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위키리크스 외교문서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기정사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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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 대사관 기밀 외교전문으로 본 MB정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기밀 외교전문 중 주한 미대사관에서 생산한 것은 모두 1980건이다. 이 중 90% 이상이 시기적으로 2006년 1월부터 2010년 2월 사이에 작성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6년 6월 서울시장 임기를 마치고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로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 대통령 임기를 절반쯤 소화한 시기와 겹친다.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 전경. / 경향신문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 전경. / 경향신문

외교전문을 보면, 한국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국내 정치 동향과 주요 인물에 대한 평가를 주한 미대사관 측에 상세하게 말했다. 언론의 시야가 미치지 못하는 막후에서 정세와 인물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또한 상당수 외교전문에는 주한 미대사관이 이들과 만나 수집한 정보에 대한 대사관 측의 논평이 담겨 있어 미국이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도 드러나 있다.

2006년에는 박근혜 당선 유력 평가
미국은 2007년 대선 추이를 주의깊게 관찰했다. 주한 미대사관은 2006년부터 잠재적인 대선후보자들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당내 경선 및 대선 전망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수집했다.

2007년 대선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정치인들에 대한 주한 미대사관의 평가는 어땠을까. 주한 미대사관은 2006년 7월 25일자로 당시 대선후보 물망에 오른 이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평가 대상은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원희룡, 정동영, 김근태, 고건, 정운찬, 강금실 등 9명이다. 전문은 당시 여론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박근혜 전 대표가 가장 유력하다고 봤다. 주한 미대사관은 2006년 8월 17일자 전문에서는 “여성 대통령 탄생 가능성이 지금보다 더 높았던 적은 없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전문은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정치인들의 대선 승리 가능성은 모두 낮게 봤다. 전문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고건 전 총리에 이어 세 번째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주한 미대사관은 이듬해인 2007년부터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기정사실로 보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참여정부 당시 친노 진영 일부에서는 당시 정동영 통합민주당 후보의 대선 승리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선거 지원에도 매우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10월 31일자 외교전문을 보면, 당시 김태환, 조수정 등 청와대 행정관 두 사람은 10월 30일 주한 미대사관 관료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무현 행정부는 정동영 후보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있으며 친노 지지자들은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거나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의 2012년 대선 준비를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김태환 행정관은 친노 지지자들 중 “정동영 후보자 캠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후보가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지난 2007년 12월 19일 대선 당일 밤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주한 미대사관 외교전문은 “이명박 대통령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 연합뉴스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후보가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지난 2007년 12월 19일 대선 당일 밤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주한 미대사관 외교전문은 “이명박 대통령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 연합뉴스

두 사람은 BBK사건이 당장은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대선 승리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이미 대선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에 따르면 두 사람은 선거 후 BBK 문제가 다시 여론의 전면에 부상하게 되면 2008년 4월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 후보들이 압승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2008년 4월 총선에서 압승한 것은 한나라당이었다.

BBK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 행보에서 거의 유일한 걸림돌이었다. 외교전문은 이 문제와 관련해 한나라당이 미국에 ‘협조’를 요청했음을 보여준다. 이명박 후보 대선 캠프의 외교안보 자문역을 맡았던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은 2008년 10월 25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를 만나 김경준씨의 한국 소환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2008년 10월 31일자 전문) 유 전 장관은 김경준씨가 대선 전에 한국에 송환될 경우 2002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패배가 재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회창 후보는 2002년 대선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아들 병역비리 문제가 터지면서 대선에서 패배했다. 전문은 유 전 장관이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해 “사려깊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에 따르면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대사는 10월 31일 유 전 장관과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김경준씨의 한국 송환은 이미 2005년에 결정된 것으로 재고의 여지가 없는 데다, 유 전 장관의 요청을 승인할 경우 미국이 한국 대선에 개입하는 것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해 이 요청을 거절했다.

대선 직후인 2007년 12월 20일자 외교전문에서 주한 미대사관은 “이명박은 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당시 당선자가 경제성장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감에 부응하기도 했지만, 그가 여러 가지 부패 스캔들로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신정아 스캔들 등이 터지면서 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었던 게 대선 승리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전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은 하늘 위의 누군가가 그를 보살피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논평했다.

한나라당, 김경준 소환 연기 요청
이번에 공개된 외교전문은 이명박 대통령 대선 캠프 내부의 역학관계도 보여준다. 전문을 보면 박진 한나라당 의원은 대선 5일 전인 2007년 12월 14일 주한 미대사관 외교관들에게 당선이 확실시되는 이명박 후보 캠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특히 외교분야가 그렇다고 말했다. 전문이 인용하고 있는 박진 의원의 말에 따르면, 당시 이명박 캠프 외교분야는 유종하 전 외무장관(당시 이명박 후보 선대위 외교위원장)이 주도하는 그룹, 박대원 전 주알제리 대사와 권종락 전 주아일랜드 대사가 주도하는 그룹, 현인택 당시 고려대 교수, 김우상 연세대 교수 등 현직 교수들로 구성된 그룹 등 셋으로 나뉘어 있었다. 외교분야 자문팀에 대한 모든 지시는 곽승준 당시 선대위 정책기획팀장이 내렸다. 곽승준 팀장이 현인택 교수나 김우상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 의제에 대한 세미나를 할 것이라고 말하면 교수들이 세미나팀을 꾸렸다.

