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4대강 사업 졸속’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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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원학회 4대강 보고서 “의사결정권자 2~3년 퇴임 후 대비 필요” 등 토론 내용 담아

“우편으로 왔다. 다른 의원실에도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수자원학회 4대강 보고서라고 하니 당연히 찬성 입장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보다 보니까 ‘이상한 내용’도 눈에 띄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진애 의원(민주당) 측의 말이다.

4대강 금강 7공구 구간인 충남 공주시 월송동 신공주대교 아래 둔치가 태풍 메아리가 지나간 뒤 깊이 파여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4대강 금강 7공구 구간인 충남 공주시 월송동 신공주대교 아래 둔치가 태풍 메아리가 지나간 뒤 깊이 파여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한국수자원학회의 4대강 활동보고서는 2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2009년 3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수자원학회 내에서 4대강과 관련해 진행한 심포지엄, 현장답사, 원로 간담회 등을 모은 보고서다. 김 의원 측이 말한 ‘이상한 대목’은 예컨대 이것이다. “본 사업에서 과도한 정치·경제·사회적 문제의 실체를 기록으로 남겨서 향후 정치적 논란에 대비해야 한다…(중략)…특히, 본 사업에 참여한 우리 학회 회원들에 대한 향후 책임문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본 사업의 의사결정권자는 2~3년 후면 퇴진하게 되므로 이에 따른 대비가 필요하기 때문(4대강 활동보고서 182쪽).” 지난해 7월 28일 열린 ‘원로 포럼’ 토론회에서 나온 토론 내용 정리다.

이 보고서가 언론에 노출된 것은 6월 22일이다. 그런데 보고서 표지에 인쇄된 보고서 발간 시점은 2011년 2월이다. 약 4개월의 차이가 있다. 뭔가 사연이 있음직하다.

김진애 의원실에 요청해서 보고서 전문을 입수, 검토했다. 내용은 놀라웠다. 그동안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은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 박재현 인제대 토목공학과 교수 등이 주도해 만든 대한하천학회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2800여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 수자원학회는 사실상 4대강 사업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학회다. 바로 전전 회장이 현재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이하 4대강본부)의 본부장을 맡고 있는 심명필 교수다. 4대강 본부는 언론 보도 해명에 올해 2월에 취임한 현 회장(한국건설기술연구원 우효섭 박사)의 논리를 인용하고 있다.

수자원학회 4대강 보고서 왜 늦었나
수자원학회 보고서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우선 학회 설문조사에서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는 찬성이 93%로 반대(7%)에 비해 월등히 많다. 하지만 연속 심포지엄에 참여한 교수들의 발제 내용은 사뭇 달랐다. 김영오 서울대 교수는 보고서에 실린 논문에서 “4대강본부 측의 주장을 보면 4대강 사업이 기후변화에 대한 대비책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기후변화라는 키워드의 핵심은 ‘불확실성’”이라며 “따라서 의사결정은 적응형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자연의 불확실성이라는 문제 때문에 동시 착공해 일사천리로 마무리하는 방식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시권 4대강본부 전 정책총괄팀장처럼 전적으로 찬성의 입장에서 발제한 사람도 있지만, 전문가들의 ‘권고’는 사업이 중요한 만큼 “시한을 못박지 말고 차근차근 수행해야 한다”(아주대 이재응 교수)는 데 대체로 수렴된다. 관련 심포지엄에 참여한 교수는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치수대책 수립은 지류 중심으로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김진홍 중앙대 교수), “16개 보의 법률적 성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박성제 미래자원연구소 소장)

원로 포럼의 토론 내용엔 더욱 우려가 가득하다. 한두 개만 인용해보자. “농지 리모델링 사업은 근시안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중략)…또한, 과도한 하도준설은 하상 안정화를 저해하고 하구에서는 유사공급 급감으로 해안 침식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기술자들이 자존심을 지키려면 자구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3회 원로 포럼 토론) “그동안 한국수자원학회 원로 포럼에서 논의된 문제가 관계당국에 반영되고 있지 않은 건 매우 아쉬운 부분이며…(중략)…4대강 본류 하천기본계획에서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았음은 4대강 사업 후 책임문제의 논란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 (7회 원로 포럼 토론)

이 원로 포럼 회의 참석자들의 이름은 공개되어 있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발언한 것인지는 보고서에서 밝히지 않고 있다. 학계 원로로서는 이원환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5월, 대한토목학회지 기고를 통해 4대강사업을 공개비판한 것이 외부로 알려진 유일한 케이스다. 이 교수는 기고문에서 특히 ‘보’의 설치를 문제삼으면서 “특히 이상 홍수시 홍수 소통력 저해물로서 보의 설치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며 “16개 보가 만수가 된 뒤 추가적으로 비가 오는 경우 홍수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인위적인 재해를 자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수자원학회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보고서를 발간한 까닭은 무엇일까. 발간 주체인 전임 지홍기 회장에게 문의했다. 지 전 회장은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분께는 죄송한 표현입니다만, 건설업계에 계셨고 매니지먼트는 하셨지만 건설에 대해 전문지식을 가지신 분은 아니셨잖습니까.” 지 전 회장이 말하는 ‘그분’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에 따르면 하천과 관련된 부분은 특히 어렵다. 도로나 철도 건설을 두고 잘 되었느냐 못되었느냐는 사람이 판단하지만 하천은 자연이 평가한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그렇기 때문에 하천사업은 가장 보수적이 되어야 하고, 가장 장기적 안목에서 또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2년 만에 보고서가 세상에 나왔을까. 설명은 길었다. 그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에 공평성을 갖고 작업을 해왔다고 말했다. “어디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특정기관이 왜 박창근 교수나 박재현 교수와 같은 반대론자를 토론자로 넣었느냐고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그분들 다 우리 학회 회원입니다. 회원이라면 다 동등한 기회를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배제시켜야 한다는 건… 무슨 권한으로?”

