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그들은 남들 불쾌해하는 데서 즐거움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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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책 펴낸 박가분씨, “이젠 일베식 도발 신선함 잃었다”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가 특정지역 비하, 여성 혐오, 전직 대통령 비하 등으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지 6개월이 지났다. ‘일베 신드롬’은 어느 정도 잦아들었지만 일베가 남긴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11월 7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는김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일베 회원들을 사자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광주시의 5·18 단체와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11월 6일 시국회의를 열고,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모독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린 일베 회원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최근 일베를 분석한 <일베의 사상>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일베의 사상>을 쓴 박가분씨와 특정지역 비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나선 강운태 광주시장을 인터뷰했다.

막장 댓글과 주장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에도 사상이 있을까? 일베에서 사상적 존재를 찾은 한 젊은 논객이 <일베의 사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처음에는 일베를 찬양한 책인 줄 오해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는 저자 박가분씨는 11월 7일 고려대 앞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일베의 단어처럼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힘든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박씨는 “혹시 책을 써서 일베에 유명세를 띄워주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책이 출간될 즈음 다행스럽게도 일베가 사양길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베의 사상>을 쓴 박가분씨.

<일베의 사상>을 쓴 박가분씨.

일베에 대한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뭔가.
“일베는 쓰레기 폐기장이기 때문에 쓰레기에 관심을 줘서는 안 된다는 한 방송 출연자의 발언이 있었다. 책을 쓰면서 나 자신이 청소부가 되어 방호복을 입은 느낌이었다. ‘쓰레기를 왜 합리적으로 분석하는가.’ 그런 글이 올라왔다. 쓰레기이니까 분석이 필요하다. 쓰레기도 분리수거해야 한다. 아무렇게나 버리면 사람이 살 수 없다. 사회 진단 도구로서 쓰레기도 분석할 가치가 있다. ‘개가 사람을 물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 글이 있었다. 생각하는 게 있어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베에 대해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이들이 뭘 생각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들의 생각이나 말을 추적하고 싶었다.”

어떤 방식으로 일베를 분석했나.
“일베 사이트에 들어가서 눈팅만 했다. 2~3개월간 지켜보았다. 댓글 같은 것은 달지 않았다. 그 안에서 뭘 하는지 관찰만 했다.”

노알라, 홍어, 보슬아치, 좌빨좀비, 민주화 같은 일베의 혐오스러운 용어들이 한국 사회를 자극했다.
“일베에는 지향점이 없다. 젊은이들의 혐오문화가 현실에서 좌절한 후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로 나타난 것이다. 삐뚤어진 인정 욕구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일베 같은 집단에서 정치적인 프로그램이나 강령이 나올 리 없다.

이들의 목적은 인터넷에서 타인이 불쾌하도록 도발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현실에 나오면 우스워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인터넷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 공론장에 대해서는 불신하고 있다. 현실의 맨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고 있는 것이 일베의 멘탈리티다. 일베 유저들이 정치적인 프로그램을 갖는다면 파시즘에 가깝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한가한 분석이 있을 수 없다.”

일베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이들을 인터넷에서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베를 어떻게 한다? 이것이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일베를 사회적 징후로 보고 분석하려 했다. 일베는 사양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일베가 사라지더라도 이들의 혐오 방식을 잇는 커뮤니티가 있을 것이다. 일베는 인터넷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영웅심리가 표출된 것이다. 젊은이들이 현실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어야 한다. 물론 젊은이들 자신의 책임도 있긴 있다. 일베 자체를 어떻게 한다기보다, 그런 공간이 많아지면 (혐오문화가) 자연스럽게 없어질 수 있다.”

[사회]“그들은 남들 불쾌해하는 데서 즐거움 찾아”

책 제목이 <일베의 사상>이다. 일베에 굳이 사상이란 단어를 붙인 이유는.
“쓰레기에도 사상이 있을 수 있다. <일베의 생각>으로 제목을 정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심각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일베의 사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일베를 지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일베를 큰 의미로 보는 것도 아니었다. 사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존중받아야 한다거나 긍정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일베와 촛불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했다. 게다가 일베는 촛불의 사상을 계승한다고 분석했다. 진보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양쪽이 극단이고, 극단은 통한다고 이야기한 게 아니다. 일베가 촛불의 정서에서 일탈해 나온 존재라는 이야기다. 촛불이 실패했기 때문에 일베가 나왔다고 본다. 진보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아비판이다.

일베는 진보논객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롱문화를 수용했다. 예전에 그런 문화에 발을 들였던 나 자신에 대한 비판이다. 진보좌파가 잘못했으니까 일베가 다 너희들 때문이야라고 하기보다, 과거에 뭘 했는지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되짚어본다는 의미다. 사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 시대를 돌이켜본다는 의미다.”

일베가 사양길에 들어섰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책이 출간된다는 이야기가 나온 후 일베로부터 소위 ‘민주화’라는 것을 당했다. 예전에 내 신상을 털거나 모욕을 주면 화가 났다. 지금은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진부했다. 이제 일베식 도발이 신선함을 잃었다. 일베의 선정성이 익숙하게 된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도 영향을 미쳤다. 사건 초기 국정원의 입장을 옹호하다 최근 선거개입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면서 조용해진 느낌이 있다.”

차별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그렇다고 일베 같은 현상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더 우회적으로 발언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베로 인해 최소한 상처받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비하한 ‘택배 게시물’ 같은 경우 최소한 그런 게시물을 올리면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홀로코스트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 이 사회가 규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관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법으로 규제한다 하더라도 혐오문화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베 회원들의 주요 연령층이 어떻게 된다고 보나.
“초반에는 생각 없는 중·고생이라는 말이 많았다. 사실 커뮤니티가 커서 중·고생이 많은 거지 중·고생이 대표하는 집단은 아니다. 친목 위주의 예전 디시인사이드와는 달리 일베는 익명성을 중시한다. 어떤 집단이 많은지 감을 잡지 못하지만, 다양한 소득 분포의 20~30대 젊은 남성이 일베를 대표한다고 보고 있다.”

일베 회원과 비슷한 또래일 것 같다. 20대는 3040세대에 비해 보수화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20대 후반이다. 20대가 보수화됐다는 것이 아니라 탈정치화가 정확한 규정이다. 20대는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서 신뢰하지 않는다. 이게 예전 세대와 다르다. 자기가 정치적 이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이 이상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회의하는 세대다.

이 책을 쓰면서 고민한 것은 어떻게 자신의 이상을 감당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뾰족한 답은 없었다. 일베 유저도 비슷한 점이 있다. 일베는 생각 없는 쓰레기처럼 보이지만 비뚤어진 이상주의자라고 볼 수도 있다. 자기들 나름대로 이상이 있지만 자기 이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타인의 이상을 희화화한다. 숨겨진 이상주의를 표출하는 방식이다. 결국 나는 일베와 동시대인이다.”

<글·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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