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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의 문화·예술계 숙청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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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산하 공공기관장 15명 임기 못 채우고 사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나간 기관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기관장들.(왼쪽부터) 고학용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권오남 그랜드코리아레저 사장, 김주훈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박준영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원장, 양휘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정갑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 정국록 국제방송교류재단 사장. 이들은 대부분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나간 기관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기관장들.(왼쪽부터) 고학용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권오남 그랜드코리아레저 사장, 김주훈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박준영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원장, 양휘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정갑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 정국록 국제방송교류재단 사장. 이들은 대부분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나름의 철학과 이념, 자기 스타일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다.”

3월 12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광화문문화포럼에서 한 말이다. 며칠 후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유 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장,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신선희 국립극장장,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장, 신현택 전 예술의전당 사장 등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김정헌 위원장, 김윤수 관장이 안 나가면 재임 중 일으킨 문제를 공개하겠다”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2월 29일 장관에 취임한 후 공개적인 자리와 지면을 통해 문화예술정책이 아닌 과거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을 물러나라고 발표한 셈이다.

유인촌 장관 취임 후 공개적 압박
유 장관의 발언을 시작으로 정은숙 전 단장, 신현택 전 사장 등이 사임했다. 하지만 김윤수 전 관장과 김정헌 전 위원장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임명됐기 때문에 사퇴할 이유가 없다”면서 거부했다. 하지만 문화부는 김윤수 전 관장이 미술품 구입과 관련해 국가공무원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해임했고, 김정헌 전 위원장은 특별조사를 벌여12월 5일 해임했다.

문화부가 특별조사를 통해 밝힌 김정현 전 위원장의 해임 이유는 ▲문화예술위가 메릴린치증권 등에 700억 원을 예탁해 101억여 원의 평가 손실을 냄 ▲전시공간 제공 목적으로 지원받은 방송발전기금 10억 원 중 3억 원을 당초 목적과 다르게 작가 주거용 빌라 임대에 씀 ▲아르코미술관의 프로젝트형 카페 운영 사업자를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선정한 점 등이다.

이에 김 전 위원장은 “이런 일로 인생을 소진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처분 신청 없이 해임무효 본안 소송으로 갈 것이다”면서 “해임 이유로 밝힌 사안은 사실 관계가 맞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김윤수 전 관장도 법적인 대응에 대해서 심사숙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임된 김 전 위원장은 3월부터 12월까지 사퇴 압력을 받은 일지를 정리해 <프레시안>에 기고했다. 김 전 위원장의 일지에 따르면 문화부 예술국장, 문화부 차관 등에게 직·간접적으로 퇴진 압박을 받았지만 거부했고, 이어서 11월 26일 문화부 감사관실에서 4명의 직원이 나와 특별조사를 벌였다. 그때 감사를 나온 한 문화부 직원에게서 “한 건이라도 나올 때까지 끝까지 뒤지겠다. 아마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문화예술위원회가 수익사업 차원에서 운영하는 뉴서울컨트리클럽의 전무이사와 감사 자리를 문화부 예술정책과장이 찾아와 청탁했다는 것도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을 마지막으로 유 장관이 계획한 공공기관장의 ‘물갈이’는 일단락된 듯 보인다. 문화부 산하에는 사단법인 ‘국민생활체육협의회’ ‘전국문예회관연합회’를 제외하면 38개의 공공기관이 있다. 확인 결과 38개의 공공기관 중 15곳의 전임 기관장은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임했다.

경북관광개발공사의 김진태 전 사장은 임기를 1년 이상 앞두고 4월에 사임했다. 김 전 사장은 사임 이유를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지역에서는 사퇴 압력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5월 사임한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은 당시 한 일간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새 정부에서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단체장들에게 사임하라는 압력이 있지 않았느냐”면서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정 전 예술감독은 표면적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화재에 대한 책임을 사임 이유로 밝혔다. 정 전 예술감독은 노사모를 대표하는 배우 문성근씨의 형수라는 것이 이번 사임의 결정적인 이유였다는 분석이 많다.