외교통상부 장관 자리에 관심이 있느냐는 대사관 관료들의 질문에 박진 의원은 최종 목표는 장관이 되는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18대 총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전문은 박진 의원이 야심 있고 능력 있는 인물이지만 이명박 후보 선대위나 대선 후 출범할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직에 오르지는 못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공천 불만 드러내
주한 미대사관이 정보 수집을 위해 만난 한국인들 중에는 언론인들도 있다. 전문을 보면 고대영 KBS 본부장과 민경욱 앵커는 대선 직전 주한 미대사관 사람들과 만나 2007년 대선에 대한 주관적 전망을 밝혔다. 민경욱 앵커는 당시 대선 직후 방영을 위해 준비하던 대선후보자 관련 다큐멘터리 내용에 대해 말했다.(12월 17일자 전문) 고대영 본부장은 이명박 당시 후보가 능력 때문이 아니라 민족주의의 약화, 경제성장에 대한 요구, 북한 위협에 대한 우려 등의 시대적 흐름 때문에 대선에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12월 19일자 전문) 전문은 고대영 본부장이 “미대사관과 자주 접촉하는 인물(frequent Embassy contact)”이라고 표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지난 2009년 5월 24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폭우를 맞으며 조문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주한 미대사관 외교전문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죽음을 통한 정치적 시위였다고 분석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지난 2009년 5월 24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폭우를 맞으며 조문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주한 미대사관 외교전문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죽음을 통한 정치적 시위였다고 분석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2008년 촛불집회는 이명박 정권 출범 후 맞은 최대의 정치적 위기였다. 촛불집회가 거리시위로 확산되던 무렵인 2008년 6월 6일,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는 한나라당 지도부를 만났다. 당시 외교전문을 보면, 이 만남은 이보다 일주일 전 강재섭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강재섭 당시 대표는 6월에는 6·10 민주화 항쟁,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고 등 민감한 사안들의 기념일이 즐비하기 때문에 촛불집회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보다 앞선 5월 9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버시바우 대사와 점심을 함께 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 자리에서 “필요하다면 4월 18일에 타결된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고 한 박 전 대표의 5월 6일 발언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쇠고기 문제가 정치적 알력이나 감정에 좌우된다면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문제는 쇠고기 그 자체가 아니라, 협상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 문제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을 보면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을 거세게 비판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2008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박 전 대표는 공천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전문을 보면, 박 전 대표는 2008년 3월 18일 버시바우 대사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당시 공천과정이 자신이 당대표 시절 만들어놓은 공정한 공천 시스템을 훼손했다고 말했다. 전문은 박근혜 전 대표가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지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봤다. 전문은 또 박 전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 사이의 ‘사실상 냉전’이 향후 몇 년간 한국 정치를 규정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2008년 총선 공천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종하 전 외무장관은 2008년 4월 11일 주한 미대사관 관료들과 만난 자리에서 차남 김현철씨의 공천 탈락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이 매우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이 대통령을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정치 논평 얻으려 교수·평론가 만나
주한 미대사관은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일종의 정치적 시위라고 파악했다. 2009년 6월 5일자 전문은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자살은 민주화 투쟁의 한 방식이었으며, 그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많은 한국인들에게 그의 죽음은 반독재투쟁 시기 자살을 통한 정치적 저항을 떠올리게 한다고 기록했다. 전문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국민들이 보여준 거대한 애도의 물결은 재임 중 그에 대한 낮은 지지도가 거짓이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이명박 당시 후보와 패배한 박근혜 전 대표가 악수하며 웃고 있다. 주한 미대사관 외교전문은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상 냉전’이라고 표현했다. / 김영민 기자

지난 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이명박 당시 후보와 패배한 박근혜 전 대표가 악수하며 웃고 있다. 주한 미대사관 외교전문은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상 냉전’이라고 표현했다. / 김영민 기자

외교전문은 이명박 정부가 공을 들인 자원외교의 치부를 드러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2009년 12월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 미대사를 만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수주 과정은 자신이 2009년 11월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을 때 이미 결정됐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방문을 위해 공식 발표를 미뤘다고 설명했다. 또한 12월 30일에 스티븐스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는 군사 지원을 하기로 한 것은 기밀이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회 비준을 얻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을 보면 주한 미대사관은 한국 정치에 대한 전문적 논평을 얻기 위해 정치평론가나 정치학 교수들과 자주 만났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와 대통령학으로 알려진 함성득 고려대 교수가 그런 이들이다. 2009년 1월 7일 두 사람은 주한 미대사관 관료들과 만나 한국 정치 전반에 대한 논평을 제공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한국 정치를 이해하려면 한국 정치가 사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주요 공직자들은 모두 대통령과 사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당시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체류시 맺은 인연 때문에 장관이 됐다고 두 사람은 주장했다. 김형준 교수는 이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2012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고 전문은 기록했다. 전문을 보면 김 교수는 최근 자신이 수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중 90%는 차기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단 10%만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의원이 경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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