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민통합 개각, 뚜껑 여니 ‘의혹 투성이’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결산, 위장전입·불법증여·탈루 등 도덕성 결여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오른쪽)가 9월21일 국회 총리 인사청문회에 앞서 정의화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오른쪽)가 9월21일 국회 총리 인사청문회에 앞서 정의화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화합과 쇄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는 의혹과 실망이다.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났다. 청와대는 지난 9월3일 국무총리 및 6개 부처 장관 인사를 단행했다. 국무총리에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법무부 장관에는 이귀남 전 법무부 차관, 국방부 장관에는 김태영 함참의장, 지식경제부 장관에는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 노동부 장관에는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 여성부 장관에는 백희영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특임장관에는 주호영 의원이 각각 내정됐다.

부동산 매각금액 축소 신고 의혹
외형적으로는 충남 출신 개혁 성향 총리 발탁, 호남 출신에 ‘기수 파괴’ 법무부 장관 기용, 여당 의원 3명 입각 등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해 온 국민통합과 정치권 소통을 강화한 모양새였다. 한나라당도 ‘국민통합형 파워 내각’ ‘지역과 이념을 아우르는 잘된 국민통합 인사’라고 환영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야당과 언론의 사전 검증과 청문회를 거친 결과 청문회 대상자들은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작성, 불법증여, 탈루, 논문 중복 게재 등 다양한 형태의 불법·비리 의혹을 안고 있었다. 도덕성 의혹이 없는 후보는 김태영 국방장관 후보자뿐이었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두 차례 위장전입을 했다. 임 후보자는 1984년 12월8일부터 1985년 2월28일까지, 재무부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1987년 10월30일부터 1988년 4월13일까지 각기 경남 산청읍에 위장전입했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이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자 임 후보는 “가족 일로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임 후보자의 장녀와 차녀는 15살과 14살 때인 지난 2000년에 각기 1800여 만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돈은 지금 1억원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후보자는 ‘증여세를 다 냈다’는 입장이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배우자 명의로 부동산 매각 금액을 축소 신고하고 증여세를 탈루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최 후보자는 2005년에 매각한 부인과 처남 명의의 대구 부동산 실매매 가격에 대한 말을 바꿨다. 최 후보자는 2004년 재산신고서에는 17억원으로 기재된 이 부동산을 2005년 12월에 약 40억원에 팔았다. 2007년 6월 이전까지는 실거래가가 아닌 기준시가로 신고해도 공직자윤리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대구 부동산 매각대금 가운데 부인으로부터 증여받은 돈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노영민 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서는 “증여가 아니다”라고 했다가 “확인해 보고 납부할 세금이 있다면 내겠다”고 답변했다.

주호영 특임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및 아내와 자녀의 재산이 검증 대상이 됐다. 주 후보자는 2003년에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를 실제로 6억5000만원에 샀으나 무려 5억여 원을 줄여 1억3500만원에 산 것으로 신고했다. 주 후보자는 “아내가 중개사에게 맡겼다.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주 후보자의 부인은 전업주부인 데도 서초구 서초동의 아파트 전세권 5억여 원과 예금 6억원 등 11억원을 재산으로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학생 신분인 두 자녀가 보유한 각기 5800여 만원과 2500여 만원의 예금에 대해서는 증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주 후보자는 아내의 재산에 대해서는 “집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이렇게 많이 해 놓은 줄 몰랐다”, 자녀들의 예금에 대해서는 “용돈과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이라고 답변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위장전입과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을 받았다. 이 후보자는 1997년 9월 장남의 고등학교 배정을 위해 용산구 청파동으로 위장전입했다가 6개월 뒤 원래 주소지로 다시 옮겼다. 1998년 10월에는 용산구 이촌동의 삼익아파트를 3억8250만원에 샀다. 그러나 계약서는 2억9500만원으로 산 것으로 작성했다. 이 후보자는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서는 “장남이 방과후 자율학습을 철저히 시키는 청파동의 고등학교에 배정받기를 원해 주소를 이전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고, 다운계약서 작성에 대해서는 “당시 관행대로 중개업소 안내에 따라 아내가 작성했다”고 시인했다.

여성단체 회원들이 9월 18일 백희영 여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여성위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청문회장 앞에서 백 후보자 내정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여성단체 회원들이 9월 18일 백희영 여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여성위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청문회장 앞에서 백 후보자 내정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 후보자에 대해서는 차명 부동산 투기 의혹도 제기됐다. 후보자 부인이 2002년에 이 후보자 동생이 소유한 이촌동 아파트와 1993년 후보자 부인의 오빠 소유의 인천 아파트에 ‘매매예약 가등기’를 한 사실을 두고 나온 얘기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가등기된 것을 재산으로 신고하지 않아 공직자윤리법 위반이고, 부인은 명의신탁으로 부동산실명거래법 위반”이라고 질타했다.

