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新 인맥]한나라당 입지 넓혀가는 민중당 출신

이재오·김문수, 차기 대권의 ‘변수’

1990년 11월 10일 민중당 창당대회.

"1992년에는 비록 눈물을 흘렸지만 2012년에는 웃음을 지을 수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차기 대권 후보로 떠오르면서 한나라당 내 민중당 출신 인사들이 부각되고 있다. 김 지사의 주변에 민중당 출신 인사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1992년 민중당은 14대 총선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한채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20년 전에 경험한 좌절을 뒤로 한 채 성공 신화를 쓸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민중당 출신 인사들은 지난해 대선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하면서 올해 초에는 정치 전면에 나섰다. 1990년 11월 10일 민중당 창당 당시 주역이었던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이들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다 당 대변인인 차명진 의원, 김용태 의원, 경기도 허숭 대변인, 조춘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 등이 있다. 이재오계는 아니지만 한나라당에는 김성식 의원,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 같은 민중당 출신 인사가 있다. 임해규 의원은 민중당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민중당에서 활약한 김문수 도지사를 도왔다는 이유로 범 민중당 출신 인사로 꼽힌다.

차명진·김용태·김성식 의원 등 포진
한나라당 내 민중당 출신 인물로는 단연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앞자리에 앉아 있다. 민중당 사무총장을 지낸 이 전 최고위원은 창당도 진두에서 지휘했지만 1992년 총선에서도 은평 을에 출마했다. 은평 을은 장기표 당시 정책위원장이 출마한 동작 갑과 함께 관심 지역구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현실 정치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채 좌절했다가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자 여당인 민자당에 입당했다. 개혁 세력을 영입하려는 당시 주류인 민주계의 이해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때 민중당의 핵심 인물인 이재오·김문수·이우재·정태윤 씨 등이 모두 민자당에 입당했다. 당시 민자당 내 보수 인사는 이들의 입당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재오, 김문수, 차명진, 김용태, 허숭, 조춘구(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1996년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신한국당 후보로 은평 을에서 처음 배지를 단 후 17대까지 내리 3선을 했다. 지난해에는 이명박 캠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올해 초 박근혜 전 대표의 친박 계보에 맞서는 이재오계를 형성했다. 비록 올해 4월 총선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에 밀려 낙선한 후 미국으로 떠났지만 태평양 건너에서도 그의 위력은 여전하다. 그의 연말 귀국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는 것은 그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입증해주는 대목이다.

한나라당 내 민중당 출신의 또 다른 중심축인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김 지사에게는 이재오계라는 든든한 후원군이 있다. 여기에다 비(非) 친박 인사를 결집하면 친박의 세를 넘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김 지사는 민중당 창립 당시 노동위원장을 맡았다. 서울 구로 갑 지구당 위원장을 맡았지만 14대 총선에서는 출마의 꿈을 접고 당시 장기표 정책위원장이 출마한 동작 갑의 선거 사무장을 맡았다. 민중당이 해체된 후 민자당으로 입당해 1996년 15대부터 부천 소사 지역에서 내리 3선을 했다. 2006년 경기도지사에 선출되면서 그는 차기 대권 주자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가장 큰 벽은 형제 사이나 다름없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지원을 얻는 길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미국을 찾은 한 측근에게 “경기도지사가 대권에 성공한 적이 없다”라는 말로 김 지사가 대권 주자로 부각하는 것을 은근히 경계했다고 한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부의 성공이 최우선 과제지만, 자신의 대권 주자 부각 역시 쉽게 던질 수 없는 카드라는 것이 이 측근의 설명이다.

이재오계는 김문수 지사의 지원군?
이재오계의 민중당 출신 인사 중에는 이 전 최고위원보다 김 지사와 가까운 인물이 많다. 한나라당 대변인인 차명진 의원은 김 지사와 끈질긴 인연을 갖고 있다. 차 의원은 “민중당 시절 중앙당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고 말했다. 중앙당 노동위원회의 위원장이 김 지사였다. 김 지사가 국회의원을 하면서 차 의원은 그 밑에서 보좌관 생활을 했으며, 김 지사의 지역구(부천 소사)를 물려받으며 배지를 달았다.

임해규 의원 역시 김 지사와 인연이 깊다. 임 의원은 “민중당이라는 조직 속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한 적은 없다”면서 “당시 김 지사와 개인적 인연때문에 민중당 출신으로 분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용태 의원은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생으로 민중당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민중당 출신과 인연을 맺었다. 서울대 총학생회 차원의 선거 지원 활동에서 그는 학교와 거리가 가까운 동작 갑 지역구를 선택했다. 이곳에는 장기표 당시 정책위원장이 출마하면서 김 지사가 선거 사무장으로, 김성식 의원이 자원봉사단장으로 활동했다. 중앙당에서 지원차 자주 동작 갑을 들른 차명진 의원은 김 의원의 정치학과 선배라는 점 때문에 남다른 인연을 갖게 됐다. 김 의원은 “장기표 당시 정책위원장을 도운 사람들끼리 사적으로 자주 만난다”면서 “ 김 지사는 자주 오지 않지만 여기에서 김성식 의원을 가끔 본다”고 말했다.