일부 교수들 “지금은 입장 밝히기 곤란”
그런데 2월에 발간된 것으로 되어 있는 보고서가 왜 6월에 나왔을까. 그는 “원래 정종환 전 장관에게 제출해야 하는데, 개인적인 일(모친 상)도 겹쳤고 바로 또 신임 국토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도 겹치면서 늦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신임장관 인사청문회 때 공개되면 의도하지 않았던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회원들로부터 왜 배포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빗발쳤다. 회장 자격으로 유보시켰다. 그에 대해 지탄을 받는다면 받겠다.”

기자가 연락한 모든 회원들이 같은 입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김영오 서울대 교수는 “논문을 발표할 당시는 사업시행 초기였고, 원론적인 요청을 한 것”이라며 “당시 내가 말한 대로 추진되진 않았지만 그나마 지천 살리기라는 계획이 나와서 다행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A 교수와 B 교수는 “현재 관련해서 맡고 있는 일이 있어 당시 쓴 논문에 대해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 다 당시 심포지엄에서 비교적 비판적인 입장을 발표한 인사다. 4대강 소송단장을 맡고 있는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수자원학회 4대강 보고서와 관련,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중앙하천관리위원으로 참여했었는데, 적어도 정통 수자원학자들이 4대강 사업에 앞장서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라며 “아이러니였던 것은 평소에 환경을 강조했던 학자와 연구자들이 나중에 MB캠프에 줄을 대고 4대강 사업 깃발을 높이 든 점”이라고 꼬집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전 수자원학회 한 임원은 “마침 6월 말 폭우가 쏟아진 뒤 낙동강 보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학자는 무조건적인 찬성이나 반대가 아니라 데이터로 말해야 한다”며 자신의 ‘예측’을 말하길 주저했다.

꽤 오랜 시간 뜸을 들이던 그 교수가 입을 열었다. “결국 낙동강의 경우는 준설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안정화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조사한 결론은 낙동강의 보들은 홍수 조절효과가 없다.”

그는 자신의 결론을 정부 쪽에 전달했을까. “국토부 쪽에서는 받아들일 입장이 전혀 안 된다. 왜냐하면 결국 4대강 사업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 되니까.” 그에 따르면 문제의 원인은 고정보다. 2002년 태풍 루사나 2003년 태풍 매미 전후의 홍수와 같은 상황이면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결론은 이렇다. 고정보를 없애고 모두 가동보로 만들어야 한다. 홍수가 발생했을 때 모든 수문을 열면 교량하고 똑같이 되니까. 하지만 보다시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홍수와 보는 무관하다?
이상훈 수원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문제제기에 소극적인 수자원학회 원로들에게 불만이 있다”고 말했다. “4대강 문제를 보면 그 어떤 새로운 이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수자원 이론에 대한 상식만 갖고 있어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알 것이다. 그런데 노골적인 반대를 못한다. 왜? 설령 은퇴를 한 원로라고 하더라도 지금 4대강과 관련 있는 엔지니어링 회사의 자문을 맡거나 심지어는 전무 등 직책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도 ‘보고서’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쓴 주제는 ‘수질문제’였다. “처음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수질개선에 들어가는 비용이 5000억원 정도였다. 그걸로 안 되니까 3조9000억원으로 늘렸다. 문제는 이거다. 보가 없이 3조9000억원을 쓰면 현재 2급수에서 1급수를 달성할 수 있는데, 보를 막아서 3급수로 떨어뜨려놓고, 이걸 2급수로 다시 만드는 데 그만큼의 비용을 투자한다는 거다. 전형적인 이중 예산낭비 아닌가.”

지난 6월 말 내린 비로 왜관철교가 무너지고, 상주에서는 제방이 유실됐다. 현장조사를 한 박창근 교수는 그 원인으로 가동보를 지목했다. “고정보로 막혀 있는 대신 열린 가동보 쪽 물살이 빨라지니 결국 제방 유실로 이어진 게 아닌가.”

4대강 추진본부는 “신속한 복구를 위해 원인 파악 중”이라는 짧은 보도자료만 냈다. 6월 29일, 4대강 추진본부는 “준설로 홍수위험이 줄어들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정반대의 인식이다.

고용석 사업지원3팀장은 “보는 제방은커녕 고수부지보다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실제 비가 그 이상 오게 되면 잠기게 된다”고 말했다. 보와 홍수피해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상주 제방이 무너진 까닭은 뭘까. “아직 공사중이 아니냐. 완공된 뒤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또 모르겠지만, 아직 만들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며 “무너진 곳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오가는 도로가 아니라 공사차량이 드나드는 임시도로”라고 덧붙였다.

“홍수와 보가 무관하다”는 4대강본부 측의 주장은 사실일까. 박재현 인제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어떤 형태의 보든 피해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정치가 공학적 진리를 왜곡시키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 4대강 사업의 교훈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막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그러기 때문에 수자원학회의 보고서도 그렇지만 훗날을 위해 이 모든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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