감원 출신이다.

보험업계 이외에 일반 금융회사에도 금감원 출신들의 ‘낙하산 취업’은 ‘눈부실’ 정도다. 특히 금감원 출신들이 금융기관의 감사 자리를 독식하다시피해 과연 이들이 제대로 된 감사 업무를 수행할지 의문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금융감독 선진화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금감원 출신들의 금융회사 진출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공직자 윤리법에는 금감원 2급 이상 임직원은 퇴직 후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 소속부서 업무와 밀접한 업무 관련성이 있는 사기업체 등에 취업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가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현행법상 퇴임 전 3년 동안 취업할 금융회사와 관련한 부서 근무를 피하면 되기 때문에 ‘낙하산’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저축은행·증권사도 ‘연착륙 기지’
국민은행의 현 감사는 정용화 전 금감원 부원장보이다. 정 감사는 작년에 같은 금감원 출신인 남인 전 총무국장과 경합을 벌인 바 있다. 신한지주도 신임 감사로 원우종 전 금융감독원 비은행 감독국장을 선임했다. 물론 그에게 자리를 물려줄 조재호 감사도 금감원 은행검사국장 출신이다. 주요 금융회사 감사 자리는 사실상 금감원의 직책이나 다름없다. 현 정부 들어 열린 첫 국정감사에서도 금융감독원 퇴직자들이 피감기관인 금융회사에 재취업하는 관행은 여지없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금융회사 감사 자리는 그야말로 이들의 ‘독무대’다.

이번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자료를 보면 금감원 출신 퇴직자들의 은행·증권·보험·저축은행·카드·자산운용·캐피탈 등 업무 연관성이 높은 피감기관에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08년 8월 말까지 금감원 퇴직 임직원 65명의 업종별 취업 현황을 보면 일반시중은행이 14곳, 저축은행 6곳, 증권사 17곳, 보험사 13곳을 필두로 그밖에 카드·캐피탈·신탁·자산운용사·협회 등에 걸쳐 있다.

또 이 기간에 금융회사에 취업한 퇴직자 중 감사로 둥지를 튼 사례가 55건, 사외이사 3건, 대표 등 임원이 6건으로 분석돼 감사 자리가 ‘그들만의 리그’임을 확인시켜줬다. 금감원 출신의 주요 금융기관 낙하산 취업을 살펴보면, 백수현 전 금감원 증권검사1국장은 메리츠증권 감사로, 하위진 전 조사2국 부국장은 한화증권, 이광섭 전 증권검사국 팀장은 미래에셋 감사로, 고영준 조사2국장은 SC제일은행 감사로, 허세원 은행검사2국장은 KB투자증권 감사로 옮겼고, 옛 증권감독국 감독실장과 인력개발실장을 지낸 김성수씨는 SK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성호 베이징사무소장은 한국씨티은행 감사로, 인력개발실의 김건민·소순배 교수는 각각 알리안츠와 신한생명의 감사로 선임됐다. 금감원 출신은 연임되는 사례도 많다. 전 금감원 총무국 인력개발실 교수 출신인 유병철 유진투자증권 감사와 연해철 삼성증권 감사, 전 검사총괄국 실장 출신인 김병욱 골든브릿지증권 감사, 전 조사국 팀장인 최병용 키움증권 감사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이후 2급 이상 퇴직자 83명 중 54명(65%)이 유관기관에 취업했으며 2005년까지 합치면 총 65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도별로 보면, 2005년 18명, 2006년에는 25명 중 16명, 2007년에는 27명 중 21명, 2008년도에는 31명 중 17명이 유관기관에 취업했다. 이들 모두 3개월 이내에 재취업했고, 심지어 1~2일 내에 취업한 경우도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직자윤리법상 취업 제한 대상자(임원 및 2급 이상 직원)가 금융회사에 취업한 경우만 대상으로 파악한 자료이며 여타 퇴직자의 취업을 감안하면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금감원 “금융회사에 오히려 도움” 강변
작년 1월 이후 퇴직한 2급 이상 금감원 임직원 32명의 현황을 보면, 퇴직자 대부분이 국내 금융권으로 재취업했으며 이들의 퇴직 당시 소속 부서는 32명 중 27명이 금융권과 직접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 일하다가 퇴직했다. 이들 27명의 퇴직 전 근무 부서는 인력개발실 11명, 소비자보호센터 6명, 임원실 4명, 검사지원국 3명, 총무국 2명, 해외 사무소 1명 등이다. 특히 18명의 전담교수가 있는 인력개발실에는 2급 이상 금감원 직원이 퇴직 전에 가장 많이 거치는 곳으로 퇴직 후 유관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부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금감원 직원과 금융회사 직원 들을 위한 전문가 교육과 연수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 부서 소속원들의 실제 강의 횟수는 2006년 76회, 2007년 76회, 2008년 9월까지 72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이런 관행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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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갈고 닦은 전문적인 감독 능력을 금융회사에 펼치는 것은 금융회사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변했다. 물론 그들의 전문 지식과 감사 능력을 사기업에 취업해 펼치는 일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감원 출신의 지나친 유관기관 취업과 특정 직위 독식 현상은 자칫 도덕적 문제로 치부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