참여정부 인사에서 MB 인사로
국민체육진흥공단 김주훈 이사장은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체육·청소년 분야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쌓았다. 그리고 아리랑TV(국제방송교류재단)의 정국록 사장은 취임 이전부터 이명박 캠프의 방송특보를 역임했다. 정 사장은 낙하산 인사이자, MB 정부의 방송 장악 의도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장명호 전 아리랑TV 사장의 임기는 2009년 3월까지지만, 임기를 1년 앞둔 3월에 사임했다. 정재왈 전 서울예술단 이사장 역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4월에 사임했다. 현재 서울예술단 이사장 자리는 공석이다.

안정숙 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갑자기 사임했다. 당시 안 전 위원장은 “남편 원혜영 의원의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밝혔지만, 4기 영진위 구성과 인수·인계 과정의 잡음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졌다. 예술의전당 신현택 전 사장 역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임했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 여성가족부 차관을 지낸 점이 퇴임 이유로 알려졌다.

최태지 전 극장장이 국립발레단장 지원을 위해 사임한 이후 오랫동안 공석이던 정동극장장으로는 구자흥 전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이 임명됐다. 그동안 여러 문화 관련 단체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낙하산 인사가 정동극장장으로 오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구 관장은 비교적 그런 논란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임기를 4개월 정도 남겨두고 사임한 박정삼 전 그랜드코리아레저 사장 후임에 권오남 사장이 임명됐다. 권 사장은 고려대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근무할 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 사장 역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체육과학연구원의 김정만 원장 역시 낙하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 원장은 대통령직 인수위 자문위원과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를 지냈고 지난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사람으로 분류되는 송재호 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 역시 임기 6개월을 앞두고 사임했다. 송 전 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퇴임 압력 여부에 대한 기자의 물음에 “연구원에 퇴임 압력이 없었던 이유는 연구기관 구조조정을 하면 연구원장은 자연스럽게 나가게 되니까, 굳이 압력을 줄 필요성이 없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정갑영 현 원장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 출신으로 MB 인맥으로 꼽힌다. 김정헌 전 위원장의 해임 사태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 자리는 공석이다.

[문화]유인촌의 문화·예술계 숙청 전말

코바코로 잘 알려진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양휘부 사장 역시 MB 인사로 손꼽힌다. 양 사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으로 이명박 캠프의 방송특보단장을 지냈다. 한국언론재단의 박래부 전 이사장 역시 문화부의 퇴임 압력을 거세게 받은 인물로 꼽힌다. 심지어 재단 노조에서도 박 전 이사장의 퇴임을 요구할 정도였고, 문화부의 압력에 발맞추는 노조의 행동에 환멸을 느껴 사퇴했다. 후임 고학용 이사장은 고려대 행정학과 출신으로 고려대 인맥이다.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원장 역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권 원장은 국정홍보처 실장 출신. 권 전 원장의 지인에 따르면 “공직 재직 시 후배인 과장이 사표 언질을 해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고 말했다. 후임 박준영 현 원장은 2003년 한나라당 추천으로 제2기 방송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정치지향적 여권 인사로 분류된다.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이밖에 전임 기관장이 임기를 채우고 나갔지만, 후임 기관장으로 MB 인사가 낙점되어 논란을 일으킨 곳도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대영 원장과 신문유통원의 임은순 원장이다. 이대영 원장은 뉴라이트 단체인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을 맡았고, 당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설립을 반대했던 인물이다. 임은순 원장은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언론특보 출신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실 자문위원을 지냈다.

아직 기관장을 교체하지 않은 기관이 몇몇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고석만 원장), 한국영상자료원(조선희 원장)이다.
MBC PD 출신의 고석만 원장은 MBC <전원일기>에서 잔뼈가 자란 유인촌 장관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고 원장은 10월 국감장에서 “퇴임 압력은 없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장되어 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관장에 대한 퇴임 압력과 특별 감사 등으로 전 정부의 인사를 몰아냈다. 김정헌 전 위원장의 해임을 옆에서 지켜본 문화예술위원회 박명학 사무처장은 “김 전 위원장의 면직 이유라면 대한민국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다”면서 “이렇게까지 할 줄 정말 몰랐고, 이제는 문화부에서 무엇을 못하겠나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토로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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