백희영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백화점식 도덕성 의혹에 더해 여성 문제에 대한 빈곤한 의식을 드러내면서 ‘어이없는 후보’로 낙인찍혔다. 백 후보자는 2001년 재개발이 예상된 동작구 상도동의 다세대 주택을 사들여 재개발된 뒤인 2006년 4억5000만원에 매도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았다. 2001년 12월에는 당시 국세청 기준시가 4억7200만원짜리 양천구 목동의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실제 신고는 1억8400만원으로 했다. 백 후보자는 이렇게 산 아파트를 불과 두 달 뒤에 되팔았다. 이 밖에도 장남 병역 비리 의혹, 제자 논문 가로채기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여성부 장관 후보자 자질 부족 비난
여성부 장관으로서의 자질 부족은 여성계의 공분을 샀다. 백 후보자는 혼인빙자간음죄, 간통죄, 군가산점제 등에 관한 질의에 대해 ‘파악해 보겠다’ ‘열심히 하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하면서 여성 문제에 대한 무소신과 무지를 드러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등 5개 여성단체 대표들은 9월21일 국회 여성위원장에게 임명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날 잡혀 있던 국회 여성위원회의 백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은 자신사퇴 또는 지명철회를 주장하는 야당과 보고서 채택을 주장하는 여야의 의견이 맞부딪치면서 결국 무산됐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정운찬 총리 후보자였다. 정운찬 후보자는 중도실용 기조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였던 만큼 야당은 정 후보자에 대해 청문회가 열리기 전부터 집중적인 검증을 펼쳤다.

정 후보자는 서울대 교수 시절에 쓴 논문 가운데 일부를 여러 학술지에 중복 게재했다. 1998년 서울대 경제연구소 경제논집에 실은 논문과 2001년 한국행정학회 춘계논문집에 실은 논문의 내용이 절반 가량 같았다. 출처나 인용 표시는 없었다. 이 논문은 다른 철학 학술지에도 일부분이 그대로 실렸다. 학술단체총연합회 연구윤리지침에 따르면 명백한 중복 게재다. ‘경제 석학’이라고 알려진 기존 이미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 ‘스폰서 총장’
소득 신고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 후보자는 2007년 11월부터 지난해까지 인터넷 서점 ‘예스24’ 고문으로 일하면서 받은 소득 6000여 만원에 대한 합산 소득신고를 누락했다. 고문료에 대한 원천 소득공제는 됐지만, 합산 소득신고에서는 서울대 교수 급여만 신고한 것이다. 교수 신분으로 기업 고문료를 받은 것에 대해 겸직 의무 금지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정 후보자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월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우철훈 기자>

이귀남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월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우철훈 기자>

위장전입도 빠지지 않았다. 정 후보자의 부인은 1988년 2월 주소지를 후보자 동문이 거주하는 경기 포천시로 옮겼다가 4월에 다시 원주소지인 서초구 방배동으로 이전했다. 이곳 땅을 사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정 후보자 측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화가인 부인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작품 5점을 팔아 5900만원의 소득을 올렸지만 공직자 재산 신고 때는 빠졌다.

병역 면제 문제도 터져나왔다. 정 후보자는 31살이던 1977년에 ‘고령’이라는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진작 입대해야 했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읜 외아들’(부선망 독자)이라는 이유로 1968~1969년 2년 동안 입영이 연기되면서 ‘고령’으로 분류된 것이다. 병역법의 빈틈을 이용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이 역시 합법적이었다는 게 정 후보자의 입장이었다. 미국 유학 당시 서류에 병역 면제라고 허위 기재한 것에 대해서는 “영어로 된 공문서를 처음 봐서 잘못 기재했다.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는 유학 당시 24살이었다.

정 후보자는 2006~2008년에 외국 세미나 강연으로 받은 수입 1억원에 대해 종합소득세 탈루 의혹이 제기되자 지난 9월21일 청문회에서 뒤늦게 “종합소득세 수정신고를 완료하고 오늘 아침에 1000만원 가까운 세금을 냈다”고 밝혔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정 후보자가 서울대 총장 재직 시절에 모 기업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정 후보자는 “형제와 다름없는 사이”라고 했고, 야당 의원들은 ‘스폰서 총장’이라고 비판했다.

많은 의혹이 제기됐지만 한나라당은 검증보다 옹호에 충실했다. 9월15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와 주호영 특임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여당 의원들은 “동료 의원이 입각했는데 인간적으로 축하해야 할 일이다” “후보자는 능력이나 자질 검증이 불필요할 정도로 자질과 인품을 갖춘 분이다”라면서 야당의 검증을 무마했다. 9월22일 청문회에서도 여당의 정희수 의원은 정운찬 의원이 거듭되는 질의로 불리한 지경에 처하자 “도덕성과 청렴으로 소문난 분으로 상당히 존경받아왔다”면서 정 후보자를 두둔했다.

한나라당이 과거 야당이던 시절에는 이러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장상 총리 서리와 장대환 총리 서리는 위장전입과 증여세법 위반이 문제가 돼 인준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손숙 환경부 장관은 취임 직전에 전경련으로부터 2만 달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취임 32일 만에 경질됐다. 참여정부 시절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논문 이중 게재 사실이 드러나 경질됐다. 현 정부 출범 이후로 한정해 지난해 새 정부 첫 조각 때만 해도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 등이 위법 행위가 드러나 무더기로 내정이 철회됐다.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청문회를 어떻게 봐야 할까. 임지봉 서강대 법학과 교수는 “법학자로서 청문회를 지켜봤다. 그토록 법치주의를 강조해 온 정부가 위법이나 탈법을 저지른 후보자들을 임명한다면 국민은 이중잣대가 아니냐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법치주의를 표방한 만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임명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판단이 아니다. 법학자가 아닌 일반 국민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