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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흑백 갈등’ 과거사 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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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극우조직 지도자 피살로 촉발… 뿌리 깊은 ‘상처’ 치유 쉽지 않아

지난 4월 3일 백인 극우조직 아프리카너저항운동(AWB)의 지도자 외젠 테르블랑슈(69·사진)가 피살되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격렬한 흑백인종 갈등이 재현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3일 백인 극우조직 아프리카너저항운동(AWB)의 지도자 외젠 테르블랑슈(69·사진)가 피살되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격렬한 흑백인종 갈등이 재현되고 있다. |연합뉴스

월드컵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흑백 간 인종갈등 문제로 뜨겁다. 아파르트헤이트로 불리는 흑백분리정책을 평화적으로 종결시킨 덕분에 과거사 청산의 모범적 사례로도 꼽히는 남아공이다. 백인 극우단체는 월드컵 본선 진출팀들에게 “남아공은 죽음의 땅이 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어 가뜩이나 취약한 남아공의 월드컵 대비 치안 상태가 더 악화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흑인이 백인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
갈등은 백인 극우조직 아프리카너저항운동(AWB)의 지도자 외젠 테르블랑슈(69)가 지난 4월 3일 피살되면서 촉발됐다. 노스웨스트주 벤터스도프의 농장주인 테르블랑슈는 21살과 15살의 흑인 남성 노동자 2명으로부터 살해당했다. 이들은 테르블랑슈가 임금을 체불해 말다툼을 벌이다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사건의 원인은 인종 문제가 아닌 임금 체불이지만 테르블랑슈라는 인물이 지니는 상징성 때문에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AWB는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이끌던 아프리카너들(남아공에서 출생한 네덜란드계 토착 백인들)이 주축이 돼 이룬 단체다. 이들은 백인만의 국가를 건설하고 흑인에게는 임시직 노동자 자격만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1993년에는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논의가 진행되고 있던 요하네스버그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AWB 차량이 돌진하는 일도 있었다. 이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에 마지막까지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며 ‘백인만의 세상’을 꿈꿨다. 테르블랑슈는 1973년에 이 단체를 공동 설립한 인물이다.

테르블랑슈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교도소 생활을 했다. 흑인 주유소 경비원을 살해한 혐의로 교도소 신세를 졌으며, 출소 뒤에는 AWB 재건에 힘써 왔다. 2008년 3월에는 AWB의 활동 재개 선언을 끌어내기도 했다. 사실상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인 테르블랑슈가 살해당한 데 대해 앙드레 비사기 AWB 사무총장은 “이번 사건은 흑인이 백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오는 5월 1일 열리는 AWB 지도부 회의에서 ‘보복’을 논의할 것이라면서 월드컵 본선 진출팀들은 충분한 안전장치가 없다면 선수단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파문이 커지자 AWB는 “폭력적 보복은 없을 것”이라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회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흑인에 대한 적개심이 높다. 이들은 특히 남아공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청년동맹 의장 줄리우스 말레마의 최근 행보에 대해 의심 어린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말레마는 최근 각종 집회에서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시절 ANC의 투쟁가요이던 ‘보어인(네덜란드계 남아공인)을 쏴라’를 불러 물의를 빚었다. 흑백 갈등 확산을 우려한 시민단체가 소송을 제기해 이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말라는 판결까지 끌어냈지만 말레마는 이에 따르지 않겠다는 태세다. 그는 또 “남아공의 모든 광물을 훔쳐간 백인들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고 광산은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AWB 내부에는 그의 최근 행보와 테르블랑슈의 갑작스런 죽음을 연관지어 생각하는 시각이 있다.

6일 테르블랑슈를 살해한 흑인 농장 인부 2명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벤터스도프 지방법원에서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됐다. AWB 회원을 비롯한 백인들은 법원 건물 주변에서 과거 백인 정권시절 남아공의 국가인 ‘남아프리카의 외침’을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피고인들을 지지하는 흑인들도 현재의 국가인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를 부르며 백인들에 맞섰다. 양측 간 충돌이 불거지려 하자 경찰이 개입해 상호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폭력 사태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이 장면은 남아공 흑백 간 감정의 골을 메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다른 인종 신뢰할 수 없다” 39%나
물론 테르블랑슈 피살 사건이 흑백 간의 전면적인 대결 구도를 불러올 가능성은 극히 낮다. AWB가 흑인과 백인이 이용하는 식당, 버스, 택시 등을 모두 분리시키고 흑인들을 강제 이주시키기까지 한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는 ‘시대착오적’ 집단이라는 데에는 대부분의 백인들도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1994년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흑인정권이 출범한 이후 16년이 지났지만 흑백분리정책이 남긴 상처가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영국 BBC방송이 지적했다.

살해당한 AWB 리더 외젠 테르블랑슈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피의자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 법원 앞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살해당한 AWB 리더 외젠 테르블랑슈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피의자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 법원 앞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남아공 정의화해연구소가 지난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4%는 보통 하루에 한 차례도 다른 인종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46%는 자신이나 친구의 집에서 다른 인종과 전혀 사회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며, 39%는 ‘다른 인종은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른 인종의 문화와 생활 방식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59%에 달했다. 더 심각한 것은 ‘기회가 주어질 경우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이 28%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백인 정권 시절 고문으로 숨진 흑인 운동가 스티브 비코의 부인 맘펠레 람펠레는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공의 인종 그룹을 인종적, 경제적, 심리적으로 완벽하게 분리시킨다는 목표를 달성한 성공적 시스템”이라며 인종 간 벽을 허무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고 내다본 바 있다.

남아공의 인종 간 골은 경제 문제와 맥이 닿아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차별의 폐단을 교정하기 위해 흑인 경제력 증강(BEE)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논란이 많다. BEE 정책이 사실상 백인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면서 남아공을 떠나는 백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남아공 정부가 흑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능력도, 의사도 없다면서 한 백인 청년이 캐나다에 난민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30%에 육박하는 실업률도 BEE 정책으로 인한 백인 자본가들의 투자 부진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로 인해 오히려 흑인 빈곤층이 더욱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흑백분리 교육의 폐단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차단당했던 흑인들에게는 교육을 통한 수직적 계층 이동이 시급한 과제이지만 정작 이들을 가르칠 만한 교사 확보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흑인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교사들은 학교에 결근하거나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전문직 진출을 꿈꾸는 흑인 학생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테르블랑슈와 말레마 같은 극단주의자보다는 인종 간 진정한 화합을 이루는 ‘무지개의 나라’를 꿈꾸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흑백 갈등은 수면 아래로 잠복해 있던 아파르트헤이트의 상처가 다시 드러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300년의 인종차별 역사를 지닌 남아공의 새로운 실험은 이제 막 17년째에 접어들었다.

<국제부·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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