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 찾는 대학생·직장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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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진로 관련 대학 상담센터 방문 급증… 졸업한 직장인들도

한 보험회사의 콜센터에서 일하는 직장인 심모씨(34)와 동료들에게는 몇 주 전부터 생긴 버릇이 있다. 퇴근을 하거나 점심을 먹으러 콜센터를 나설 때마다 건물 로비에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한 악성 고객이 자신과 통화한 전화상담사를 찾는다며 콜센터 입구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렸던 일이 심씨에게 일종의 심리적 외상처럼 남은 것이다. 콜센터 사무실은 보안카드가 있어야 드나들 수 있지만 승강기를 타는 건물 로비까지는 외부인도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이 있는지 미리 내다보게 됐다. 심씨는 “전화로만 받던 스트레스를 실생활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하면서까지 받을 수도 있다는 게 끔찍해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며 “상담으로 효과가 있었던 것 같지만 아직도 콜센터 문 앞의 택배 아저씨만 봐도 가슴이 덜컥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금천구가 진행한 직장인 건강체험 행사에서 직장인들이 스트레스 검사를 받고 있다. / 한국EAP협회 제공

서울 금천구가 진행한 직장인 건강체험 행사에서 직장인들이 스트레스 검사를 받고 있다. / 한국EAP협회 제공

한 해 치료비 액수만 3조3000억원

심리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직장인과 대학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정신건강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풍조가 자리잡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관련 시장도 점차 빠르게 커지고 있다. 2016년 의료기관을 통해 지출된 정신질환 관련 치료비 액수만 3조3000억원을 넘어섰다. 10년 전인 2006년보다 6배 커진 규모다. 대학에서는 취업 자체가 가장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자리잡으면서 기존의 취업·진로상담과 심리상담 사이의 구분이 흐릿해지는가 하면, 대학 재학기간 동안 학내 상담센터를 저렴하게 이용한 경험이 있는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 수요도 늘고 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심씨는 고객의 ‘갑질’에 따른 감정노동에 시달리지만, 상담을 통해 털어놓는 스트레스는 일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다. 심씨는 “(고객이) 회사까지 찾아와 난리를 친 일은 상담을 받아야겠다고 마음 먹게 만든 ‘마지막 물방울’이었고, 이전부터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마음 속 물컵에 가득 차서 넘치기 직전이었다”고 표현했다. 집안에서 겪는 남편과 아이,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을 비롯해 직장 안에서 상사나 동료와의 인간관계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까지,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지극히 평범한 고민이지만 이런 고민들이 풀리지 않고 점차 쌓여서 커지는 것이 문제였다.

실제 일선에서 심리상담을 담당하는 상담심리사들이 보는 시각도 비슷하다. 상담을 하러 찾아오는 직장인들의 고민 대부분은 누구나 겪을 법한 문제나 갈등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사랑의 전화, 삼성전자 등 기업체에서의 직장인 대상 상담을 바탕으로 <직장인을 위한 고민처방전>을 쓴 전재영 상담심리사도 “직장인이 가지고 있는 고민은 상사의 심한 잔소리, 재미없는 회사생활, 진급 누락으로 인한 의욕 상실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민들”이라며 “많은 직장인들이 같은 고민을 하지만 현재의 고통과 어려움을 혼자서 버텨내려고만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속되는 청년층의 취업난으로 각 대학마다 상담센터를 찾는 대학생들도 늘면서 대학 상담센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생들에게서도 구체적 내용을 들어보면 저마다의 사정은 제각각이지만 취업·진로 문제와 연애·대인관계 문제가 가장 주요한 고민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이모씨(25)는 취업하기 어려운 전공이 발단이 돼 연애와 인턴생활 등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얘기하다가 기업 취직원서라도 쓰게 상경계열을 복수전공하라고 닦달하길래 크게 싸우고 헤어졌다”는 이씨는 “게다가 인턴에 지원할 때마다 면접에서 정치학이 업무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물어보니 어쩔 줄을 몰라 상담을 받으며 마음의 부담을 덜어보려 한다”고 말했다.

정부나 지자체서 무료상담 사업도

대학에서부터 치열한 경쟁과 취업 스트레스로 심리상담을 필요로 했던 대학생들이 취업한 뒤에도 여전한 스트레스로 모교의 상담센터를 찾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학내 상담센터를 운영 중인 대학마다 재학생들의 상담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탓에 졸업한 동문에게도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은 소수다. 그렇지만 일부 대학 상담센터는 졸업생이면 적게는 8만원에서 15만원까지 있는 일반 심리상담센터의 시간당 상담요금보다 다소 할인된 가격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어 예약 일정이 이미 한 학기 내내 꽉 차 있기도 하다. 서울의 한 대학 상담센터 관계자는 “졸업을 앞두고도 알바 일자리 말고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거나 전공이나 학점 때문에 매번 낙방하는 내담자까지, 취업난이 학생들을 상담 받으러 오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어 버렸다”면서 “졸업한 직장인들까지 상담하러 와서 하는 얘기가 ‘취업에 성공해도 경쟁하고 자기계발해야 하는 게 끝이 아니라 절망스럽다’는 걸 보면 상담하는 입장에서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주당 1회, 1시간에 10만원 안팎으로 받을 수 있는 심리상담이 적잖이 경제적인 부담이 되는 탓에 최근 들어서는 직장인을 위한 무료상담 사업을 실시하는 정부나 지자체도 늘고 있다. 300인 이하의 중소기업이나 소속 직원 개인이 온·오프라인으로 무료상담을 받을 수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근로자지원프로그램(EAP)’ 서비스 실적을 보면 2016년 1만1707건의 상담을 실시해 전년(9497건)보다 23.3% 증가하는 등 참여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EAP 서비스의 상담분야 분석 결과에서도 직무스트레스 때문에 상담을 받은 비율이 41.4%(4844건)로 가장 높고, 정서·성격이 20.6%(2415건)로 뒤를 이어 스트레스가 줄지 않는 사회적 여건이 상담수요를 높이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밖에 서울시는 감정노동자를 위한 심리상담센터 5곳에서 심리상담과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직장맘지원센터에서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직장맘들에게 상담심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에서는 공공정책 차원의 직장인 심리지원사업이 도입 중인 과도기인 데다, 해외와는 달리 개별 기업 차원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소속 직원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기업은 드문 형편이다. 한국EAP협회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의 직무스트레스 경험 비율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79%, 일본 72%, OECD 평균 78%에 비해 한국 직장인은 82%가 회사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스트레스가 높은 것으로 나왔다”며 “직원 심리상담 이후 내담자의 심리적 위험도 평균점수가 8.8점 감소해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결과를 보였고, 노동 손실시간도 연간 10.66시간 감소해 1인당 평균 7시간 정도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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