김성식, 박형준, 정태윤, 노용수, 최우영(왼쪽부터).

김 지사는 차명진 의원처럼 주변에 민중당 인사를 가까이 두었다. 올해 총선에 경기 안산 단원 갑에서 천정배 의원에 패한 허숭 경기도 대변인은 김 지사를 보좌하고 있다. 민중당 내 청년학생운동 분야에서 활동한 허 대변인은 김 지사의 밑에서 오랫동안 보좌관 생활을 했다. 김 지사의 비서실장이었던 노용수씨도 민중당 출신이다. 그 역시 김 지사의 의원 시절 보좌관을 거쳐 경기도 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올해 총선을 앞두고 비서실장직을 사임했으나 공천을 받지 못했다. 최우영 전 경기도 대변인도 김 지사를 모시다가 총선에 출마하려 했으나 공천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최 전 대변인 역시 민중당 출신이다.

수도권 매립지관리공사 직원 10여 명이 평일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으면서 관리공사 조춘구 사장의 이름이 중진 정치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조 사장은 1990년 11월 10일 장기표·이재오·김문수·정태윤 등과 함께 민중당을 만든 주역이다. 그는 창당 당시 대외협력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4월 총선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 성북 갑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낙천한 그는 7월 말 수도권매립관리공사 사장이 됐다. 1990년대 그는 7년 동안 한국환경자원공사와 한국자원재생공사에서 간부로 근무해 사실상 환경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캠프 내 직능정책 부본부장을 맡아 활동했다. 조 사장은 “당이 해체한 후 민중당 출신들이 따로 모인 적이 없지만 장기표·이우재·김문수·이재오씨와는 사적으로 한 번씩 만나왔다”고 말하면서 “민중당 출신들은 생명을 위협받는 경험을 같이한 동지로 서로 인간적인 이해가 깊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김 지사의 경북고 선배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민중당 시절 이전부터 인연을 맺었다.

박형준 청와대기획관도 특별한 인연
기획조정실장으로서 민중당 창당의 주역을 담당한 정태윤 전 한나라당 사이버 위원장도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민중당 출신 인사다. 정 전 위원장은 올해 총선에서 부산 남구 을에 출마했다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무성 의원에 고배를 마셨다. 총선 후에는 청와대 조직 개편 당시 정무비서관으로 거론됐으나 청와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2007년 8월 이재오 당시 최고위원을 비롯한 이재오계 의원들이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총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김문석 기자>

김성식 의원은 민중당에서 활동했지만 한나라당의 이재오계 민중당 출신과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김 의원은 “민중당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결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한나라당 내 소장개혁파 모임인 민본21의 주축 인사다. 이재오계가 청와대와 가까운 주류쪽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 민본21은 젊은 소장파 의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때로는 주류와 반대의 주장을 내면서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 김 의원이 있다. 김 의원은 “가끔 민중당 출신들과 만나지만 그 사람들은 장기표를 돕고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도 민중당과 독특한 인연을 맺은 경우다. 그는 민중당의 강령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김성식 의원은 “박 홍보기획관이 민중당 당원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정책적 조언을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명진 의원 역시 “박 홍보기획관이 민중당에서 활동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박 홍보기획관은 17대 국회의원 시절 수요 모임 멤버로, 소장파 의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지난해 이명박 캠프에서 활약하면서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한나라당 내 민중당 출신들은 공동체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다. 진보에서 보수로 갑자기 바뀐 전력 때문에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다. 진보 세력에서는 ‘변절’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고, 정통 보수 세력에서는 의심의 눈길을 감수해야 했다. 차명진 의원은 “민중당 시절의 애국심과 열정은 그대로 간직하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과 경험 부족으로 인한 잘못된 노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교정했다”고 말했다. 김성식 의원은 “당시 민중당에는 재야 내 상당히 유연한 분들이 모였다”면서 “민중당 출신들을 오늘의 정치 상황과 연관해 살펴보려는 것은 견강부회”라고 주장했다. 조춘구 사장은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요청이 있었다”면서 “당시의 시대적 요구와 지금의 시대적 요구는 다르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 한때 민중당 출신들과 함께 지냈던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한나라당 내 민중당 출신이라고 한다면 이재오 전 최고위원· 김문수 지사, 두 사람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이 두 사람이 개인적 역량으로 한나라당 내에서 살아남았다”면서 “이런 모습은 한편으로는 이념을 구분짓지 않는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한민국 新 인맥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김문수 지사, 두 사람의 관계가 한나라당 내 민중당 출신 인사들의 행보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두 사람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서로 다른 대권주자를 지지하면서 갈라지기도 했다. 김용태 의원은 “두 사람의 관계는 형제와 같다”고 표현했다. 임해규 의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너무 18년 전 민중당 시절의 인연으로 묶어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